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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피부관리법에 빠진 美 뷰티업계
기사입력 2018.06.05 11: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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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광’ ‘물광’ 내세운 K-뷰티 인기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로 대중 공략

글로우 레시피의 팝업스토어에 현지 소비자들이 줄을 선 모습. (사진제공=글로우 레시피)



미국 뉴욕 34번가에 위치한 뉴욕 최대 규모의 뷰티 편집숍 세포라 매장에 들어서면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빌리프, 닥터자르트, 투 쿨 포 스쿨 등 국내에서 흔히 보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매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다. 마치 한국 화장품 매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K-뷰티가 화장품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중세안을 하지 않았고 아이크림이나 에센스 같은 기초 화장품도 잘 쓰지 않았다. 피부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화려한 메이크업에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일명 ‘물광’ ‘꿀광’ ‘결광’처럼 피부 본연의 빛을 끌어올리는 한국식 피부 관리법에 눈을 뜬 미국 소비자들이 점차 K-뷰티에 빠져들고 있다. 뉴욕에서 만난 제시카 핸슨 아모레퍼시픽 미국법인장은 “K-뷰티는 이제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뷰티 ‘카테고리’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흘러가는 유행이 아니라 미국 뷰티시장에서 공고한 입지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핸슨 법인장은 “세포라 같은 뷰티 편집숍은 물론이고 다른 유통사들도 K-뷰티를 종착지(final destination)로 생각할 정도로 K-뷰티의 영향력이 커졌다”면서 “매장에 공간을 따로 내어주고 전략적으로 아시안 뷰티 코너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세포라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뷰티 편집숍 체인이다. 여기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같은 세포라가 주목하는 브랜드 중에는 ‘글로우 레시피’가 있다. 이 브랜드는 한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한국 화장품이라 국내보다는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로레알코리아와 로레알 본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인 여성 사라 리와 크리스틴 장이 2014년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다. 수박이라는 먹거리를 주 원료로 내세워 세포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뉴욕에서 만난 크리스틴 장 대표는 “처음에는 성분 좋은 한국 화장품을 미국 시장에 소개하는 큐레이션부터 시작했지만 K-뷰티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말했다. 글로우 레시피가 지난해 내놓은 첫번째 제품인 ‘워터멜론 글로우 슬리핑 마스크’는 여리여리한 핑크색의 젤리 같은 제형에 수박이라는 자연의 원료를 사용해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제품은 세포라에서 8번이나 매진됐다.

슬리핑팩이 성공을 거두면서 올 초에는 차기작인 ‘워터멜론 글로우 핑크 주스 모이스처라이저’를 내놨다. 이 제품 역시 여심을 자극하는 핑크빛 젤 타입의 로션이다.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긴 핑크색 모이스처라이저가 그동안 기초 화장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톡톡 튀는 패셔너블한 느낌까지 함께 준다. 가격은 39달러로 저렴하지는 않지만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은 <피플> 매거진에서 올해 ‘최고의 뷰티 신제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라 리 대표는 “글로우 레시피는 전략적으로 아주 저렴한 가격대나 고가가 아닌 중간 가격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미국에서 보지 못했던 콘셉트와 제형을 선보여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다음달 1일에는 마스크팩 ‘워터멜론 젤리 시트 마스크’도 내놓는다.

