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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블러(Big Blur)로 뜨거워진 라이프스타일 시장, 유통업계 ‘공간에 스토리 입히기’ 부동산은 ‘라이프스타일 상업시설’ 주목
기사입력 2019.02.11 16: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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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택시회사 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은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공간을 구성했다. 연남장 1층의 대형 테이블은 평소에는 일을 하거나 식사와 커피를 마시는 테이블 기능을 하지만 이벤트가 있을 땐 무대로 바뀌어 공연, 전시,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또 1층과 2층 사이에는 메자닌(Mezzanine) 공간을 두어 1층에서 이뤄지는 공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쉽도록 꾸몄다.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적합하다는 뜻인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다. 대형 테이블의 의자 한 자리마다 한 개씩 콘센트를 설치한 것은 물론이다.

연남장 공간을 기획한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는 “온라인 e커머스 중심의 소비구조가 가속화되면서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콘텐츠가 중요해졌다”면서 “앞으로는 공간의 하드웨어보다는 그 공간만의 스토리와 문화적 서비스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단순 브랜드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미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 부동산업계는 공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상품 판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물건만 팔던 유통업과 공간만 제공하던 부동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가 가속화되고 있다. 빅 블러란 기존 업(業)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흐릿해진다’는 뜻의 영어단어 ‘블러(blur)’에서 유래했다.

애경이 홍대입구역에 오픈한 쇼핑몰 ‘AK& 홍대’에서는 매주 홍대 인디밴드의 공연이 열린다. 지난해 9월 애경 AK& 홍대의 오픈 기념으로 래퍼 김하온이 공연하고 있다.<사진제공=AK플라자>



▶유통 업체, e커머스 발달로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콘텐츠 필요

‘공간’이라는 하드웨어보다 전시, 공연 등 소규모 행사 등 소프트웨어로 차별화

공간기획의 중요성은 한국 커피시장에서 벌어진 별다방과 콩다방의 ‘커피전쟁’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스타벅스(별다방)는 1999년 한국에 진출해 현재 매장 수가 1240개에 달한다. 반면 스타벅스보다 2년 뒤인 2001년 한국에 진출한 커피빈(콩다방)은 매장 수가 채 300개가 안된다. 매출 규모는 차이가 더 크다. 커피빈코리아는 2017년 매출 1576억원, 영업이익 61억원을 기록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매출액 1조2634억원, 영업이익 1144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커피업계에서는 한국시장에서 커피빈의 부진을 한국 커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외면하고 공간기획을 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매장 내 와이파이를 지원하지 않고, 콘센트 없이 ‘커피 맛에 집중하라’는 커피빈은 지난해부터 신규매장을 중심으로 콘센트를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한 때 라이벌이었던 스타벅스에 비해 이미 경쟁에서 크게 밀린 상황이다. 결국 커피빈은 커피에만 신경 쓴 나머지 커피를 마시는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커피 맛도 중요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지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저자인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도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SNS, 체험경제, 공유경제 등과 연결되면서 한 세대를 정의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밀레니얼과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며 특히 ‘공간’에 대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스타벅스는 커피뿐 아니라 매력적인 공간과 도시문화,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하면서 편리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할리스, 이디야 등 토종 브랜드의 선전이 눈에 띄는 이유도 국내 업체들이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파는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커피숍의 ‘콘센트’는 대표적인 사례다.

할리스커피가 최근 광화문에 오픈한 프리미엄 매장 ‘센터포인트점’에는 콘센트의 설치 개수가 72개로 전체 약 140개 좌석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할리스커피 강남점도 콘센트와 스탠드가 있는 1인용 좌석이 절반을 넘는다. 할리스커피는 매장 수가 지난 2013년 382개에서 지난해 507개까지 늘었고 매출액도 본사 1409억원을 포함해 전체 매출액이 2973억까지 올랐다. 업계에서는 할리스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겨냥, 라이브러리 매장을 내세우는 등 변화하는 소비자의 행태와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상권 별로 고객 유형에 맞춘 매장을 만든 것을 성장배경으로 꼽고 있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는 “한국의 커피숍에서 ‘콘센트’의 존재는 커피라는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맞는 공간 그 자체를 한 데 엮어 상품으로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석하며 “특히 저성장 시대에 주력 소비계층으로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는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디자인된 공간을 소비하려 하는 만큼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 롯데, 애경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쇼핑몰 구축도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강조하는 추세다. 애경그룹이 지난해 8월 홍대입구역에 오픈한 애경타워는 1~5층에 쇼핑몰 ‘AK& 홍대’를 넣고 3층을 제외한 전 층에 디저트카페 매장을 배치해 차별화를 뒀다. 매주 주말에는 홍대 상권의 인디밴드 마니아를 위한 공연도 펼쳐진다. 반면 최근 오픈한 ‘AK& 기흥’은 젊은 층에 특화된 홍대와는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콘셉트를 잡았다. 기흥구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6%가 30~40대 부모를 중심으로 한 패밀리 고객이란 분석을 통해 가족이 선호하는 카테고리인 ‘극장, 서점, 뷰티, 패션’에 중점을 뒀다. 테마파크 구성에서도 어린이만 만족하는 놀이 공간이 아닌 아빠도 함께 즐길 수 있는 VR체험, 카트 체험, 복고풍 롤러장 등을 함께 구성했다.

