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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아이스와인 ‘화란덕’ 백두산 청정 자연이 키웠다
기사입력 2019.05.08 16: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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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 와인 역사의 지각을 흔든 일이 있었다. 파리의 한 와인 바이어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규모 신생 와이너리들을 프랑스 고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고안한 블라인드 테스트가 발단이었다.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 10종을 골라 권위 있는 프랑스의 심사위원 9명이 점수를 매겼다. 프랑스 와인의 압도적인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화이트, 레드와인 두 부문 모두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상위권 대다수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심판’이라고도 명명된 이 사건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미국 와인을 단숨에 프랑스 와인과 비슷한 선상에 올려놓았다. 와인 전문가들은 네임밸류와 전통이 중요한 와인 시장에서 파리의 심판이 ‘민주화를 이루어낸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부 전문가들은 다음 심판의 주인공이 중국 와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5위 수준의 큰 와인 소비량을 기반으로 형성된 시장과 시장의 기대를 따라가기 위해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력이 그 근거다.



▶와인 소비·생산 대국 중국

코트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와인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2000년대 들어 상류층 위주로 분 와인 바람은 이제 중산층과 고급층에 제한되지 않고 젊은 층의 와인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중국산업연구원은 분석했다. 워낙 소비량이 많다보니 수입도 많이 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3년 40만5900㎘였던 중국 와인 수입량은 2017년 78만7200㎘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수입액도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36억1100만달러를 기록해 2017년 대비 10.1% 증가했다. 중국으로 수입된 포장 와인 대부분은 프랑스산이다. 2016년 기준 전체 중국이 수입한 와인 중 45%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호주산도 인기가 좋아 25% 가량을 차지했다.

생산량도 꾸준히 세계 7~9위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미 포도 재배 면적은 87만5000헥타르로 스페인에 이어 2위다. 중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나무를 듬성듬성 심었기 때문에 재배 역량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북서부에 있는 지역 ‘닝샤’는 손꼽히는 와인 생산지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70% 와인 포도의 산지다. 프랑스 와인 회사 모엣 샹동을 소유한 LVMH와 글로벌 위스키 회사 페르노리카 등이 이곳의 잠재력을 보고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비량이 워낙 많다보니 적지 않은 와인이 중국에서 생산됨에도 4분의 3정도가 국내에서 소비된다. 최근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와인 생산이 다소 주춤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 와인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와인 신흥국 중국, 달달한 와인 인기

일반적으로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소비자들은 단맛을 선호한다. 와인 특유의 떫은맛은 포도 껍질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물질 ‘타닌’에서 나오는데 소비자들이 처음부터 이 맛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단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떫은맛을 제대로 즐기는 와인 애호가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신흥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주로 달콤한 맛이 강한 와인을 식후주로 즐기며 와인과의 접점을 늘리고, 점차 취향을 고급화해 다양한 와인에 도전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와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지 10~15년이 된 중국도 여전히 떫은맛 보다는 단맛이 강한 와인이 인기다. 특히 90년대 출생자 ‘주링허우’가 2015년께부터 주요 와인 소비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런 성향이 더 강해졌다. 떫은맛을 희석시키기 위해 탄산음료를 타 마시는 유행은 거꾸로 와인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온 중국 ‘백두산 와인’

최근 한국 소매 시장에 중국 와인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백두산에서 재배한 포도로 아이스와인을 제조하는 ‘화란덕’이 그 주인공이다. 그간 국내에 유입된 중국 와인은 양이 워낙 미미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개인적으로 들여와 판매한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보고 있다.

화란덕은 지난달 28일 롯데백화점과 손잡고 처음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국내 유통업체를 통해 정식 소매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5월 초까지 서울 시내 3개 롯데백화점 점포와 부산 2개 점포를 돌며 공식 론칭 행사도 진행했다. 4월 8일 기준 누적 판매 병수 500병을 돌파했을 정도로 국내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

아이스와인은 일반 와인과 달리 포도가 언 상태에서 바로 수확해 포도즙을 짠다. 일반 와인용 포도보다 1~2개월 늦은 11월경에 수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착즙을 하면 당분이 유지돼 달콤한 맛을 유지하긴 하지만 생산량이 5분의 1이하로 줄어든다. 포도가 얼어야하기 때문에 재배할 수 있는 지역도 한정적이다. 위도 42~44도 지역에서만 최상품 포도가 경작된다.

2001년 중국에 설립된 화란덕은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까지 10년을 투자했다. 포도를 기르는 데 5년이 걸렸고 기존에 다른 농작물을 경작하던 토질을 안정화하는 데 또 5년을 보냈다. 고도의 기술력이 들어가는 아이스와인 제조 역량도 갖추기 위해 독일에서 아이스와인을 처음 생산한 스토크 가문 생산자들과도 손잡았다. 아이스와인으로 유명한 독일 모젤 지역 스토크 와이너리 장인들은 아예 화란덕 와이너리로 보금자리를 옮겨와 생산을 도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화란덕은 2017년 세계 5대 와인품평회인 독일 ‘베를린 와인트로피’에서 아시아 최초로 가장 높은 등급인 ‘그랑 골드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한국 진출을 목적으로 현지 법인도 설립했다.