리 대표는 “글로우 레시피 판매 실적이 좋아 세포라 측에서 우리 브랜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부터 세포라와 전략적으로 콘셉트를 논의하면서 만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글로우 레시피는 세포라 이외에도 지난해 9월부터 타깃(Target) 1500여개 매장에 입점했다. ‘화미사’라는 또 다른 한국 브랜드와 손잡고 그린티 라인을 런칭했고, 한국의 피부관리법을 체험할 수 있는 ‘글로우 스튜디오 K-뷰티 키트’도 선보였다. 이들은 K-뷰티의 저력이 우수한 제품력에 있다고 단언한다. 리 대표는 “우리 브랜드가 인기를 끌면서 미국의 여러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시제품을 보내주지만 한국의 품질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면서 “제품을 미국에서 팔지만 생산을 한국에서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뉴욕 맨해튼에 오픈한 ‘이니스프리’도 아직 론칭 1년이 채 안 됐지만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니스프리 미국법인 관계자는 “유동인구 수가 적은 평일에도 실제 구매 고객만 300명을 넘고 주말에는 1000명가량 된다”면서 “주 고객은 10~20대지만 40대 이상 비중도 15%에 달할 정도로 소비층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매장에서 열린 뷰티클래스에도 19명의 참가자가 공간을 꽉 채웠다. 이니스프리는 한 달에 5~6차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뷰티클래스를 열고 있는데 사전 신청 열기가 뜨겁다. 이날은 이니스프리의 인기 제품인 ‘화산송이 마스크’ 사용법을 주제로 뷰티클래스가 열려 평소보다 더 많은 참가자가 몰렸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이니스프리 플래그십스토어 2층에서 10일(현지시간) 뷰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강다영 기자)



▶로레알 출신 한인 2명 ‘글로우 레시피’ 론칭

뷰티클래스에는 아시아인 이외에도 서양인이 6명, 남성 참가자도 1명 있었다. 이들은 30분 동안 화산송이 마스크 제품들을 직접 발라보고 자신들의 피부 고민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레이첼 허츨러(22) 씨는 “오늘 체험했던 7가지 마스크를 모두 다 갖고 있다”면서 “이니스프리 제품은 원료와 텍스처, 가격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9월 미국에 첫 플래그십 매장을 내고 뷰티 격전지인 미국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오픈 첫날부터 매장에 긴 줄이 늘어섰고 계산을 할 수 있는 포스(POS)가 모자라 직원들이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다.

아모레퍼시픽은 1986년 로스앤젤리스에 일찌감치 현지 법인을 설립했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교민들을 상대로 한 소규모 사업이었고 2000년대 들어서야 프레스티지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으로 최상류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이니스프리 단독 매장을 뉴욕 한복판에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을 상대로 한 볼륨 키우기에 나섰다. K-뷰티가 미국시장에 뿌리를 내린 만큼 이니스프리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내부적으로 이니스프리를 ‘파이터 브랜드’로 보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투력 있는’ 브랜드라는 뜻이다. ‘제주’라는 이국적인 콘셉트에 녹차와 동백꽃 같은 자연의 재료를 내세운 건강한 화장품이지만 가격은 합리적이다. 스토리, 원료, 가격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핸슨 법인장은 “우리는 이니스프리와 라네즈를 파이터 브랜드로 보고 전략적으로 키워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밀레니얼 세대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셀피(셀카)’를 즐겨 찍는 디지털 세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모습을 습관처럼 올리는 이들에게 ‘빛나는 피부(glowing skin)’는 너무나 중요한 ‘패션’이다.

핸슨 법인장은 “이 세대들은 빛나는 피부를 선호해서 과거 소비자들과 달리 메이크업보다 스킨케어에 더 신경을 쓴다”면서 “그 덕분에 아모레퍼시픽도 지난 1분기에 스킨케어 제품군이 메이크업 제품군보다 더 많이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 세대들이 피부관리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K-뷰티의 성공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한국 화장품은 색조보다 기초 제품에 훨씬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만난 리아(31) 씨도 “마스크팩과 세럼 등 스킨케어 제품 위주로 한국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데이터로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스킨케어 카테고리의 비중이 42%로 색조 제품 카테고리(39%)를 앞질렀다. 시장 성장률을 봐도 스킨케어 성장률은 2014년도에 전년 대비 2.2%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5.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만큼 스킨케어 제품에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미국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수한 품질에 좋은 소재, 스토리까지 3박자

