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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폭탄에 임대료 절반까지 ‘뚝’, 콧대 높던 가로수길 건물주 곡소리
기사입력 2019.01.07 17:31:37 | 최종수정 2019.01.17 1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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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핫’했던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이 공실폭탄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월세가 반토막났다. 이 상권은 최근 유통·패션 대기업들이 공격적인 경품행사를 벌이고, 치고 빠지는 식의 팝업 스토어가 곳곳에 들어오면서 다시 반짝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와 천편일률적으로 바뀐 대기업 상권, 확 줄어든 유동인구로 장기임대 시장은 붕괴 직전에 몰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로수길 상권의 임대료가 고점대비 절반 정도로 깎이면서 본격적인 ‘월세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매일경제신문이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의 임대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점포들의 임대료 호가가 급락하고 일부 상가는 아예 임대를 포기한 채 엑시트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35-14에 위치한 디스커버리엑스페디션 빌딩은 최근 임차료가 급락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패션의류 업체 F&F는 건물 1~6층까지 전 층을 쓰는 조건으로 건물소유주에게 월세 1억원을 주는 임대계약을 지난 5월 체결했다. 임대차 기간은 5년으로, 내부 인테리어를 마친 후 디스커버리익스페디션 매장을 지난 9월 입점시켰다.

이는 직전 임차인이 커피숍 등을 운영하면서 막판 월 1억7000만원까지 월세를 낸 것에 비하면 40% 넘게 깎인 액수다. 이 건물의 직전 임차인은 4000만원대 임차료를 주기 시작하다가, 가로수길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막판 4배까지 오른 월세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동에서만 20년 가까이 빌딩중개를 해온 A씨는 “건물을 통째로 쓰는 가로수길 월세가 불과 5년 전만해도 3000만원 선이었는데 2017년 4~5배까지 폭등하면서 주변 상권이 초토화됐다”며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패션의류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로수길 빌딩 쇼핑에 나서면서 임대료 급등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과 상권 획일화에 따른 고객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면에 있는 일명 ‘세로수길’ 역시 임대료 급락충격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세로수길 5층 건물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1년 넘게 공실이었다가 올해 2분기 가까스로 채워졌다.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업체는 이 건물 소유주에게 월 8000만원은 임대료로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건물주는 한 의류업체에게 월 4000만원에 5년 장기임차를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콧대 높은 신사동 건물주가 1년의 공실을 버텨내지 못하고 월세 절반을 깎아 임차인을 구한 것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가로수길 빌딩주들은 공실을 몇 달 감수하더라도 주변 빌딩보다 낮게 임대를 줄 수는 없다고 버텨왔다. 돈과 젊은이들이 몰리는 가로수길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면 ‘조물주 바로 아래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담합은 가로수길 메인도로 변의 ‘1층 공실’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사동 전문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금 가로수길 일대에서 임차인을 구하려면 고점대비 절반 가격에 내놔야 거래 성사를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 임대료를 고집하면 도저히 장기임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반값 임대라도 놓는 것이 건물을 아예 놀리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이 건물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 빌딩주는 눈높이를 확 낮춰 임대를 놓고 있지만, 남의 돈으로 빌딩을 사고 일정 수익률을 약속한 금융회사들은 마음대로 임대료를 낮출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실제로 가로수길 메인도로변의 등기부를 떼보면 은행이 수탁자로 돼 있는 빌딩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3월부터 거의 2년간 공실로 비어있는 A건물의 등기부등본상 명의는 농협은행이다. 당시 농협은행은 246억원에 건물을 매입했는데 채권최고액 260억원의 근저당권자로 송파신용협동조합·동작신용협동조합·미소신용협동조합·연수송도신용협동조합·서울치과의사신용협동조합 등 다수 협동조합이 이름을 올렸다. 다만 농협은 수탁은행이어서 해당건물의 실소유주는 국내 자산운용사다.

디스커버리 매장 월세 1억7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월세 뚝

세로수길 상가는 8000만원서 4000만원으로 반토막


해당 건물에 투자한 운용사는 투자자에게 연 6~7% 수익률을 약속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월세 2억원을 받으려 했으나 이 월세를 내고 들어올 임차인은 없었다. 현재 이 건물의 월세는 1억7000만원까지 낮춰졌지만 여전히 임차인은 구해지지 않고 있다. 건물을 그냥 놀릴 수 없어 이 빌딩에는 열흘에서 최대 한 달 정도 사용하는 팝업 스토어들이 종종 들어오고 있다. 단기 임대료는 월세 기준으로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월세 수준은 물론 수익기간 안정성 면에서 모두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농협 측은 “해당 빌딩은 농협이 수탁자로서 명의만 농협인 건물”이라며 “투자자는 국내의 한 펀드”라고 설명했다. 농협은 결제대행 외에 운용사의 펀드투자를 감시하고 기준가를 산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신탁 수수료를 받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신탁자로 기재된 P자산운용사도 자신들이 실제소유주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P자산운용사는 “당초 기대와 달리 장기임차인이 구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사실 이 건물을 사들인 전주는 해외 펀드로서 국내 자산운용사 면허가 없어 우리가 대행만 섰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곳저곳 복잡하게 물린 금융구조 속에서 수수료를 받아가는 곳은 한두 곳이 아니지만 금융사만 믿고 고점에 올라탄 투자자들만 낭패를 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맥을 추지 못하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대체투자펀드가 관심을 모으고 있어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금융사가 약정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임차인의 무상 임대기간을 늘려주는 등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마저 나오고 있다.

