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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걷기 프로젝트] 산과 호수, 청정자연이 숨 쉬는 곳-충청북도 괴산 산막이옛길
기사입력 2018.03.16 09: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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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 딸이 학업을 중단했어요. 지난해 대학에 들어가서 이제 2학년이 돼야 하는데 좀 쉬어야겠다는 겁니다. 그걸 갭이어(Gap Year)라고 하던데, 휴학하고 공부 말고 다른 경험을 해보겠다고 아예 선언을 하더군요. 거 뭐 거창한 거라고 선언씩이나 하는지 원….”

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중견기업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김 부장이 웬일로 투정 아닌 투정이다. 별말 없이 과묵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오늘은 유난히 수다가 늘었다.

“딸이 하던 일을 멈추겠다니 좀 묘하더라고요. 난 저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저런가 싶고. 뒷바라지가 하나 더 늘었구나 싶다가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날 돌아보니….”

주절주절 읊조리듯 내뱉던 말이 갑자기 끊어졌다. 얼굴 표정을 보니 너무 많은 말을 했나 싶었는지 혼자 뜨악한 표정이다.

오랫동안 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수다는 때로 독이 돼 돌아온다는 걸 이미 깨달았는지, 쏟아낸 말을 다시 담겠다는 듯 입을 앙다물었다. 그럴 땐 상대방이 먼저 보따리를 푸는 수밖에….

“그래도 김 부장은 빨리도 키웠네. 전 한참 멀었어요. 이참에 딸하고 같이 쉬어 가지 그래요. 그럴 수 있으면 벌써 그랬겠지만….”

“…그러게… 나도 그 생각이 들데요. 한 20년, 대학 때까지 치면 24년을 똑같은 일(공부)만 하고 있는데 나야말로 좀 쉬었다 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얼마 전에 옆 부서 동기가 <돌아온 여행자에게>란 책을 줘서 읽어 봤더니 이런 글귀가 있어요. ‘갭이어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여행자는 대부분 인생의 갭에 부딪혀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외부 세계에서 답을 찾기로 한 경우다. 갭이어 여행보다 인생의 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맞는 말이죠? 잠시 쉬었다 돌아온다는 게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잘 넘겨야 할 텐데… 정말 요즘 힘들지 않은 이들이 있긴 한 건가 싶네요.”

산막이옛길

▶· 산행코스

산막이옛길 주차장→물레방아→산막이나루→삼신바위→연하협구름다리→굴바위나루→원앙 섬→신랑바위

▶· 등산코스

-1코스(4.4㎞)

출발점(노루샘)→등잔봉→한반도전망대→천장봉→산막이마을

-2코스(2.9㎞)

출발점(노루샘)→등잔봉→한반도전망대→진달래동산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517.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니 서울에서 정확히 2시간 40분 거리다. 고속도로를 타고 비교적 순탄하게 찾아간 ‘산막이옛길’은 널찍하게 마련된 주차장이 산책길의 시작이다. 입장료 대신 주차비(2000원)를 내고 들어서면 옛길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식당 사이로 사람들이 복작거린다. 알록달록 컬러풀한 등산복 차림의 한 무리는 십중팔구 전국 방방곡곡에 점조직처럼 흩어져있는 ○○산악회 소속이다. 그만큼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곳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물 한 병 사러 들어간 가게 사장님 왈 “추운 겨울 빼고 봄, 여름, 가을엔 주말 하루 동안 1만여 명은 찾아온다”니 명소도 이런 명소가 없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된 총 10리(약 4㎞)의 옛길이다. 흔적처럼 남아있던 길을 다듬어 산책로로 꾸몄는데, 경사가 가파른 길 위에 받침을 만들고 데크(나무받침)를 올려 환경 훼손을 최소화했다. 이제는 괴산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된 이 길 위쪽엔 국사봉(477m), 등잔봉(450m), 천장봉(437m), 삼성봉(550m) 등 4개 봉우리를 연결한 등산코스가 자리했다. 주변이 장막처럼 산으로 막혀있다는 의미의 ‘산막이’란 지명이 생긴 이유다. 천장봉과 등잔봉 사이엔 한반도전망대가 우뚝 솟아있는데,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괴산호수를 강처럼 휘돌게 한 지형이 흡사 한반도를 닮았다.



▶순수 국내 기술로 완공한 괴산댐 고즈넉한 호수

1957년 순수 우리기술로 준공된 괴산댐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지역의 자랑거리다. 댐 주변의 훼손되지 않은 생태계가 산막이옛길로 이어지며 한국의 자연미를 뽐내고 있다. 산막이옛길은 그러니까 산 주변을 도는 둘레길이자 호숫가를 걷는 수변산책길이다. 산막이 마을을 향해 걷다보면 오른쪽은 산이요 왼쪽은 괴산호수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꽁꽁 얼어버린 호수 위로 하이얀 눈바람이 몰아치면, 맑은 하늘 아래 반짝이는 눈꽃이 흩날리며 나름 장관을 연출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 오르막에 오르면 호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내리막에선 앉은뱅이 약수, 얼음바람골, 호랑이굴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읽고 보고 경험할 수 있다. 일테면 산책에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는 ‘소나무 출렁다리’는 꼭 경험해야 할 코스 중 하나다. 극기훈련장에서나 볼 수 있는 출렁다리가 다양한 코스로 설치돼 있는데, 양손으로 지지대를 잡고 나무판을 밟고 건너야 하는 구조가 재미있다.

산에서 내려온 약수가 나무를 통과해 흐르는 앉은뱅이 약수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호숫가로 내려오면 얼음호수 위에 임시로 낸 길이 오롯하다. 산막이 옛길의 중간지점인 병풍루 코스 보수공사가 올 6월까지 이어지는 탓에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다리를 냈는데, 산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호수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전혀 달라 새로웠다.

두어 시간 데크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래숲 동굴, 진달래 동산을 거쳐 커다란 물레방아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산막이 마을의 초입이다. 걷기 편한 길이라지만 두꺼운 점퍼 속으로 땀이 흥건했다. 마을로 들어서면 매운탕부터 각종 전의 이름을 새긴 간판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세워져 있다. 빙 둘러 좋은 구경했으니 이제 입이 즐거워야 한다는 듯 마을 전체가 먹고 마시고 쉬었다 가는 곳이다. 군데군데 민박도 보인다. 그런데 잠깐, 그럼 돌아갈 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할 수 있다.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것과 유람선을 타고 가는 것. 3월 중순이면 호수의 얼음이 녹아 괴산호수에 유람선이 운행된다. 산막이 마을에서 유람선을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배삯은 5000원(성인)이다. 마침 호수가 얼어 유람선 선착장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있으려니 마을의 촌로가 한마디 거든다.

“아니 왔던 길 다시 돌아가는 게 뭐 어때서.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어찌 편한 것만 찾아. 저기서 막걸리에 파전 하나 먹고 슬슬 되돌아가면 되는 거야. 어여 와.”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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