아모레퍼시픽은 또다른 파이터 브랜드인 라네즈 키우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14년 미국 대형 유통체인 타깃(Target)을 통해 미국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라네즈를 지난해 모두 철수시켰다. 뷰티 분야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세포라에 단독 입점하기 위해서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세포라 직원들이 브랜드 스토리부터 스킨케어법까지 알려주며 브랜드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안 후 로션 하나만 바르는 것이 대부분인 현지 소비자들이 토너부터 아이크림, 에센스, 모이스처라이저 등 다양한 스텝을 밟아가며 피부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막강한 유통 채널과 전문적인 직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 미국법인은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현지 진출한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아닉구딸 총 6개 브랜드의 20여 가지 주력 제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한국의 화장품 그룹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줄리 몬티 세일즈 매니저는 “메이크업에만 관심이 있었던 미국 소비자들이 이제는 피부를 가꾸는 스킨케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의 피부 관리법을 배우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K-뷰티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갖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진 쿠션도 미국에서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몬티 매니저는 “화장을 한 뒤 시간이 지나면 유분이 많은 코 같은 부분의 화장이 지워지는데 파우더만으로는 완벽한 수정이 어렵다”면서 “쿠션을 사용하면 수정화장이 쉽고 휴대성도 좋아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굿맨에 입점한 아모레퍼시픽 매장은 이제 연간 100만달러(약 11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2003년 첫 매장을 이곳에 낸 이후 이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와 에스티로더 등 쟁쟁한 브랜드매장과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매장의 매니저로 근무하는 헬레나 호헨탈 씨는 ‘타임 레스폰스 아이 리뉴얼 크림’은 이 백화점에서 금액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라며 “작년에 ‘굿하우스키핑’이라는 잡지에서 600여 개 브랜드의 아이크림 중 넘버원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이 매장을 찾는 고객 중 아시아인 비중은 1~2%에 불과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교민이나 한국 화장품을 잘 아는 아시아 출신 소비자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들이 선택할 만큼 현지화가 잘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호헨탈 매니저는 “녹차 같은 자연의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인삼 등 동양적인 향이 강해 서양인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설화수도 소비층을 견고하게 굳혀가고 있다. 조한 누네즈 비즈니스 매니저는 “동양인과 서양인 고객 비중이 5 대 5”라면서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5월에 특별 서비스하는 페이셜 트리트먼트도 상당한 인기”라고 말했다. 설화수 제품으로 피부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 하루에 4명의 고객만 받을 수 있어 예약하려면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최소 350달러(약 37만원)의 선불결제 카드를 구매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매년 5월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서비스의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설화수 쿠션도 현지에서 호평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소비자들은 우리나라처럼 촉촉한 피부보다는 매끈하고 매트한 화장을 즐기기 때문에 쿠션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던 편견과는 정반대다. 이 매니저는 “쿠션은 20대 젊은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다”면서 “자외선 차단을 하려는 남성 고객들도 사갈 정도”라고 말했다.

글로우 레시피 공동 창업자인 사라 리, 크리스틴 장. (사진제공=글로우 레시피)



▶뷰티 유통업체 세포라 ‘러브콜’도 쇄도

빌리프도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빌리프는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중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2013년 세포라 임원이 신규 브랜드 발굴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빌리프 매장을 찾은 것이 입점 계기가 됐다. 빌리프의 우수한 품질과 브랜드 감성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판단한 세포라의 제안으로 2015년 35개 미국 세포라 매장에 입점한 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브랜드의 베스트셀러인 ‘빌리프 더 트루 크림-아쿠아 밤’은 세포라의 온라인몰에서 ‘모이스처라이저’ 카테고리 판매 상위권에 오르며 현지에서도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서구 문화권에서 익숙한 허브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어 미국 현지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닥터자르트를 운영하는 해브앤비의 이진욱 대표는 미국의 뷰티 전문 매체인 WWD(Women’s Wear Daily)가 주최하는 뷰티 CEO 포럼의 단독 연사로 선정돼 스피치를 하기도 했다.

[강다영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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