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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보르도 와인이야기] 보르도 와인이 비싸다고 가성비 좋은 제네릭 와인 어때요
기사입력 2018.04.12 17: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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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매운맛을 내는 칠레 와인이 가장 인기가 있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는 프랑스 와인,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제일 잘 팔린다. 보르도 와인의 장점은 그랑크뤼 클라세로 대표되는 고급 와인 외에도 취향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찾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와인 애호가들은 보르도 와인의 경쟁상대로 같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와인을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고급 와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르고뉴 와인의 전체 시장 규모는 보르도 와인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해 보르도 생산자들은 부르고뉴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프랑스의 론(Rhone) 지역 와인이,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같은 고가 와인부터 꼬뜨뒤론(Cotes du Rhone) 같은 중저가 와인까지 포트폴리오를 잘 갖추고 있어 보르도 와인이 경쟁상대로 두려워할 만하다. 하지만 론 와인은 아직 해외에서는 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에밀 페이노 교수에 의해 보편화된 오크통 숙성

역사적으로 보르도 와인의 성공에 이바지한 인물을 몇 명 꼽을 수 있다. 그중에는 지역의 대부호로서 평범했던 보르도 와인의 품질을 고급 와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세귀르 후작(Marquis Segur)이나, 보르도 고급 와인을 파리의 귀족과 왕실에 소개해 ‘지역 와인’에 불과했던 보르도 와인을 ‘전국구’ 스타로 만든 리슐리외 장군이 있다. 리슐리외 장군의 삼촌인 리슐리외 추기경은 비록 소설 <삼총사>에서는 악역으로 등장했지만, 프랑스어를 표준화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세귀르 후작과 리슐리외 후작은 비록 18세기에 활동했던 보르도 와인의 선구자들이지만, 종종 프랑스의 와인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기억되는 인물들이다. 전설적인 선조들 외에 오늘날 보르도 와인의 성공을 일군 최고의 영웅을 꼽는다면, 단연 에밀 페이노(Emilie Peynaud) 교수와 ‘바롱 필립’이라고 불리는 필립 드 로칠드(Philippe de Rothschild) 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 두 분들이 작고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도 고급 와인을 만들고 유통하는 방법은 그저 이 두 분들이 했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정도에 불과할 정도다.

에밀 페이노 교수가 이룬 업적은 너무나 다양해서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정도지만, 전통에 근거해서 만들던 와인을 ‘과학’으로 바꾼 인물이라는 정도로 얘기하면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가령 선조들의 일기장과 양조가의 ‘감’에 근거해 포도 수확의 날짜를 정하거나 발효를 했던 것들을, 과학적인 설명과 근거에 의해 진행하도록 권고하여 보르도 전체 와인 농가의 포도와 와인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의 두 개의 명저 <와인의 이해와 양조(Knowing and Making Wine)> 그리고 <와인의 맛(The Taste of Wine)>은 여전히 출간되고 있으며, 특히 <와인의 맛>은 와인 시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 책으로 와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와인 테이스팅을 진지하게 하고자 하는 애호가의 필독서 중 하나다. 에밀 페이노 교수는 스스로 “좋은 포도만을 사용하게 한 것”을 본인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꼽기도 했는데, 에밀 페이노 교수의 제자들은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에서 나온다는 진실을 보편화시켰다.

