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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치료제? AI·VR로 진화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우울증, 암, 만성질환 관리까지
기사입력 2021.01.07 1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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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만화영화도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DTx)’가 될 수 있을까.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암센터에서 흥미로운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화학요법으로 항암치료 중인 18세 이상 부인과 환자 56명을 모집해 절반의 실험군에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게 하고, 나머지는 보여주지 않은 채 감정 상태 등을 관찰한 것이다. 미국 의사협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이 지난 5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이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에서 화학요법 중 디즈니 영화를 보는 것이 부인과 암 환자들의 정서적·사회적 기능, 피로상태 개선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암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치료제’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논문에서 DTx로 검증한 디즈니 영화는 모두 1990년대 이전에 나온 일부 영화라는 점이다. 연구진이 환자들에게 보여준 작품은 1950년작 <신데렐라>와 1964년작 <메리포핀스>, 1967년작 <정글북>, 1973년작 <로빈 후드>, 1989년작 <인어공주> 등 8편이었다.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이나 <알라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게임, 만화영화, 명상이 약(藥)?… 디지털 치료제의 진화

디지털 치료제가 뜨고 있다. 게임으로 주의력결핍장애(ADHD)를 치료한다는 디지털 기기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STD) 치료에 활용되는 VR영상도 있다. 미국의 유명한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는 2020년 명상을 활용해 의사가 처방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FDA는 2020년 6월 아킬리 인터랙티브 랩의 비디오 게임 ‘인데버 알엑스(Endea vorRX)’가 ADHD 어린이의 주의력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디지털 치료기기로 승인했다. FDA가 ADHD 증상 완화를 위해 디지털 치료기기를 승인한 것은 처음이다. 이 게임은 공중을 떠다니는 쟁반모양의 호버보드를 타고 경주로를 달리는 방식이다. 아킬리는 이외에도 자폐스펙트럼 장애, 주요 우울장애 및 다발성 경화증 등 다양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FDA는 이전에도 디지털 치료제를 잇달아 승인해줬다. 2017년 페어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약물중독 치료 앱 ‘리셋(reSET)’이 중독약물을 끊는 기간을 늘리고 외래 치료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준다는 효과를 인정받아 FDA 문턱을 넘었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이후 이 제품을 마약중독 치료 앱 ‘리셋-O(reSET-O)’로 세분화해 추가 승인을 받았고 ‘솜리스트(Somryst)’라는 불면 치료제로도 FDA 허가를 받았다. 아킬리와 페어 테라퓨틱스는 기존 의료영역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회사들이다.

디세라 사이언스는 알츠하이머와 관련한 우울과 불안 증상을 줄여주는 제품(DTHR-ALZ)을 개발해 FDA 혁신 의료기기 지정을 받았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환자가 짓는 표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식으로 치료효과를 극대화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쓰리빌리언이 개발한 소아 희귀질환 진단키트와 분석 소프트웨어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관리 영역에서는 다양한 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체중감량과 당뇨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한 눔(noom)은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회사다. 흔히 다이어트 앱으로 불리지만, 인지행동치료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인지행동치료제에 가깝다. 눔 외에도 당뇨 분야에서는 오마다와 리봉고, 라크 등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리봉고의 2019년 매출은 1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디지털 치료제가 의료계에 자리 잡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의 저자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은 “‘표준치료’라는 개념이 있다. 이 치료법이 바탕을 둔 원리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어 있고 의학적 근거가 있다고 의사들이 받아들이는 치료방침을 말한다”면서 “그런데 게임이나 명상 앱 등은 아직 치료방법의 하나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계가 치료제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디지털 치료제도 그렇고 의료계 AI 도입도 계속 ‘수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라며 “의사와 비슷한 업무를 해서는 수가를 추가로 받기 어렵고 본격적인 치료제품이 나오거나 의사들이 현재 보기 어려운 것을 AI가 찾아내는 수준이 되어야 시장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외국 시장에서는 올해가 디지털 치료제가 자리 잡는 원년이 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김 원장의 예상이다.

