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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1막1장] 신분의 벽 넘나드는 사랑의 줄다리기-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기사입력 2018.06.29 10: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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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회를 뒤흔든 연극 ‘피가로의 결혼’

1784년 4월 27일, 이날 프랑스 파리 코메디프랑세즈극장에서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역사적 연극이 성황리에 초연되었다. 이 연극은 <피가로의 결혼>으로 3년이나 끌었던 당국의 상연금지 조치 때문에 공연상연은 프랑스 사회 초유의 관심사였다. 인산인해 관객의 박장대소가 들썩이던 극장 꼭대기 장치실에서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지켜보고 있던 이는 이 연극의 작가 카롱 드 보마르세(1732~1799)였다. 왕실과 평단, 대중까지 만족시켰던 전작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연결된 시리즈 이야기였다. 허나 <피가로의 결혼>에 전작에는 없던 귀족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저항이 고스란히 담기다 보니 민심동요를 우려한 프랑스 왕실은 상연을 불허했다. 전작에서 이발사 피가로는 신실한 알마비바 백작과 평민출신 아름다운 로지나의 결혼을 맺어준 공로로 백작의 시종이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의 시녀 수잔나와 핑크빛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 음탕하고 야비한 바람둥이로 변한 백작은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에 흑심을 품고서, 삐뚤어진 욕망을 이행시킬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인간적 배신감과 분노에 찬 피가로는 적나라하게 신분제도의 폐단과 귀족사회를 고발하고 백작의 추악한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기발한 기지를 발휘한다. 마침내 백작은 백작부인 로지나까지 합세한 피가로의 함정에 걸려들어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된다.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 피가로>가 피가로의 시대비판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1826년 <르 피가로>로 명명했다는 일화만 봐도 <피가로의 결혼>의 사회적 파장을 가늠할 수 있다.

시대의 이야기꾼이었던 작가 보마르세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 민중에 잠재된 분노를 일깨워 5년 뒤에 일어날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평민출신의 보마르세의 삶은 그다지 정의롭지 못했다. 귀족과 왕실을 상대로 한 여러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이내 귀족으로 신분세탁을 했으며, 상상을 초월한 부를 축적해 사치에 빠진 향락적인 삶을 맘껏 누렸다. 그는 미국독립전쟁에 관여한 계몽주의자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호가호위하는 권모술수에 능한 눈치 빠른 시정잡배, 혁명 직후 공화국의 자문위원인 합리적 귀족 등 상반되는 극단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불씨에 기름을 부어 프랑스대혁명을 완성시킨 당대 지식인 중 한 명이지만 동시에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반혁명 귀족으로 해외로 망명가야만 했던 역사적 아이러니의 장본인인 것이다.



▶음악적 변혁을 시도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프랑스사회에서 보마르세가 한창 논란의 중심에 선 17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또 다시 유럽사회를 흔든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친오빠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보마르세의 <피가로의 결혼>을 빈궁정극장에서 공연하려 했다. 아무리 황제 요제프 2세가 신분제도 개혁을 주창한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계몽군주라고 할지라도, 그가 귀족주인에 대항한 하인의 승리라는 정치적 반동을 야기할 파격적 작품상연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정치적 혁명을 꿈꾼 것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무대언어로 절묘한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음악적 변혁을 꿈꿨다. 대본을 맡은 이탈리아 출신 로렌조 다 폰테(1749~1838)와 모차르트는 당시 비엔나 음악계를 평정하던 이탈리아 출신 실세 음악인들을 설득해 정치적인 혼란을 초래할 에피소드는 모두 삭제할 것을 약속하며 겨우 상연을 허락받았다. 보마르세 원작처럼 피가로가 뿜는 통쾌한 독설은 없었으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탄생부터가 시끄러운 구설에 올랐고, 당시 비엔나 음악계를 좌지우지하던 귀족사회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역량과 상관없이 <피가로의 결혼>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후 <피가로의 결혼>은 공연시장이 협소한 체코 프라하 공연에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지만, 모차르트에게 극심한 경제적 난관을 가져다주어 3년 후 그는 파산에 이른다.



▶모차르트가 꿈꾼 이상적 음악 ‘극을 듣는다’

웃음을 유발하는 원작의 풍자에 맞먹을 희극적 요소를 가미했지만 모차르트는 원작보다 더욱 복잡하고 묘한 인간의 심리를 다채로운 음악적 밀도로 완성시켰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부터 이어지는 모차르트-다 폰테 콤비의 3부작(돈조반니, 코지 판 투테)은 우스꽝스럽고 상투적인 희화화를 일삼던 당시의 서정적 희극오페라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모차르트는 이 3부작을 ‘드라마 조코소’(dramma giocoso·해학곡)라고 새롭게 명명했다. 전통적인 오페라 캐릭터가 아닌 독특한 개성을 가진 각 인물들은 치밀하게 움직이며 사건을 만든다. 3시간이 넘는 오페라는 주옥같은 아리아도 있지만 연극성이 가미된 모차르트만의 중창이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나오는 2명의 소프라노가 부른 편지의 이중창도 영화에서는 천상의 소리향연으로 들리지만 실제는 남편의 나쁜 버릇을 혼내주기 위해 백작부인이 하녀와 합심하여 남편을 유인하는 편지를 쓰며 부르는 이중창이다. 또한 2막은 7중창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피가로가, 여기에 수잔나가, 뒤이어 케루비노가 또 백작과 백작부인이, 다음에는 정원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등장하며 20분 동안 최고조에 이른 중창을 부른다. 각 인물들이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지만 각기 다른 음색과 음역이기에 신기하게도 관객은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이해하고 감상하는 오페라만의 묘미를 만끽한다. 모차르트는 ‘단죄와 고발’보다 ‘화해와 용서’를 더욱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이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차르트의 예술세계를 나타낸다. 모든 것이 탄로 난 백작이 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우아한 화성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할애해서 전혀 풍자적인 요소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탄복한 살리에리가 ‘신의 음성을 들었다’며 울먹이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또한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인물농도를 원작보다 인간적으로 어수룩하게 희석시키고 오히려 수잔나를 더욱 진지하고 재치 있게 만들었다.

2016년 개관한 우리나라 두 번째 전문 클래식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합창석 포함 2036석)에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찾아온다. 작년 콘서트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에 이은 모차르트-다폰테 3부작 시리즈 두 번째 공연으로, 작년공연과 같은 고음악의 최고봉인 지휘자 르네 야콥스(72)의 지휘로 모차르트음악의 정수를 보여줄 계획이다. 무대와 의상, 조명까지 완벽한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들은 콘서트오페라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고전주의의 사운드에 집중을 하며 음악으로 극을 풀어가는 방법도 모차르트 오페라의 미학 ‘연극을 듣는다’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간단한 상징적 소품을 이용하는 절제된 연기는 관객의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인구 22만 명의 친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세계적인 음악도시로도 유명한데, 프라이부르크를 빛내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연간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 와중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우리나라를 찾아 18세기 모차르트음악의 청명한 소리를 선사한다.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 사진제공 롯데문화재단(2017년 다폰테 시리즈 첫 번째 코지 판 투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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