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안전 vs 효율… 새 아파트 택배대란, 해법은 없나? 신축 아파트 설계 때부터 지하주차장 층고 높여야
기사입력 2018.05.29 11:22:10 | 최종수정 2018.06.05 11:37:12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지난 4월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다산신도시 실버택배 비용은 입주민들의 관리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한 달 만에 3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하자 택배회사에서 배송을 거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단지 내 택배를 어르신들에게 맡기는 ‘실버택배’를 제안했지만 실버택배 비용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고 결국 무산됐다.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개 아파트의 택배 문제가 과연 국민청원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 의문스러울 수 있지만 택배대란은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최근 뜨거운 이슈다.

최근 새로이 지어지는 새 아파트는 대부분 지상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다산신도시의 택배대란은 향후 다른 지역에서 수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알고 보면 메가톤급 이슈인 아파트 택배대란, 과연 무엇이 문제이며 해결책은 없는지 짚어봤다.

아파트 단지 내 지상도로로 차량통행이 제한되자 단지 밖 도로에서 택배를 전달하고 있다.



▶‘차 없는 아파트’의 역설… 예고된 대란

택배대란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한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 사진 한 장이 올라오면서부터다.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 대상으로 배송을 거부하는 택배기사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요령을 전달한 문서를 누군가가 찍어서 올린 것이었다. 택배기사가 단지 내 지상도로로 차량 진입이 안 되므로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 택배를 찾아가라고 하는 경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배송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었다.

이 사진은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댓글도 셀 수 없이 달렸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기적인 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절대 다수였다. 어렵게 일하고도 수입이 많지 않은 택배기사들에게 도 넘은 갑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택배는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가 됐다. 택배가 활성화되기 전에도 대한민국 주거의 대세는 아파트였고 지금도 변함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 아파트는 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내리고 지상은 입주민을 위한 공원 및 보행로로 꾸민다는 점이다. 자동차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목적지 동으로 이동하면 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지하주차장의 높이다. 현행 주차장법상 지하주차장 높이의 최저치는 2.3m다. 40년 가까이 변하지 않고 있는 규정이다. 규정이 이러니 시행사나 건설사는 이 높이에 맞춰서 지하주차장을 짓는다. 주차장 높이를 높일수록 시공비가 높아지니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사이 물류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운송업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트럭의 높이도 높아졌다. 최근 택배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트럭의 높이는 2.5m, 냉장기능까지 갖춘 탑차는 2.7m에 달한다. 2.3m 높이 지하주차장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하주차장 진입이 불가능하니 택배기사들은 당연히 지상으로 운송하게 된다. 입주민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으로 트럭이 돌아다니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지상출입을 통제한다면 택배기사들의 반발이 지금처럼 거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새 아파트의 경우 각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려면 입주 후 최소 3~4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린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기 전에도 관리사무소가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직접 내릴 수 없어 아파트는 사실상 무정부상태다. 이 시기 택배트럭들은 별다른 통제가 없으니 대개 지상으로 다닌다.



▶택배업계 “입주민 요구 맞추려면 적자 감수해야”

안전한 아파트를 추구하는 새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하주차장 출입이 어려운 경우 높이가 낮은 트럭으로 바꾸거나 외부에 트럭을 대고 손수레로 택배를 배송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택배업계는 두 가지안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낮은 트럭으로 바꾸는 안의 경우 우리나라 택배업계 생태계상 영세 대리점 사업주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꼴이다. 국내 택배사들은 대부분 대리점에게 영업권 단위로 업무를 일괄 위임한다. 본사가 있기는 하지만 해당 지역의 배송은 전적으로 대리점에서 총괄한다. 대리점주는 본사에서 개조한 트럭을 구입해서 운송에 활용하는데 이 트럭 단가가 시장가격보다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트럭의 높이가 낮아지면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줄어든다. 물량을 보충하러 물류센터로 가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고 이는 사업성 악화로 연결된다.

트럭 높이가 낮아지면 택배기사를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기사는 택배를 배송하는 대가로 택배비 중 일부를 가져가는데, 역시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싣고 배송해야 수익성이 높아진다. 또한 2.3m 높이의 트럭 짐칸에서 하역작업을 하려면 기사가 허리를 숙여야 하는 반면 2.5m 이상 높이의 차량에서는 일어선 채로 작업이 가능하다. 그만큼 작업 피로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영업 중인 한 대기업 택배사 대리점주는 “2.3m짜리 차량은 작업효율이 떨어지는 데다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워낙 적은 탓에 우체국택배나 대형마트 배송서비스 정도로만 쓰이고 있다”며 “낮은 트럭을 쓸 경우 수익성이 악화돼 해당 아파트 배송에서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들은 택배물량 한 건당 500~700원 정도의 돈을 받는다. 가정이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려면 보통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대리점에 소속된 근로자처럼 일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표준계약서도 없고 각종 산재보험에서도 배제돼 왔다. 경쟁 과열로 택배 단가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택배산업이 커지면서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국토부 역시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택배기사 표준계약서 마련과 산재보험 가입 확대 등을 골자로 한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차량 적재함 높이를 조절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선안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한동안 택배대란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단지 내 지상도로 차량출입이 통제되자 택배기사가 단지 외부 도로에서 택배를 전달하고 있다.



