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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질병으로 분류된 게임중독… 게임업계 vs 의료계 “전쟁 끝나지 않았다”
기사입력 2019.07.08 14:29:14 | 최종수정 2019.07.08 15: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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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을 마약, 알코올, 담배 중독처럼 질병으로 분류해 치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안건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통과된 뒤 수주가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중독을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은 오는 2022년 1월에 발효되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국내질병분류체계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안은 2026년부터나 시행될 예정이지만 그 사이에도 뜨거운 토론이 계속될 전망이다. 유독 게임중독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의견도 첨예하게 갈려왔던 한국에서는 게임업계와 의료계 사이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 양상이 벌써부터 이뤄지고 있어 정부의 중재도 그만큼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년째 이어져 온 이 논란이 어디로 갈지 알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이어져오는 흐름을 알아야 한다.



▶게임 질병화, 한국이 주도했다?

한국은 유독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등록 문제가 커다란 국가적 논란이 되는 나라로 꼽힌다. 글로벌 게임업계 대변인 역할을 맡아온 미국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 협회(ESA)의 WHO 결의 반대 성명 정도를 제외하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욱 큰 게임 시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도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고 있어서 더욱 대비가 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WHO에서 만드는 ICD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만든 DSM5라고 하는 독자적 기준으로 정신과에서 게임을 다루고 있고, 가까운 일본 역시 WHO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는 만큼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두고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기무라 타카히로는 “WHO 게임이용장애는 단지 질병코드로 분류된 것뿐이다”라고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하며 “최악의 의존 위험은 알코올에 있는데 정작 술은 쉽게 구할 수 있게 하면서 게임을 중독으로 분류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시야를 조금만 돌려서 본다면 모순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늘어 시장의 10% 수준, 세계 4위권이다. 단순히 국내 시장 규모로만 따져도 14조원을 넘고, 해외 매출은 이미 40억달러(약 4조75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라고 불릴 만큼 성공적인 게임들을 만들어냈고, 부분유료화(프리투플레이) 모델을 탄생시켰던 나라가 스스로 규제하는 일에 찬성표를 던진 셈이라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게임 규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WHO의 이번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견까지 존재한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미국 스테트슨대 심리학과 교수는 “WHO 내부 고위 관계자에게서 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중국과 한국이 게임 규제에 정치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에 동의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게임과학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신석호 소아청소년정신과 원장은 각종 정신과 관련 포럼에 참가한 경험을 예로 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한국을 게임 중독이라는 특정 질환에 대해서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만든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게임중독’과 ‘게임과몰입’을 다룬 국내외 논문은 671개에 달했고 이중 한국 연구자가 쓴 논문이 91%에 달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671개 논문 중 구체적인 게임 이름을 1개 이상 적시한 논문은 채 10%가 되지 않았고, 38%인 256건은 게임 장르와 플랫폼 등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추상적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한국이 WHO에 압박을 줄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있다고 해도 실제로 행사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2011년 도입됐던 ‘게임 셧다운제’가 대표적인 예시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16세 이하 청소년이 오전 0~6시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이 법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는 PC온라인 게임 결제한도에 제한을 둔 것도 대표적인 게임 규제로 꼽힌다.

이후에도 게임중독을 막기 위해 다양한 법안들이 제출된 바 있다. 2013년 박성호·손인춘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게임사 매출의 약 5%, 1%를 게임과몰입 치료, 업계 상생을 위해 사용하도록 징수하고, 인터넷게임 중독유발지수를 측정해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게임은 제작·배급을 못하게 하는 등 규제를 담은 법안들을 발의했다. 대한중독정신의학회 출신인 신의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게임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발의해 화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가 토론회에서 “중독 물질에서 게임을 빼느니 차라리 마약을 빼는 게 낫겠다”는 강경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법안들 중에 실제로 통과된 내용은 없지만 논의 자체만으로도 국내 게임업계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번 개정 이후에도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세를 추진하거나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게임사들은 새로운 ‘게임세’ 도입을 걱정하고 있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



▶게임계와 의료계, 전쟁은 ‘현재진행형’

일단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셈이다. 직접적으로 이미지 손상과 수익 악화라는 피해를 입는 게임계와 건강권을 강조하는 의료 및 교육 단체들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WHO가 내세운 기준은 명확하다. WHO는 게임중독의 유해성이 의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고 판단하고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 ▲부정적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등의 현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게임중독으로 진단할 수 있게 했다. 증상이 심각할 경우에는 이보다 적은 기간에도 게임중독 판정을 내릴 수 있다. WHO가 이제 와서 기준을 바꾼다거나 결정을 물릴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위기에 몰린 게임계는 필사적이다. 국내 90여 개 국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은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만들고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한 유감과 더불어 국내 도입 반대를 표명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등 게임 관련 5개 단체는 지난 10일 “WHO가 만든 중독 진단 기준은 20년 전 개발된 인터넷 중독 진단 척도(IAT, 1988)를 따온 것이고, 실제로는 게임의 유해성이 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임계에는 ‘건강권, 학습권 등을 앞세워 의료계의 이익 추구를 숨기고 있다’는 반발도 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지난 3일 문화연대 토론회에 참석해서 “게임중독은 기존에는 질병으로 다루지 않던 비의학적 영역을 의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의료화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의료 보험 등이 정비되는 수년 동안 비보험으로 더욱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어낼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 게임계 관계자는 갑상선암을 예시로 들며 “지난 2014년 한국의 갑상선암 환자 발생률이 세계 평균 10배에 달했다는 결과가 있다. 과잉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의미인데 게임 중독도 아마 이와 비슷한 길을 걷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반면 의료계는 WHO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아가 환영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예방의학회·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한국역학회 등 5개 단체는 지난 10일 질병코드 지정을 지지하며 소모적 공방을 멈추고 국내 적용 진행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들은 “게임중독 기준은 50여 개의 장기 추적 연구와 1000편 이상의 뇌기능 연구를 통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결정됐다”는 반박을 하고 있다.

WHO가 만든 행위중독 대응 태스크포스에서 한국위원을 맡기도 했던 이해국 가톨릭의대 교수는 “게임에 빠져 질병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중보건적 입장에서 대응을 하는 것”이라며 “수익 악화를 우려하는 게임계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WHO의 기준을 변경 없이 그대로 적용한다는 가정 하에 국내 게임중독 유병률은 1~2%에 그칠 것이라고 보지만 게임계는 이를 두고도 국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60%에 달하는 만큼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고 응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첨예하니 갈등을 중재해야할 정부 내부에서마저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자 게임산업 주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WHO 개정안 국내 도입에 반대하고, 보건당국 주도의 민관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부처 간 갈등 양상이 비춰지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이낙연 총리가 “관계부처와 게임업계, 보건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바란다”고 지시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을 가면서 국내 게임기업 대표들을 동반해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등 게임계 챙기기에 나서며 직접적인 갈등까지는 빚어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게임중독 도입이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게임 이용자들은 도입을 반대하고, 게임 비사용자나 학부모는 도입을 찬성하는 경향을 보이며 어느 한쪽 의견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WHO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국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 수용하는 절충안도 가능성이 있다. 정부도 ‘속도 조절’에 나선 만큼 도입 전까지 더욱 많은 논의와 토론, 연구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26년까지 남은 시간이 길어 보이지만 게임과 의료 산업 모두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는 사회 문화 콘텐츠로서의 게임 문화를 만들기에는 그리 충분한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용익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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