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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이창동밖에 찍을 수 없는 영화 영화 `버닝`
기사입력 2018.05.30 17: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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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종종 요령부득인 것은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설령 부처가 지금도 살아 있다 한들 삶이라고 하는 것을 쉽게 정의 내릴 수 있겠는가. 예수라고 해서 이 부조리(不條理)한 세상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칼 마르크스라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이렇게까지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가 오지 않는지를 알려 줄 수 있겠는가.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 역시 외견상으로는 선문답(禪問答)과 함께 <자본론>에 나올 법한 (독해가 필요한) 사회과학이론이 중첩돼 있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한두 줄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줄거리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런 얘기다. 주인공 종수(유아인)는 아르바이트로 택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소설가 지망생 청년이다. 그는 어느 날 마트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다가 거기서 이벤트걸로 일하고 있는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들이 중학교 동창이라며 접근한다.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종수에게 해미는 말한다. “나 성형했어.” 해미는 종수에게 이벤트 당첨 번호를 주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시계를 받게 된다. 종수는 그 시계를 해미에게 다시 선물로 준다. 곧바로 친해진 둘은 저녁에 술을 마시러 간다. 해미는 종수에게 그동안 돈을 모아 왔고 그걸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건데 그 사이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를 좀 돌봐 달라고 말한다. 다음 날 종수는 해미의 좁은 원룸에서 그녀와 섹스를 한다. 해미가 여행을 간 사이 종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파주 집에서 그녀의 방이 있는 남산 주변 동네까지 먼 길을 오가며 밥을 주러 다니지만 한 번도 고양이를 보지는 못한다. 다만 침대 밑에 있는 배변 모래 함을 보고 고양이가 방 어딘 가에 숨어 있다고만 생각한다.(고양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구석으로 숨어 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그 배변함이 있던 곳은 원래 해미가 섹스를 할 때 콘돔을 넣었던 장소다. 종수는 해미가 없는 방에서 창밖의 남산 타워를 마주 본 채 그녀를 생각하며 수음(手淫)을 한다.

시간이 지나 해미가 귀국한다고 전화를 한다. 인천공항에 나간 종수는 그녀가 낯선 남자 벤(스티븐 연)과 같이 온 것을 알게 되고 실망한다. 벤은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부자 청년이다. 집도 상류층이 사는 강남 신반포인 데다 그가 하는 파티(같은 모임)는 점잖은 척, 사실은 종수에게는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해미와 함께 있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다 낡은 소형 트럭을 갖고 다니는 종수는 해미가 벤과 함께 다니며 흥청대는 것이 점점 더 거북해진다. 어느 날 해미는 벤을 데리고 파주 종수의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나눠 핀다. 술과 약에 취한 그녀는 저 멀리 DMZ의 노을을 바라보며 상의를 벗어 던지고 춤을 춘다. 벤은 종수에게 자신의 취미가 (파주 같은) 시골에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불태우고 다니는 일이라고 한다. 종수는 그런 벤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해미에게 다른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건 창녀나 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둘은 돌아간다. 이후 종수의 일상은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해미가 사라진다. 종수는 없어진 해미를 수소문하는 한편 벤이 태우고 다닐지도 모르는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닌다.

어쩌면 이건 영화가 아니다. 영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지나치게 문학적이다. 문학적 상상력에 더 바싹, 다가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동은 소설을 영화로 가져오면서 원형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이창동이 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겨 오면서 작심한 듯 ‘소설적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늘 그렇듯이 결코 ‘영화적 소설’이 아니다.(<양을 좇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태엽 감는 새> 그리고 <1Q84>를 보라.) 그의 소설은 영화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의 상상력을 지닌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함, 이성과 환상의 판타지, 그 경계 위에서 펼쳐지는 정상과 착란(錯亂)의 기이한 로맨스가 그려진다. 하루키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가 애초부터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니 애초부터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굳이 하루키의 소설이 그려내는 광활한 세계를 영화라는 좁은 프레임의 세계로 가둬 버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창동은 하루키의 문학세계를 원문의 분위기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오되 거기에 ‘자신의 세계관=이데올로기’를 입히는 전략을 편다. 문제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결국 하루키의 상상력을 온전히 이해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루키만큼, 아니 하루키 이상으로 이 미스터리한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충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의도적으로 모호한 이야기 구조를 전개해 내면서도 리얼리스트인 이창동은 그 사이사이에 촘촘할 만큼 우리사회 현실의 불균형, 부조리, 불합리한 구조를 끼워 넣는다. 버젓이 대남방송이 들리는 민통선 인근 마을과 남산(후암동)의 영세민 아파트 혹은 원룸, 그 창가에 비친 남산타워(한국 산업 개발의 상징성), 그리고 강남의 상류층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종수의 시점(視點)을 통해 영화는 한국(남한) 사회의 불평등한 외양과 그 기괴함을 민낯의 형태로 드러내게 한다. 무엇보다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행위는 타인의 ‘전부=(마치 소작농이 어렵게 일궈내 온)재산’을 소일거리의 하나로 탈취하고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이창동의 비판적인 시선은 그의 데뷔작인 <초록 물고기>에서부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 <버닝>은 갖가지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며 동시에 이창동 영화 세계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도대체 파주의 으스스한 집으로 밤마다 걸려 오는 전화는 누구로부터인가. 해미인가. 아니면 일찌감치 집을 나간 엄마인가. 어렸을 때 해미가 빠졌다는, 그걸 종수가 구출해 줬다고 하는 우물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건 혹시 해미의 잘못된 기억이 아닌가. 아니면 해미의 거짓말인가. 해미에게 채워 준 시계는 왜 다른 이벤트걸이 차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벤은 어디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 것일까. 벤이 얘기대로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어서 종국엔 종수가 놓친 것은 아닐까. 해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죽은 것일까. 더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종수가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실제로 벌어진 일이고 어디까지가 종수의 소설이라는 얘기인가. 어쩌면 그 단서는 해미의 집에서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벤의 집에서 나타났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불가지(不可知)의 이야기는 그 상태로 남겨 놔야 답이 나온다. 언뜻 나무는 보이지 않지만 숲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분에 대한 인식을 의도적으로 건너뛰어야 전체의 주제가 보일 때와 같다. <버닝>은 바로 그렇게 보는 영화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지독하게 불친절할 것이다.
‘문학적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소설가 출신의 영화감독이 꼭 달성하고 싶은 예술적 성취의 꼭짓점이었을 것이다. <버닝>이 이창동밖에 찍을 수 없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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