▶입주민 “아파트內 교통사고

처벌규정 약해 사각지대”

아파트 입주민들은 택배트럭 지상 진입을 금지하는 근거로 ‘안전’을 내세운다. 입주민들에게 단지 내 보행로는 집 앞마당과 같기 때문에 외부 도로를 걸을 때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내 차량이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운행해야 하는데 배송을 빨리 할수록 수익성이 높아지는 택배기사들에게 이 같은 조심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문제가 된 다산신도시 아파트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던 여성이 후진하는 택배트럭을 뒤늦게 확인하고 혼비백산해 옆으로 물러서는 모습이 나온다. 택배트럭은 화물칸이 높아서 차량 내부에서 후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나마 최근 출시된 트럭은 후방카메라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후방은 사실상 사각지대다.

실제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는 장을 보고 돌아가던 엄마와 딸이 단지 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119구급대원이었던 엄마는 사고를 당한 직후 딸에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6살배기 딸은 즉사했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인 것은 황당한 법이다. 현행법상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과속, 난폭운전, 무면허운전 등에 대한 단속·처벌 규정도 없다. 다만 이번 사고는 도로가 아닌 곳에서 일어났지만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초 잘못을 인정했던 가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실제 어떤 처벌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이 사례는 올해 1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로의 범위를 아파트 단지 내 도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발의하기도 했다.

택배대란이 일어나는 아파트 입주민들은 택배 대리점들의 대응에도 불만을 터뜨린다. 현실적으로 지하주차장 출입이 어렵다면 입주민과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야지 단체행동부터 하며 기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신축아파트에서도 올해 3월 택배대란이 일어났다. 입주민들이 택배트럭의 지상출입을 통제하면서 벌어진 사태로 다산신도시와 원인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경우 택배사들이 담합해 지하주차장 출입이 가능한 동이나 주상복합까지 일괄적으로 배송을 거부했다. 택배 수령자에게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차량 출입을 통제해 배송이 불가능하다’는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한동안 이 아파트에선 저녁마다 단지 정문 앞 도로에 택배를 깔아놓고 입주민들보고 찾아가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고객 불편을 극대화시켜 민원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택배사들의 전략인 것 같았다”며 “택배 본사에 문의했지만 대리점과 협의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해법은 무엇

택배대란이 일어난 다산신도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들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배송을 하고 있다. 택배사업자 입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수익성이 나오지 않더라도 배송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실제 한 건물에 많은 가구가 밀집한 아파트는 단독주택이나 다가구·다세대주택과 비교하면 배송 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점주 입장에서 다른 사업자에게 사업지역을 뺏길 위험도 있기 때문에 배송을 무기한 거부할 수도 없다. 당장 적자를 보더라도 입주율이 높아지고 물량이 늘어날 때를 대비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택배대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다양한 해법들이 제안되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다산신도시 아파트 실버택배 관련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앞으로 신축되는 지상공원화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층고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수원시는 지하주차장 층고를 2.6m 이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층고를 높이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택배사와 입주민간 분란은 막을 수 있지만 시공비가 늘어나 분양가를 높일 수 있다. 현 정부에서 고분양가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등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는 새 아파트 공급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하주차장이 높아지면 사업 시행자 입장에서는 시공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지 내 배송만 전문으로 외주에 맡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단지 내 배송에 적합한 소형 트럭이나 전동카트로 배송하면서 무인택배함을 활용해 인력투입은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인건비는 택배기사들이 받는 수수료 일부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국토부의 실버택배가 이와 유사한 모델이며 단지 내 통합택배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통합택배 역시 배송기사의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기존 택배사들의 반발이 심해 원활하게 운영되는 단지는 흔치 않다.

전문가들은 결국 택배대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입주민과 택배사들이 협의를 통해 한걸음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여기에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정부, 지자체, 본사의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순우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베이커리 vs 커피전문점 경계허물기 영토전쟁

미래교통수단, 어디까지 왔나

네이버 vs 카카오의 금융 전쟁 서막 오르나…카카오 국내서 간편결제부터 증권업까지 네이버 日서 금융사..

스마트폰 대혁신… 화면 접히는 폴더블폰 中화웨이, 차세대 5G폰 시장서 애플 제치나

‘한미정상회담’으로 뜬 롯데뉴욕팰리스 가보니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