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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의 유념유상] 메이퀸에 관한 추억
기사입력 2017.04.27 14: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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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학가의 5월 봄 축제에서는 메이퀸 선발대회를 열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행사였다. 메이퀸 선발대회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의 메이퀸의 유래는 신촌의 한 여자대학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원래는 외국인이었던 여성 창립자에게 감사와 축하의 봄꽃을 바치는 행사였는데, 나중에는 봄꽃의 영광을 한 학생에게 수여하게 됨으로써 메이퀸은 대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학생에게 주어지는 명예로 인식되었다.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다.

메이퀸 출신이 연예계에 데뷔하여 스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되자 유명 대학의 메이퀸 선발일에 취재 헬기가 뜨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그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메이퀸 폐해론이 고개를 들었고 시나브로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서양의 경우 메이퀸 선발은 메이데이 축제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메이데이 퍼레이드 한가운데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앉혀서 5월의 축제를 더욱 화려하고 사랑스럽게 연출했다.

여기서 메이데이란 노동절 이전의 전통 축제일을 말한다. 그날은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운집했다. 그랬기 때문에 시카고의 노동자들도 그날을 기해 헤이마켓 광장에서 ‘8시간 노동제’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총에 맞아 죽거나 기소되어 사형을 당하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전통 축제일인 메이데이가 세계의 노동절이라는 뜻의 메이데이로 바뀌는 기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대학사회에 있었던 메이퀸은 성격상 노동절 이전의 메이데이 축제와 연관된 거라고 볼 수 있겠다.

점차 시들해져 갈 때이긴 했으나 한국의 메이퀸은 명맥이 끊이지 않았고,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7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메이퀸은 남학생들에게 어찌할 수 없는 설렘의 대상이었다. 드러내 놓고 좋아하든 속으로만 좋아하든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이었다. 좋은 건 감출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걸 들켰다고 해도 나쁠 것 없었다. 너나없이 좋아했으니까.

추억하건대, 다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메이퀸 선발이라는 행사의 성격과 방식을 싫어하든 메이퀸으로 뽑힌 여학생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든 싫어하는 녀석이 있었다. 많지는 않았고 100명에 한 명 정도. 문제는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잘난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미 메이퀸 폐해론이 어느 정도 유포되어 있던 터라서 녀석도 그것에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사물화, 상품화 같은 것.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왜 싫어하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순하고 무식했으나 단호하고 신선했다. 그냥.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냥!

무책임한 대답이긴 했으나 적어도 남의 의견과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이유를 댈 줄 모르니 좀 무식해 보이긴 했어도 인간의 감정에는 이유가 없거나 있어도 모르는 무조건적인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의 대답이야말로 솔직한 것이었다. 어라? 나는 그의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단순 무식의 이면에 숨어 있는 상쾌한 진솔함이라니. 저것이야말로 진짜 감정이 아닐까. 좋고 싫고에 줄줄이 이유를 달고 설명을 해 대는 것은 어쩌면 순수 감정이 아니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는 자기 감정에 충실할 뿐 그것의 원인과 기원 따위에 구구하게 얽매이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감정이 아닐까. 메이퀸에 대한 친구의 혐오를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메이퀸에 관한 거라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다 좋아했던 나도 정작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몰랐으니까.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분명히 나는 그의 꾀죄죄한 지갑에서 그해 5월에 갓 뽑힌 활짝 웃는 메이퀸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학생증을 꺼내기 위해 그가 잠깐 그의 지갑을 펴는 순간 메이퀸의 사진이 내 눈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누런 종이의 대학학보에 실렸던 흑백 동판사진이었지만 그 무엇도 메이퀸의 빛나는 미모를 어찌할 수 없었다. 못 볼 거라도 본 듯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친구는 내 얼굴이 왜 붉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뭐지? 역시 놈은 잘난 척했던 걸까.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만 여성 인권과 배금주의 등을 들먹이고 싶었던 걸까. 예쁜 여학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 같은 부류를 속물로 한껏 업신여기고 싶었던 걸까. 그럼으로써 상대적으로 고상한 위치에 서려고? 그렇다면 그야말로 속물 중의 속물이 아니었을까.

남과 다르고 싶어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까지 위장했으니까.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 친구는 물론 자신마저 기만하다니. 달아오른 내 얼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겉으로는 메이퀸을 혐오하면서 어째서 가슴 깊은 곳에 메이퀸을 품는가. 그는 여성 인권과 배금주의를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그냥, 이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냥! 그것은 침묵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혐오는 진짜 혐오였을까 아니면 혐오해야 한다는 이념적 당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싫다고 말해 버린 것일까.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남들 다 좋아하는 메이퀸을 싫어한다고 말함으로써 100분의 1,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남다른 차별적 인물이 되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그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지, 왜 좋고 왜 싫은지 잘 모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메이퀸이 좋기만 했던 나는 메이퀸을 정말 좋아했던 걸까.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메이퀸 선발 제도와 취지와 방식까지 좋아했을까. 그런 건 정말 싫고 메이퀸 개인만 좋아했던 걸까. 메이퀸 선발 제도와 취지와 방식에 적극 찬동하여 마침내 메이퀸의 권좌에 오른 그녀를?

한창 고민과 번민을 즐기던 20대의 추억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라면 무엇 하나 간단치가 않았는데 나이를 먹어도 명쾌해지지 않는 것이 그 문제인 것 같다.장미의 계절 5월. 이제 메이퀸은 대학 캠퍼스 어디에서도 선발되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이 봄 누군가를 선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리이지만 준엄한 의무여서 피할 수 없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거기에 이유는 있는가. 그 이유를 따라야 하는가. 그 이유는 정녕 내 이유인가. 이유는 바뀔 수 없는 것인가. 추억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소설가 구효서 1957년 강화에서 태어나 1987년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타락>, <동주>, <랩소디 인 베를린>, <나가사키 파파>, <비밀의 문>, <라디오 라디오>, 소설집 <별명의 달인>, <저녁이 아름다운 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산문집 <인생은 깊어간다>, <인생은 지나간다>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1월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소설집 <아닌 계절>을 출간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0호 (2017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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