가로수길 메인도로 변에 위치한 국민은행 명의(수탁자)의 B빌딩은 올해 가까스로 5년 장기임차인을 구했다. 해당건물은 우리은행 신탁부에서 관리하던 건물로 층별로 명의를 쪼개 운영하다가 매매가 210억원에 국민은행으로 2018년 3월 소유권이 넘어갔다. 국민은행은 하나은행에 채권최고액 116억원의 근저당권, 하나생명보험에 채권최고액 12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해당 건물의 신탁자는 I자산운용이다. 60개월 임차인을 맞춰놓은 ‘마스터리스’ 계약으로 당분간 임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런 임대차 계약이 가능했던 것은 파격적인 부대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0개월의 임대차 기간이지만, 실제로는 공사기간 2개월, 무상임차(랜트프리) 3개월 등 총 5개월치 월세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연 6~7%의 임대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65개월 임차료를 60개월 분으로 과다 계상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임시방편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셈이어서 5년 후 제대로 계약할 경우 현재의 월세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변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며칠 정도 여유기간을 두는 경우는 있지만 인테리어 기간 2달, 무상임차 3달 등 5달을 공짜로 내주는 건 가로수길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금융사들이 약정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나온 편법적인 발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I자산운용 측은 “외국에서는 인테리어 공사 등을 위한 무상임차 기간이 흔한 일이다”라며 “임차인을 아예 못 받는 것보다 투자자에게도 이로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회사뿐 아니라 애경·롯데·제일모직·이랜드 등 법인명의 건물들도 과도하게 높은 월세 호가와 실제 수요 사이에서 공실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태생 자체가 좁은 도로, 낮을 빌딩 기반으로 세워져 넓은 주차장과 광폭 도로를 갖춘 대량 공급식 유통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금융당국에서 신사동 가로수길을 비롯한 핵심 상권 빌딩의 임대료와 거래 현황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급등기에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서울의 꼬마빌딩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또 제조업을 영위하던 중소기업들도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해 시설투자 대신 부동산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당국은 수출 둔화에 따른 영업이익 악화, 금리인상에 따른 비용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가 가격과 임대료까지 떨어지면 담보가치 하락으로 중소기업 경착륙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가로수길을 비롯한 강남 주요상권의 임대료는 최근 급전직하하고 있지만 강남 빌딩 매매는 아직 가격과 거래규모 면에서 굳건한 방어선을 지키고 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아파트와 고급주택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면서 일종의 풍선효과로 꼬마빌딩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한 상황에서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점도 강남빌딩의 매력을 높이는 이유다. 고점에 투자한 금융회사들 발만 동동…

수익률 약정으로 임대료 확 못 깎고 공실




매일경제신문이 빌딩전문 중개업체 빌사남과 함께 2018년 강남구 빌딩거래 전수조사를 한 결과, 총 295건의 매매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2018년 12월 11일까지 국토교통부 신고 등기부등본 기준으로 한 해 전체로는 300건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년 강남구 빌딩거래 건수 205건보다 무려 44%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역삼동과 삼성동, 대치동, 개포동의 매매건수가 급증했다. 역삼동은 2017년과 2018년 모두 강남구 내 빌딩거래 건수 1위를 기록했는데, 2017년 55건에서 2018년 82건으로 27건 늘었다. GBC타워와 영동대로 지하화 등 개발호재가 풍부한 삼성동은 2017년 14건에서 2018년 32건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대치동은 2017년 15건에서 지난해 30건, 개포동은 9건에서 20건으로 거래가 확대됐다.

반면 2017년 41건이 거래돼 2위를 차지했던 논현동은 지난해 36건으로 줄었고, 신사동도 31건에서 37건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금액대 별로는 50억원 미만의 꼬마빌딩이 155건으로 가장 많았고, 50억~100억원 73건, 100억원 이상이 67건을 차지했다. 매수자의 연령대는 40~50대가 주력을 이뤘다.

199명의 개인매수자 중에 50대가 64명, 40대가 61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60대가 29명, 70대는 20명이었고, 20대와 30대는 각각 5명, 13명이었다. 강남빌딩을 사들이는 ‘큰 손’들은 은행대출을 거의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일어난 295건의 거래 중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이 전혀 설정되지 않은 거래는 70건(23.7%)이나 됐다.

강남빌딩을 사는 4명 중 1명은 전액 현금을 내고 빌딩을 사들인다는 얘기다. 대출을 내더라도 매매가의 50% 이내인 경우가 82건(27.7%)을 차지했다. 빚 없이 현금으로 빌딩을 사는 비중은 2017년에 비해서도 확연히 늘어났다. 205건 거래 중 ‘대출 0%’인 경우는 42건으로 20%를 약간 넘어섰다. 강남 빌딩을 사들이는 사람은 대부분 강남구나 서초구 등 부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강남구 빌딩을 사들인 개인 매수자 199명 중,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강남구인 사람은 83명으로 40%를 넘었다.

인근의 서초구가 27명, 송파구가 9명으로 ‘강남3구’ 주민이 강남구 빌딩의 60%를 올해 사들였다.
서울이나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은 지방 거주자는 15명(7.5%)밖에 되지 않았다.

가로수길 알짜입지 건물들이지만 공실로 인해 조명이 꺼진 점포가 눈에 띈다.



강남 주민들의 강남 빌딩 투자 트렌드는 재력과 정보 때문인 면도 있지만, 강남권의 주택규제가 집중된 것도 그 이유로 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강남 이외의 곳에 묻어두기가 쉽지 않은데 정부가 재건축을 비롯한 다가구 주택구입을 막으면서 강남 빌딩으로 뭉칫돈이 들어가고 있다”며 “임대가 나가지 않아 공실이 생기는데도 강남빌딩 매매가 여전한 건 이런 정책 풍선효과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범주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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