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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즐기는 도심여행, 잠시 유유자적… 북촌 산책
기사입력 2017.02.24 10: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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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주말 오후, 강원도 속초의 관문인 미시령 고개에 들어서니 겨울 볕이 생각보다 따땃~하다. 휴게소에 들러 밖으로 나서니 어린아이를 안고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 뒤로 손만 뻗으면 잡힐 듯 우뚝 선 울산바위가 알프스 산세 못지않게 웅장하다. 그런데 잠깐, 옆에서 산세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던 한 중년의 가장, 이제 막 예닐곱 살 됐을까 말까한 막내딸의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아빠, 근데 우린 언제 해외여행 가? 친구들은 이번 방학에 다들 비행기 타러 갔는데….” “다음 휴가 때는 꼭 비행기 타러 가자”며 차로 이동하는 아빠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좀 더 부연하면, 아니 어쩌면 ‘너보다 내가 더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가고 싶다. 혼자 가면 더 좋구’라고 곱씹었을지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미시령 휴게소에 들러 울산바위를 보고 있자니 며칠 전 그 가족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곤 머릿속을 스친 생각 하나, 해외로 훌쩍 떠난 듯 국내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곳 어디 없을까.

▶조선시대 양반의 숨결 그대로, 북촌 나들이

600여 년 전 선조의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해외여행의 추억이라니. 언뜻 얼토당토않지만 북촌 골목을 한 땀 한 땀 메운 기와 한 장, 벽돌 하나의 모양새는 아파트와 빌라가 주거공간의 전부인 세상에서 어쩌면 흔히 접할 수 없는 이국적인 멋이 돼버렸다. 말로 혹은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는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해외관광객을 제외하고) 주중에도 북촌 골목을 헤매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우선 북촌(北村)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자리한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당연히 한옥이 빼곡하다. 여기에 사적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그득해 도심 속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고 있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 하여 북촌이라 했는데,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소격동, 재동 등이 수백 년간 북촌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어깨를 맞댄 한옥이 따닥따닥 도열한 듯 붙어 섰는데, 사실 북촌은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의 주거지였다. 1906년 호적자료를 살펴보면 북촌 전체인구 중 양반 혹은 관료가 43.6%나 됐다. 그들이 소유한 대규모 토지가 조선 말기에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소규모 택지로 분할됐고, 1930년을 전후해 작은 한옥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출세하려면 서울로 가라 했던가. 당시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도심 고밀도화가 낳은 산물이다. 백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북촌은 풍수지리적으로도 가장 좋은 곳이다. 북쪽이 남쪽보다 높아 겨울엔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되며 남쪽은 넓게 트여 있어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전망을 갖추고 있다.



▶북촌 8경에서 사진 한 장 찰칵

북촌산책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시작된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작되는 계동길. 이 좁은 골목길로 전진하면 시간이 멈춘 듯 수십여 년 전의 서울이 눈에 들어온다. 1940년에 개업했다는 최소아과의원의 붉은 벽돌건물이 아담하고 그 주변에 펼쳐진 구멍가게와 참기름집이 소박하다. 그 사이사이에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카페가 자리했는데,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 틀이 딱 맞게 들어선 폼이 이채롭다. 계동길 초입에 자리한 ‘북촌문화센터’에 들어서면 북촌의 역사가 오밀조밀하게 전시돼 있다. 산책에 나서며 작은 지도 한 장 얻기 위해선 꼭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다.

서울재동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북촌로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길을 중심으로 오른편은 가회동 11번지, 왼편은 가회동 31번지다. 나름 북촌 산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손꼽히는 곳인데 11번지에는 전통공방이, 31번지에는 뷰포인트가 자리하고 있다. 11번지를 먼저 둘러보고 31번지로 걸음을 옮겨 삼청동으로 돌아나가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여기서의 시작점은 가회동 성당이다. 최근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가 결혼식을 올리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관광객이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이기도 하다.

가회동 11번지는 가회민화공방, 동림매듭공방, 북촌전통공예체험관, 한상수자수박물관 등 전통공방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외국인관광객들의 패키지 코스이기도 한데, 길을 걷다보면 휴대폰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의 표정이 천차만별이다. 조금 과장하면 동서양인들의 이모저모를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대편인 가회동 31번지는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11번지를 찾은 관광객들이 서로 모여 셔터를 누른다면 이곳에선 나 홀로 셔터를 누르는 이들의 모양새가 가지각색이다. 전 세계 사람 구경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경사진 길을 오르다 보면 살짝 숨이 차오르는데, 이 시점에 삼청동으로 연결된 돌계단길로 내려서면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그득하다.
고즈넉한 삼청동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겐 아쉬운 면인데, 이 또한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면 알록달록한 거리의 변화가 경이롭다.

북촌의 문화유산 북촌에는 사적 5곳, 서울시 민속자료 4곳, 유형문화재 3곳, 문화재자료 1곳 외에 석정보름우물, 광혜원터와 서울미래유산인 한용운 가옥, 구 한국미술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1750년 ‘도성도’, 1892년 ‘수전전도’, 1927년 ‘경성시가도’, 2000년 이후인 현재 지도까지 살펴보면 계동길, 가회로, 삼청동길, 창덕궁길 등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7호 (2017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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