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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15 대한민국 벤처 20년 그 현장 속으로…
기사입력 2016.02.25 1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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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 초반, 젊음과 두뇌로 무장한 모험적인 기업들이 하나 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토대 없이 자생한 대한민국의 벤처기업이 협회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은 “1998년 2042개였던 벤처기업이 2001년 1만 개를 넘어섰고 2010년엔 2만개를 돌파했다”며 “올해 3만개를 넘어섰는데, 특히 2004년 68개로 시작한 매출 100억원 벤처기업이 지난해 460개로 증가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과연 그간 어떠한 과정이 현재의 굳건한 토양에 버팀목이 됐을까. 벤처기업협회의 20년사를 들춰봤다.

▶모험기업? 국내 벤처기업의 태동

사실 이 땅의 벤처기업 1호는 1980년 창업한 ‘삼보컴퓨터(구 삼보전자엔지니어링)’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용태 전 회장이 서울 청계천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자본금 1000만원, 7명의 직원과 함께 의기투합해 국내 시장에 퍼스널 컴퓨터를 선보였다. 1981년 서울 안암동 작은 셋방에서 시작한 ‘큐닉스컴퓨터’도 벤처 황무지를 개척했다.

카이스트 전산공학 박사 1호인 이범천 전 회장이 동료와 후배 5명을 모아 당시로는 획기적인 워드프로세서 개발에 나서며 초기 벤처업계를 이끌었다. 당시엔 언론에서도 벤처기업(Venture Business) 대신 ‘모험기업’이라 직역해 표기할 만큼 용어 자체가 낯설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벤처기업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개념이 없었다. 단지 신기술을 기반으로 컴퓨터·전자·정보통신·화학·생명공학·환경·의료·산업기기 등 신규 사업 부문에서 창업해 모험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라 여겨졌다.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기술집약적 중소기업이었다. 국내에선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에 자격요건이 규정되며 의미가 정립됐다.

1981년 큐닉스와 함께 설립된 ‘YG-1(구 양지원공구)’도 1세대 벤처기업이다. 이후 1983년에 대학생이던 조현정 회장이 ‘비트컴퓨터’를 창업해 급성장했다. 같은 해 반도체 검사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한 정문술 전 카이스트 이사장은 당시 40대의 늦은 나이에 벤처업계에 도전장을 던져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이후 라이코스코리아를 설립하는 등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고, 정부·학계·언론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벤처 관련 네트워크 ‘벤처리더스클럽’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5년에는 벤처업계의 대부라 불리는 이민화의 ‘메디슨’이 설립됐다. 현재 카이스트 초빙교수인 이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초음파 진단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6명의 동료와 함께 자본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메디슨은 초음파 영상 진단 의료기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수십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메디슨 신화’를 썼다. 이 교수는 이후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을 맡아 국내 벤처생태계 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저울업체로 유명한 ‘CAS’와 특수자동차업체인 ‘광림특장차’도 이 시기에 창업한 초창기 벤처기업에 속한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가 출범하고 1996년 코스닥 설립과 1997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을 통해 한국은 벤처 발전의 양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코스닥이 선도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책임졌다면,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특별법은 창업·벤처 지원의 토대가 됐다.

코스닥을 통해 연간 수조원의 벤처투자자금이 투입되면서 국내 시장에 벤처의 꿈이 꽃을 피우게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2000년 이전에 창업한 ‘NHN’, ‘다음’, ‘엔씨소프트’, ‘휴맥스’, ‘주성엔지니어링’, ‘다산네트웍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들은 코스닥이 없었다면 현재 위치에 서지 못했을 거라고 평가한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벤처기업특별법은 자금·인력·입지를 포괄한 총체적인 벤처 창업지원정책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1만여 개의 벤처기업이 밀집한 G밸리 형성 과정을 보면 정부의 지원자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단지 벤처기업특별법상의 벤처빌딩제도(벤처 집적시설) 하나로 거대한 벤처생태계가 형성됐다. 이후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특별법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했다. 19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속에서도 벤처기업은 실험실 창업운동, 인터넷 코리아 운동 등 추가적 벤처 정책에 힘입어 창업하는 기업 수가 꾸준히 늘었다. 실제로 2000년 총 벤처기업 수는 9000여 개에 육박했다.