▶사우디 수출까지 눈앞에 둔 토종 AI 닥터… 8대 질환 진료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AI) 의사는 IBM이 만든 ‘왓슨’이다. 가천대 길병원을 비롯해 국내 대형병원들이 암 진료에 잇달아 도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왓슨 도입과 맞물려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의사로 ‘닥터앤서’가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년간 약 364억원을 투자해 26개 의료기관과 22개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지원하면서 닥터앤서를 만들었다. 총 참여인원은 1962명에 달한다.

닥터앤서란 AI와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병원(ER)의 합성어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지원하는 SW를 말한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AI 닥터’라는 의미도 있다. 닥터앤서는 심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은 물론 치매와 뇌전증, 소아희귀질환까지 총 8개 질환을 연구(데이터 학습)했다.

3년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21개 전문 SW가 개발됐고, 7개의 AI 닥터(SW)가 국내 38개 병원 진료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발병을 예측하고 진단 정확도를 높이며 치료 지원까지 의료진의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분석해 의사가 대장용종을 놓치지 않도록 더블체크해주고, 뇌 MRI 영상을 보고 부피나 수축 정도 등을 분석해 의사가 알츠하이머를 조기에 진단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내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 여부도 결정될 전망이다. 국내 의료기관이 교차검증한 결과를 사우디 환자들에게도 적용 가능한지 국방보건부 산하 6개 병원에서 검증하고 있다. 2월 말 검증이 끝나면 일부 AI 닥터가 사우디 병원으로 ‘파견’될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8대 질환에 총 25개 의료기관(1개 대학)과 20여 개 기업이 고루 참여하도록 닥터앤서 컨소시엄을 꾸렸다. 기업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병원들은 시스템 구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 카카오브레인, 데이터스트림즈, 아이티아이즈 같은 ICT 기업들도 공통플랫폼 사업자로 참여했다.

예를 들어 서울아산병원이 주관하는 심뇌혈관질환 부문에는 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총 6개 병원이 참여했고 라인웍스와 제이엘케이인스펙션, 경북대 산학협력단, 코어라인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함께했다. 이 컨소시엄은 관상동맥 석회화 자동진단, 심혈관질환 재발 예측, 뇌동맥류 병변 진단, 뇌출혈 진단 소프트웨어(SW)를 개발했다.

삼성 헬스 모니터 앱 갤럭시 워치 액티브2

세브란스병원 주관하에 총 5개 병원이 참여한 심장질환 부문은 휴레이포지티브가 기업으로 참여해 심장질환 발병위험도 예측, 심장질환 진단, 다면데이터 통합시각화 SW를 개발했다. 유방암을 연구하는 삼성서울병원 주관 컨소시엄은 빈티지랩, 가천대 길병원이 주관하는 대장암 컨소시엄에는 이원다이애그노믹스, 인피니트헬스케어, 피씨티가 참여했다. 전립선암(서울성모병원 주관) 닥터앤서 개발에는 딥바이오, 라이프시멘틱스, 뷰노가 참여했고 치매에는 뷰노와 이지케어텍, 뇌전증에는 바임컨설팅과 엘렉시, 플랜잇파트너스, 소아희귀 유전질환에는 쓰리빌리언(3billion)이 개발을 맡았다.

닥터앤서 프로젝트는 의료기관은 물론 많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 성공사례를 만들어줬다. 기업들이 아무리 좋은 인공지능(AI) SW를 개발해도, 상용화하려면 AI가 학습할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병원 현장에 있는데 개별 기업들이 일일이 의료기관을 찾아가 SW를 사용해달라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두아 휴레이포지티브 대표는 “닥터앤서 프로젝트는 대형 병원의 참여가 활발하다보니 임상과 실증의 기회를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었다”면서 “특히 AI 헬스케어는 국내는 물론 해외 마켓이 중요한데 정부가 닥터앤서라는 브랜드로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해줘서 스타트업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애플워치 6, 애플워치 6에 기록된 건강 기록