좋은 품질의 포도를 고르는 작업

반면 바롱 필립이라고 불리는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은 보르도 와인의 유통과 마케팅에 획기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인 로칠드(Rothschild)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바롱 필립은 매우 다재다능했던 인물로 카레이서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플레이보이로 더 유명했던 것 같다. 보수적이고 근면했던 그의 사촌들은 도박과 연애로 시간을 보내는 그를 부끄럽게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그의 과거가 이후, 라피트와 무통의 역사적인 가족 간 갈등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롱 필립은 와인 업계에서 그의 연애 실력만큼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하였고 ‘샤토 병입’이라는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다. 지금은 생산자가 직접 와인을 병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샤토’라고 불리는 생산자들이 와인을 만들면 ‘네고시앙’이라고 불리는 유통 업체들이 원액을 구매해 판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통업체들이 와인에 몰래 다른 와인을 섞어 품질을 떨어트리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1922년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Mouton Rothschild)를 온전히 소유하게 된 바롱 필립은 곧바로 자신의 와인을 전량 병입하기로 결심하고 1924년 실행에 옮겼으며, 이웃의 생산자들을 설득해 샤토 병입 시스템을 보르도에 정착시키게 된다. 바롱 필립의 치세 동안 2등급 와인이었던 무통 로칠드가 1등급으로 승격되어 보르도 고급 와인의 상징인 ‘5대 샤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무통 카데’라는 스타 와인을 탄생시킨 것도 바로 바롱 필립이다. 사실 ‘무통 카데’ 와인은 샤토 병입 와인과는 반대되는 개념의 와인이라 흥미롭다. 샤토 병입 와인이 와인을 생산한 사람과 병입, 유통하는 사람이 같은 와인이라고 한다면, 무통 카데는 지역의 다른 생산자들이 만든 포도나 와인을 구매하여 만드는 와인이다. 이런 와인을 ‘제네릭 와인’이라고 부르는데, 바롱 필립은 지역 농가에서 만드는 포도를 구매하여 ‘무통 카데’라는 브랜드의 이름으로 판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샤토는 우리말로 하면 ‘성’이라는 뜻으로, 샤토의 주인은 역사적으로 인근 지역을 소유하고 있는 영주에 속한다. 지역 주민들은 영주에게 충성과 존경을 보내고 영주는 주민들에 대한 책임과 리더십을 갖게 되는데, 이 관계는 프랑스 시골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일부 이어지고 있다. 만약 독자 중에 한 분이 프랑스 시골 마을의 샤토를 하나 구입한다면, 대부분의 주민들이 검은 머리의 새로운 영주에 대해 금세 존경을 표시하겠지만, 종종 여러분의 샤토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물을 빼서 자기들의 정원에 물을 주거나, 집에 세워 둔 자전거를 허락 없이 타고 가는… 이러한 행동을 영주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당연하게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네릭 와인의 근본적인 출발은 시장에 대한 정보가 어둡고 그저 대대로 포도 재배만 해오던 지역 농부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바롱 필립은 샤토 무통 로칠드를 1등급으로 올리기 위해 지역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이웃과 어울리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랑크뤼 샤토 중에 하나인 브란 컹트낙(Brane Cantenac)의 주인이자, 당시 보르도 지역 사회의 리더였던 뤼시앙 뤼르통(Lucien Lurton)의 기억에 따르면, 바롱 필립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바롱 필립은 자신이 마셨던 브란 캉트낙 1945년의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뤼시앙은 불행하게도 자기 집에는 1945년산이 단 한 병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날 저녁, 뤼시앙 뤼르통이 집에 가기 위해 자동차에 올랐을 때, 그의 뒷자리에 브란 캉트낙 1945년산 1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와인 농가들은 조상 대대로 하던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와인의 품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편이다. 지역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바롱 필립은 일찌감치 농부들의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 농부들은 자신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경우도 있고 바롱 필립처럼 지역의 책임감이 있는 영주나 리더의 그룹에 합류하여 같이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시장 상황에 따른 공급량과 품질이 엄격하게 관리되는데, 샤토가 인근 농가에 지시하는 내용은 매우 세부적이다. 가령 한 포도밭에는 나무 몇 그루를 심어야 하고, 가지치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등의 내용이 계약에 빼곡히 적혀 있으며, 그 계약 사항을 지킬 경우 샤토에서는 모든 포도를 정해진 가격에 인수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단 한 알의 포도도 수매하지 않는다. 이렇게 엄격한 관리하에 와인을 만들면, 일반 와인 농가는 리터당 겨우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될 와인에 품질을 높여 더 높은 가격에 심지어 매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샤토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소비자들은 유명한 샤토와 같은 스타일을 가진 고품질의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샤토, 즉 유명한 생산자가 만드는 제네릭 와인 중에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샴페인이다.
샴페인 하우스들은 자신들이 직접 포도를 재배하기보다는 인근의 농부들과 계약 재배를 통해 수매하는데, 인근의 농부들 집에는 고급 승용차가 보일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보르도 샤토에서 만드는 제네릭 와인은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만드는 ‘무통 카데’ 외에도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서 만드는 ‘레정드’와 ‘사가’, ‘프라이빗 리저브’, 샤토 린쉬 바즈에서 만드는 ‘미셸 린쉬’ 등이 유명하다. 최근에는 전문적인 원액 공급업자들이 생기면서, 과거의 의미가 조금 퇴색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와인들은 단지 상업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샤토들의 지역 사회에 대한 리더십과 책임감이 같이 녹아 있는 역사적인 흔적들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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