1차 벤처붐 이후 국내 벤처기업 수는 수직상승했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 설립 당시 약 500개에 불과하던 벤처기업이 1996년 1000개, 1997년 말 2000개를 거쳐 2001년에는 1만 개를 돌파했다. 엔젤투자 규모도 5000억원, 벤처투자금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그 당시 경제 규모로는 미국과 견줘도 뒤처지지 않을 규모였다.

스톡옵션이 벤처로 인재를 유치하는 결정적인 통로가 됐고, 1999년 당시 연간 상장기업수(180개)는 코스피(10개)보다 높았다. 당시 한국의 코스닥은 미국의 나스닥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이머징마켓(신시장)으로 일본의 자스닥이나 독일의 노이에 마켓보다 3년이나 앞서 형성됐다. 이렇듯 1999년에 시작된 벤처붐은 일반인은 물론 벤처캐피털 업계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일대 사건이었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창립총회, 2000년 서울벤처밸리 달리기축제

2001년 세계한인벤처네트워크(INKE)총회, 2004년 대한민국창업대전



▶벤처캐피털 등장, 제도적 지원

벤처기업에 자금을 조달해줄 벤처캐피털(벤처금융)도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1974년 국책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사업화할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기술진흥주식회사(KTAC)가 그 시작이었다. 현재와 같은 개념의 벤처캐피털은 1981년에 설립된 한국종합기술금융(KTB, 구 한국기술개발주식회사, KTDC)이 효시다.

이후 한국투자개발금융(KDIC), 한국기술금융(KTFC) 등 기술사업금융회사들이 속속 설립됐다. 정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명함을 내미는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제도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 시기 정부는 그동안의 일률적인 대기업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창업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추진했다.

1986년 4월에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이, 12월에는 ‘신기술사업 금융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의 등장으로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고 벤처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등 정책적인 수단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1980년부터 1985년 사이에 초창기 벤처기업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벤처기업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 속에 실물경기가 급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3저 호황 속에 벤처캐피털이 속속 설립되며 벤처업계의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였고, 정부의 중소 벤처기업 지원정책이 가시화되며 벤처 창업환경이 유리해졌다. 1986년에는 김익래 회장이 큐닉스에서 기업 분할해 ‘다우기술’을 창업했다. IT 솔루션 전문업체인 다우기술은 온라인 증권사 ‘키움증권’을 설립하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1989년에는 이찬진 현 드림위즈 대표가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의 빌 게이츠’라 불린 이 대표는 대학시절 컴퓨터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개발한 데 이어 ‘한글과컴퓨터’를 창업해 이른바 ‘한컴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셋톱박스 신화’의 주인공 변대규 회장도 같은 해 ‘휴맥스’를 설립하고 시행착오 끝에 아시아 최초로 디지털 셋톱박스 개발에 성공한다. 휴맥스는 설립 21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1990년에 들어서는 ‘가산전자’와 ‘나눔기술’, ‘로커스’, ‘두인전자’, ‘한광’이 잇달아 설립된다. 이듬해에는 박병엽 전 회장의 ‘팬택’을 비롯해 ‘한아시스템’, ‘아펙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95년에는 안철수 현 국회의원의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와 황철주 대표의 ‘주성엔지니어링’이 설립됐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안철수 의원은 당시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시작하며 국내 최초로 백신 연구소를 설립한 한국 컴퓨터 백신의 개척자다. 설립 이후 반도체 장치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온 주성엔지니어링은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장치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벤처기업의 구심점, 협회 창립

1995년, 이민화 교수가 창업한 ‘메디슨’이 벤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됐다. 그러자 이 교수에게 벤처 후배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앉았다 하면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열에 아홉은 벤처기업의 생태, 즉 자금과 인력, 시장에 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벤처기업의 입장에선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개별 기업의 노력으론 극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렇게 이민화와 후배들이 합심해 벤처기업협회가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95년 10월 26일, 당시 한국 벤처의 메카로 불리던 테헤란로 인근의 로터스가든이란 중식당에서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이민화 교수가 주도했고 당시 ‘퓨처시스템’의 김광태 사장이 총무를 맡았다. 이날 발기인대회에는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사장, 김광수 두인전자 사장 등 13명이 참석했다. 그해 11월 10일에는 창립총회를 위한 준비모임이 열려 총회 때 발표할 주제와 사업 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