화란덕 와이너리 내에 있는 스테인리스 생산 시설



▶“보이는 끝부터 끝까지가 포도밭”… 백두산 정기 담은 와이너리

지난 3월 중순 럭스멘이 찾은 화란덕 와이너리는 오는 11월 수확될 또 다른 포도를 길러낼 준비에 한창이었다. 중국 길림성 교하시에 위치한 와이너리는 백두산 천지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300㎞ 떨어진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바로 남쪽으로는 쑹화호가 흐른다. 고대 국가 부여가 발원하고 일제 강점기 독립군이 오간 쑹화강을 수원으로 하는 호수다. 여름에만 잠깐 녹음을 내비치는 와이너리는 3월 중순에도 여전히 하얀 눈에 뒤덮여 있었다. 330만㎡가 넘는 대지에 사람 허리 높이 각목이 세 걸음 간격으로 빼곡히 꽂혀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을 이뤘다. 포도 넝쿨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줄을 걸기 위한 기둥 역할을 하는 각목들이다.

평수로 100만 평이 넘는 와이너리에서 열리는 포도는 본격적인 수확철인 11월 말이 되면 20~30일에 거쳐 딴다. 하루에 약 1톤씩 포도가 수확되는데 착즙은 얼어있을 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바로 이루어진다. 수확은 인근 농민 200여 명이 도맡는다. 화란덕이 와이너리를 만들기 전 이곳에서 감자 등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다. 화란덕에 따르면 와이너리는 아이스와인을 재배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 기본적으로 날씨가 매우 추운 데다 연교차도 70도 가량으로 높아 포도의 당도가 올라간다. 토양도 풍화작용으로 생성되는 화강암으로 이뤄져 영양분이 높다.

포도 품종 역시 특이하다. 화란덕 와이너리에서 자라는 백두산 야생포도 ‘베타’는 산도와 당도가 둘 다 높은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10월 말이 되면 나무에서 많이 떨어지는 일반 품종과는 달리 베타는 12월까지도 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너리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포도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건물 3층 높이 ‘거북이상’이다. 바위에 몸을 얹고 하늘로 머리를 향한 거북이상은 쉬진보 화란덕 회장이 2016년 수억을 들여 만들었다. “장수와 인내를 상징하는 거북이를 와이너리에 세움으로서 조급해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마음가짐을 늘 견지하고자 노력했다”고 쉬회장은 말했다.

▶백두산 청명한 떼루아 그대로 품은 와인

화란덕의 대표적인 상품은 총 네 가지다. ‘화란덕 프리미엄 아이스와인 2016’은 6.5도의 낮은 도수에 장미 빛깔이 특징이다. 중간 정도의 바디감에 자두·건포도·복숭아·꽃 향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며 토종 꿀 같은 단맛과 과실향이 입안을 감싼다. 중국음식, 불고기뿐만 아니라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화란덕 빙설신화 2016’은 도수가 20도로 와인 치고는 높은 편이다. 아이스와인을 주정강화했지만 알코올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산뜻하다. 풀 바디에 붉은 자두, 말린 라즈베리 향이 나며 파워풀한 맛 등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 와인이다. 쇠고기나 양고기 스테이크, 매운 중국 요리와 궁합이 좋고 디저트에는 다크초콜릿이 들어간 파이 종류가 잘 어울린다.

‘화란덕 화이트와인 2015’는 청량한 맛이 특징인 화이트 와인이다. 중간 정도 바디감에 도수는 7도, 색은 연한 황금색을 띤다. 강렬하고 풍부한 열대 꽃과 고산지대 야생화 향기, 상큼한 미감이 뛰어난 와인이다. 생선회, 스시, 생선조림, 백숙, 닭가슴살 요리에 잘 어울린다. ‘화란덕 로제와인 2015’는 10도의 중간 도수를 자랑하는 로제 와인이다. 밝은 체리 색상에 딸기, 카시스, 벚꽃 향 등이 특징이다. 피자, 닭고기 바비큐, 샌드위치, 붉은 생선 요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한국 와인 시장 계속 성장… 와인 상품군도 다양화

2018년 기준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7200억원에 육박한다. 롯데백화점의 와인 매출 규모는 2012년 350억원에서 시작해 2015년 510억원, 2017년 550억원, 지난해에는 700억원으로 성장했다. 와인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제3세계 와인, 내추럴 와인 등 상품군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더욱 색다른 맛과 스토리를 지닌 와인에 대한 수요가 넓어질 것으로도 예상된다.

인터뷰쉬진보 화란덕 회장

저는 1961년 화란덕 와이너리가 위치한 중국 지린성 송화호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거쳐 공기업에도 재직했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출장으로 외국을 잠깐 드나든 것을 제외하고는 60 넘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래도 와인을 좋아했던 저는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 된 독일 출장에서 ‘모젤’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아이스와인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스토크 가문이 설립한 와이너리에서 아이스와인을 처음 맛봤습니다.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지닌 와인에 처음부터 반했던 것 같습니다. 와이너리가 설립된 연도가 1661년이라는 점도 운명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가 1961년인데 딱 300년 전 탄생한 와이너리라 더 애착이 갔던 것 같습니다.

당시 모젤 와이너리는 지구 온난화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아이스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3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곧바로 고향 길림성 교하시를 떠올렸습니다. ‘장백산(백두산의 중국 명칭)의 정기와 영양가가 풍부한 토질, 추운 기후를 지닌 제 고향에 와이너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꿈을 그때부터 꾸기 시작했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 원래 와이너리를 만드는 데 십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이 걸린다지만 이를 직접 겪어보니 더 어려운 일이더군요. 포도나무가 자라는데 5년, 토질이 안정화되는 데 5년을 그대로 쏟아 부었습니다. 스토크 가문의 노하우와 기기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국과 독일 사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매우 섬세하고 꼼꼼한 이들에 비해 여유롭게 모든 일을 진행하는 중국 직원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와이너리를 지켜온 끝에 2017년 독일 와인 품평회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역량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총 6000여 종의 와인 중 24개 와인만 받을 수 있는 상을 받은 겁니다. 함께 출품된 중국 와인 130여 종 중에서도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죠.

[강인선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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