김재욱 AK플라자 과장은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내년부터는 전 매장에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전자책 도입, 신진디자이너 상품 배치 등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최근 선보이고 있는 ‘AK&’ 쇼핑몰은 상권에 따른 고객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쇼핑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부동산 개발, 건설업체들은 토지를 사고, 건축물을 지어 분양하는 하드웨어 공급자로서의 역할만으로도 성장 경제시대의 풍부한 수요를 바탕으로 수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공간이 어떤 차별적 편익과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상황이 됐다.

할리스 커피클럽 센터포인트점 롱테이블 콘센트 좌석 이미지



▶부동산에선 라이프스타일 제안

네오밸류 전담 조직 만들어 연구

아이에스동서 100억원 투자

라이프스타일 공간기획 전문가들도 상한가

“인테리어나 외형보다는 Z세대 가치관

이해해야 미래 유통공간 전략수립”

소득수준이 3만달러에 이른 성숙 경제사회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공산품 같은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하지 않고, 본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로컬 브랜드, 커스터마이징된 제품과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시대가 됐다. 예를 들어 패밀리레스토랑이 점점 쇠퇴하고 작지만 오너쉐프의 개성이 담긴 레스토랑들이 각광을 받게 되는 것, 대중 매체의 브랜드 광고보다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주는 인플루언서들의 SNS 후기에 더 민감해지는 것 등이 그 반증이다.

부동산업계는 기존 사업영역인 주거, 업무, 상업공간이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와 개성 없이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파티션으로 나눠진 닭장 같은 업무 공간, 성냥갑으로 표현되는 획일화된 아파트와 오피스텔, 부동산 중개업소,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점들로 가득찬 상가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위워크, 패스트파이브와 같은 공유오피스, 다양한 공용공간과 서비스를 갖춘 레지던스, 서비스드 오피스텔, 오버더디쉬와 같은 셀렉트 다이닝, 츠타야서점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상업공간들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업계가 건물만 짓던 관행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네오밸류는 ‘라이프스타일 부동산 개발’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회사 내 라이프스타일사업부를 신설, 부동산 개발과는 거리가 먼 유통, 패션, 키즈공간 기획자, 아트 디렉터(큐레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기획 및 개발, 운영까지 하고 있다. 앞으로 익선동에 전개할 상업공간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모종린 연세대 교수, 유현준 홍익대 교수에게 자문을 받고 있다. 밀레니얼이 원하는 문화와 가치를 담은 공간과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이다.

이렇게 네오밸류가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지속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상업 공간을 물건 사는 장소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자체 분석 때문이다. 이제는 ‘가치’와 ‘경험’,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사는 시대이기 때문에 디벨로퍼는 단순히 건물을 지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간적 가치와 도시문화를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를 추구하는 부동산 개발회사 ‘네오밸류’의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 전통적인 개념의 사무공간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분위기에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연구한다. <사진제공=네오밸류>



손지호 네오밸류 대표는 “부동산 디벨로퍼로서 갖고 있는 ‘공간’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잘 담아낸다면 제대로 된 상업공간, 지속가능한 상업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 및 개발업체 아이에스(IS)동서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공간 기업인 OTD에 100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을 끌었다. 아이에스동서의 이 같은 투자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섬세하게 잡아내고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들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협업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판단이 있었다.

권민석 IS동서 대표는 “OTD는 식음료(F&B) 분야에서 시작해 띵굴마켓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서비스 역량을 갖춰나가고 있다”면서 “아이에스동서의 부동산 개발, 건축 프로젝트에 협업해 리테일 상업공간 콘텐츠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고자 전략적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아이에스동서는 향후 공간 콘텐츠를 갖춘 다양한 파트너들과 공동투자,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담은 상업용 공간 개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딜로이트안진은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토마스 컨설턴트’를 인수하며 정동섭 대표를 전무로 영입했다.
정 전무는 스타필드 하남·고양을 비롯해 IFC몰, AK& 홍대·기흥점 등 유통업체들의 복합쇼핑몰 개발사업 핵심전략을 수립했다.

정 전무는 “라이프스타일 리테일 공간을 추구하는 유통업체들은 앞으로 공간의 디자인과 같은 겉모습보다는 밀레니엄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인 Z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세대들이 ‘왜 공유차량을 타고 공유주택에 거주하는지’를 이해해야 미래 유통공간의 핵심전략도 세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기정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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