연간 4회 벤처포럼을 개최하고, 전자게시판을 운영하며, 각종 정책 제안을 하자는 내용이 그날 논의된 주요 내용이었다. 이로써 한국 벤처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벤처기업협회’ 창립을 위한 준비작업이 마무리됐다. 한 달여 후 12월 2일, 창립총회가 열린 곳은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17층 중회의실이었다. 이날 행사 이후 국내에서 ‘벤처기업’이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15년 벤처기업인의 날



▶한국 벤처의 명암(明暗)

벤처라는 신세대 사업가는 2000년에만 2000억원의 기부활동을 하고 전국대학에 인큐베이터를 설립하는 등 벤처·창업을 확산하는 데 앞장섰다. 벤처로의 인재 유입과 성공의 선순환 기반이 구축되면서 이공계 대학의 선호도도 증가했다. 투명한 기업문화 구축에도 한몫했다. 벤처의 기본은 개방과 공유로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주변 역량과 제휴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투명한 경영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창조, 도전, 기업가정신, 혁신, 나눔 등을 바탕으로 성장한 벤처문화는 신세대 기업가와 새로운 기업문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늘 봄날은 아니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맞았다.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 각각 2000억원대, 1000억원대, 2000억원대의 불법 대출과 횡령에 의한 주가조작으로 벤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생태계가 황폐화되기도 했다.

2001년엔 전 세계에 IT버블이 붕괴하면서 미국의 나스닥과 함께 한국의 코스닥도 동반 하락했다. 전 세계가 고전했지만 유독 국내 시장에선 ‘묻지마 투자’ ‘무늬만 벤처’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벤처 거품설이 제기됐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벤처 규제 정책이 쏟아져 나왔고, 이른바 ‘벤처 건전화 정책’으로 업계의 성장세가 잦아들었다. 일례로 이 시기 이후 창업에 필요한 초기 엔젤투자는 2000년 5000억원 규모에서 2014년 300억원대로 대폭 축소됐고, 벤처캐피털 업계도 2000년 2조원이 넘던 규모가 1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럼에도 벤처는 살아 있다”고 말한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처럼 아예 벤처기업을 졸업하고 한국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빙하기를 거쳤음에도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여전히 전 세계 4위권 수준이란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매출 1000억원 벤처기업 460개사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1000억 벤처’다. 지난해 8월 20일 벤처기업협회와 중소기업청이 2014년 기준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벤처기업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매출 1000억원을 넘긴 기업은 460개사다. 이들 기업 중 44개사의 제품은 세계 시장점유율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7.1년이었다. 창업 7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기업도 ‘위메프’, ‘네시삼십삼분’, ‘슈피겐코리아’, ‘파인테크닉스’, ‘영실업’ 등 5개사에 달했다.

1995년 12월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했을 당시 메디슨 하나에 불과했던 1000억원 벤처는 2007년 100개를 돌파했고 이후에도 급속히 증가해 2010년 315개, 2011년 381개, 2014년 460개가 됐다. 이들 1000억원 벤처의 매출액 합계는 약 9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4%에 이른다. 이는 삼성(248조원), SK(165조원), 현대차(158조원), LG(116 조원)에 이어 재계 5위 규모다. 2014년 이들 기업이 고용한 인력은 총 17만3420명으로 전년 대비 4.4% 늘었다. 이는 대기업의 고용 증가율 1.3%보다 3.4배나 높은 수치다. 업종별 평균 고용인력은 소프트웨어개발 업종(558명)이 가장 많았고, 고용 증가율은 정보통신·방송 서비스(22.4%)가 가장 높았다.
성장성 측면을 살펴볼 때 1000억원 벤처의 평균 매출액은 2151억원으로 2013년(2136억원) 보다 0.7% 증가했다.

평균 영업이익은 145억원으로 2013년(138억원)보다 5.1%(7억원)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평균 6.7%로 일반중소기업(4.0%)이나 대기업(4.3%)보다 높았다.

[안재형 기자 자료 벤처기업협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4호(2016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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