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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남성복·양복 스타일 여성복·남녀공용 교복 성별 벽 허문 ‘젠더리스 룩’ 열풍
기사입력 2018.04.04 11: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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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의 벽을 허문 과감한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핑크색, 남성=푸른색’처럼 오랜 세월 패션을 지배하는 공식처럼 여겨졌던 관습들이 깨지는 추세다. 남자와 여자의 성 구별을 파괴한 젠더리스룩은 시대를 앞서가는 트렌디한 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젠더리스는 최근 몇 년 사이 패션계를 주도해 온 트렌드 중 하나다. 비단 올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현상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올해의 젠더리스가 과거와 다른 점은 더 과감하고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중성적이고 매니시한 느낌의 옷을 입는 경향으로 대표되던 젠더리스가 이제는 핑크나 리본, 프릴 등 여성적인 요소를 가미한 의상을 남성들이 입는 트렌드로 확대됐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선보인 2018 봄·여름(SS) 남성복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구찌는 이 컬렉션에서 여성스러운 파스텔톤의 핑크색으로 도배한 수트, 목깃에 흰색 프릴 장식과 검정색 리본이 장식된 빨간색 스웨터 등을 선보였다. 남성복에 쓰이는 핑크색은 아주 옅은 색의 파스텔톤 핑크로 스웨터나 넥타이 정도에 한정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구찌가 선보인 핑크는 여성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면에 핑크 컬러를 내세웠다.

여성들이 여름에 즐겨 입는 짧은 길이의 쇼츠(반바지)도 남성복으로 옮겨 갔다. 런웨이에는 허벅지의 3분의 2를 과감하게 드러낸 짤막한 길이의 쇼츠를 입은 모델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남성들의 반바지는 보통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길이가 대부분이었는데 여성들처럼 아찔하게 길이가 짧아진 것이다.

구찌 런웨이에서 일부 모델들은 아예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목걸이까지 함께 매치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시도했다. 누가 보더라도 여성복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디자인과 컬러를 남성복에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 구찌 관계자는 “구찌는 사회적 통념과 고정된 가치에 반대하고 남과 다른 정체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항을 표현하기 위해 2018 SS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구찌, 핑크색·리본 장식 남성의류 선봬

준지, 남성복 런웨이에 여성모델 세워

구찌 외에도 프라다, 톰브라운, 드리스 반 노튼 역시 파격적인 남성용 쇼츠를 선보이며 올여름 새로운 유행을 예감하게 했다.

국내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남성복 브랜드 준지가 젠더리스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남성복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8 SS 컬렉션에서 24명의 모델 중 여성 모델을 14명 세웠다. 준지는 지난 2015년 ‘LESS’를 콘셉트로 성의 개념을 뛰어넘는 패션관을 제안해 왔다. 남녀 누가 입어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준지의 셔츠를 오버사이즈 원피스처럼 연출하는 여성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 밖에 재킷이나 후디, 트렌치 등 캐주얼한 아이템들은 여성들이 입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세심한 테일러링이 돋보인다. 미국의 여성 팝 가수 리한나를 비롯한 일반 여성 소비자들이 남성복인 준지를 사 입는 이유다.

여성팬이 많아지면서 내년에는 아예 여성복 라인을 따로 론칭한다. 하지만 여성복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강조한 사랑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이지는 않을 계획이다. 정욱준 준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상무)는 “중성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하고 스포티한 면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복이지만 준지의 색깔과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성들의 체형에 더 잘 맞는 사이즈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세정과미래가 운영하는 브랜드 크리스 크리스티도 젠더리스 트렌드에 맞춰 SS 시즌 메인 컬러로 핑크를 내세웠다. 브랜드의 뮤즈인 양세종이 화보에서 착용한 셔츠인 ‘CR.T(크리스.티) 라인 셔츠’는 핑크 컬러의 실키한 소재로 여성스러운 매력이 묻어나는 디자인이다. 이 밖에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핑크톤의 스트라이프 셔츠, 코튼 팬츠, 셋업 수트 등 다양한 아이템이 나왔다.

크리스 크리스티 관계자는 “요즘 유스(youth) 세대는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기를 원한다”면서 “그 일환으로 폭넓은 스타일 표현이 가능한 젠더리스가 또 하나의 패션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는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2018 가을·겨울(FW) 시즌 프리젠테이션에서 젠더리스 트렌드를 겨냥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여성복이지만 젠더리스 트렌드를 반영해 신사복에서 주로 쓰이는 테일러링 기법을 곳곳에 적용한 오버사이즈 코트와 재킷을 제안했다.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어반 시크(Urban Chic)’를 표현했다.

아예 남녀 컬렉션을 나누지 않고 통합하는 추세도 확대되고 있다. 베트멍은 지난해 6월 남녀 컬렉션을 통합시켰고, 발렌시아가는 지난 1월 남성복 파리 패션위크에 참가하지 않고 최근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였다. 몽클레어와 J W 앤더슨도 남녀 쇼를 통합했다. 영국 클래식 패션 브랜드 닥스(DAKS)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FW 컬렉션 패션쇼를 진행하며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이며 젠더리스 트렌드를 제시했다. 수트와 더블브레스티드 코트를 남녀 컬렉션에서 모두 선보이며 성별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동복에서도 성의 벽은 무너지고 있다.

아베크롬비앤피치는 아동복 라인인 아베크롬비 키즈를 통해 올 1월 첫 유니섹스 컬렉션인 ‘에브리바디 컬렉션(Everybody Collection)’을 론칭했다. 소비자들이 자녀에게 옷을 입힐 때 성별에 따라 특정한 스타일이나 컬러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아베크롬비 키즈는 앞으로도 이 컬렉션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계획이다.

여성들의 속옷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브라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얼마나 볼륨감을 살려주는가였다면 이제는 신체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연출하면서도 착용감이 편안한 속옷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로 유니클로의 와이어리스 브라가 인기를 끌면서 유니클로도 와이어리스 브라 컬렉션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유니클로의 경우 지난해 와이어리스 브라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올 초 일본 여성용 속옷 시장 조사를 진행했는데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점유율이 2012년 15.5%에서 지난해 20.0%까지 급증했다.



▶아베크롬비, 아동복에 성 구별 없애

볼륨감보다 착용감 편한 여성속옷 인기

신발 역시 젠더리스 열풍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신사화나 하이힐로 각자의 성별을 구분 짓던 과거 스타일에서 벗어나 편안하면서도 중성적인 운동화로 멋스러움을 연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테니스화, 코트화 등으로 불리는 화이트 스니커즈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스포츠 브랜드 아이더의 권대웅 신발기획팀장은 “화이트 스니커즈는 여러 가지 일상복과 무난하게 연출하기 좋고 세련된 분위기를 낼 수 있어서 꾸준히 인기”라면서 “오피스룩도 캐주얼해지면서 직장인과 중장년층까지 전 연령대를 아울러 큰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리복은 남녀 모두에게 어울리는 봄 컬러인 파스텔톤의 ‘펌프슈프림 울트라니트 검팩’을 선보였다. 유칼립투스 그린과 베어 베이지 색상 두 가지로 출시된 이 제품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탈피한 색감이 특징이다. 제품 자체도 남녀 공용이다. 일본에서는 교복에도 젠더리스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에 4월 새롭게 문을 연 중학교가 젠더리스 교복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은 바지와 스커트 중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고, 넥타이와 리본 중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 체형이나 가슴 라인에도 성별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해 ‘남성스러움’이나 ‘여성스러움’을 없앴다.

[강다영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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