▶당뇨 관리하고 소변 소리 분석해주는 앱

스마트워치는 늘 함께하는 건강관리사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만 있으면 손쉽게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앱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고, 24시간 내내 곁에 두는 제품들이다보니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입장에서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공략 1순위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2021년에도 스마트워치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도 스마트워치 시장 확장을 노리고 중국 시안에 대규모 연구소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워치와 갤럭시 워치는 이미 헬스케어 산업에서 팽팽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이 ‘애플워치 6’에 혈중산소포화도 측정기능을 탑재했고, 삼성도 ‘갤럭시워치 3’에 심박, 혈압, 심전도(ECG) 측정기능은 물론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기능도 넣었다. 애플과 삼성전자 모두 낙상감지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스마트워치에 탑재해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닥터다이어리가 출시한 당뇨환자용 혈당기



소변(오줌발) 소리를 분석해 전립선 질환을 관리해주는 앱도 있다. 사운더블헬스(대표 송지영)가 개발한 ‘프라우드P(proudP)’는 남성 배뇨건강을 체크하는 앱으로 개발됐다. 전립선·배뇨 질환은 전 국민 5명 중 1명꼴로 당뇨보다 환자가 많은데도 쉬쉬하느라 방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주목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2만4000명 이상이 다운로드했다.

이 앱은 미국의 여러 비뇨기과병원에서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 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2등급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는데, 의료기기 버전에서는 화장실에서 앱을 실행시키고 ‘두 번(시작·마침)’만 클릭하면, 알아서 소변 보는 시간과 소리를 분석해준다. 인공지능(AI) 엔진이 불과 몇 초 만에 배뇨량·최대요속·평균요속·배뇨시간을 그래프로 그려서 보여주며, 측정결과는 대시보드에 저장된다. 전립선과 방광질환 환자들은 이 데이터를 들고 병원을 찾으면 된다.
의료기기가 아닌 한국용 앱에서는 소변량이 적은지(150cc 미만인지), 소변 흐름이 강한지 괜찮은지 약한지 (최대요속을 Strong, Good, Weak로 표현) 정도만 알려준다. 반복적으로 ‘소변량이 적다’ ‘Weak’ 라는 결과가 나오면 전립선비대증 등 질병 증상일 수 있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네이버에서 투자를 받았고, 특히 2020년 코로나19로 원격진료가 늘어나면서 미국 병원들의 문의가 급증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 제품은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건강관리 앱 ‘닥터다이어리’도 있다. 현재까지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35만 건에 달한다. 닥터다이어리 앱은 혈당, 혈압, 약물, 식단, 운동량 등을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으며 환자 커뮤니티와 교육 콘텐츠 등으로 당뇨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분기별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교육 모임 ‘당뇨학당’, 혈당 측정기나 당뇨관리식단, 간식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닥다몰’까지 이용할 수 있다.

뷰노 AI닥터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닥터 앤서 분석결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송제윤 대표가 꼽는 닥터다이어리의 가장 큰 장점은 환자 커뮤니티다. 당뇨와 긴 싸움을 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당뇨관리 노하우, 고민 등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닥터다이어리는 출석 체크, 건강관리 미션 등을 통해 자가 관리를 철저히 하는 환자에게 보상(현금성 포인트)을 주고 ‘무상 체험단’을 운영해 동기를 부여한다. 여기에 당뇨환자를 위한 전용 쇼핑몰 ‘닥다몰’, 무설탕 저탄수 식이연구소 ‘무화당’ 등 당뇨관리에 집중한 사업모델로 성공했다. 최근에는 고객이 다니는 병원 시스템에 사용자 데이터를 연동하고 있다.
진료 시 질환자가 기록한 데이터를 의료진이 직접 열람함으로써 더욱 간편하고 정확한 진료가 가능하도록 협력 의료기관과 함께 개발 중이다. 지난 11월에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한 당뇨환자 맞춤 혈당기를 출시하기도 했다. 향후 질환자들이 혈당 시험지 등 소모품을 매번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혈당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식단과 간식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구독 서비스’도 기획하고 있다.

[신찬옥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4호 (2021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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