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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 “美국채 10년물 3.2% 돌파하면 성장주 지고 중소형 가치주 뜰 것”
기사입력 2018.06.29 09: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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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펀드인 ‘밸류이채원펀드’를 선보인 1세대 스타펀드매니저다. 1988년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과 합병)의 전신인 한신증권 공채 13기로 입사해 증권시장에 입문했고 철새가 많은 증권가에서 드물게 30년간 같은 그룹 계열에 몸담고 가치투자 철학을 지키고 있는 뚝심 있는 증권맨이다. 이 대표는 오늘도 저평가된 종목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회사를 탐방하고 재무제표를 뒤진다.



지난해 말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표 자리에 올랐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자신들의 가치투자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다는 30년간 자신의 투자철학을 실천하기란 상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용어조차 생소했던 척박한 시장에 가치투자라는 씨앗이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데 있어 1등공신이 이채원 대표임은 업계에서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가치투자의 대가인 ‘벤자민 그레이엄’이나 ‘워런 버핏’에 곧잘 비견된다. 그러나 매사 몸을 낮추는 이 대표는 이러한 평가에 고개도 끄덕이는 법이 없다.



▶올해 주식과 연을 맺으신 지 꼭 30년 되셨습니다

1998년 입사했으니 햇수로 30년이 됐네요. 증권사 입사 이후 처음부터 운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제영업부 등을 거친 이후 1995년도에 처음으로 1000만달러 펀드를 운용했습니다. 1996년 동원투신이 설립이 되어서 펀드매니저 지원을 해서 나갔으니 정식 신탁펀드매니저는 1996년부터 시작한 셈이죠.

▶대내외 상황이 쉽지 않은 때 운용을 시작하게 되셨습니다

1997년에 바로 IMF외환위기가 닥쳤죠.(웃음) 코스피가 800에서 288까지 빠질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제가 운용하던 펀드도 -40%까지 빠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코스피 60%가 빠졌으니 벤치마크지수대비해서는 +20%로 사내에서 1등을 했다고 포상금을 받았어요. 그래도 고객입장에서는 원금이 40%가 깨졌으니 엄청난 항의와 질타는 피할 수 없었죠. 주식형펀드를 경험하지 못하셨던 고객들도 있었고 적금처럼 가입하신 분들도 많았거든요. 스스로도 반성을 많이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3투신을 중심으로 성장주가 우세한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가치투자에 입문하게 되셨는지?

IMF외환위기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의기소침하던 시절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란 책을 를 접하게 된 게 1998년이었어요. 벼락을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러한 투자법이 있구나 하면서 한 달 동안 잠도 못 잘 정도였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국내 1호 가치투자펀드를 내놓으셨는데 업계 반응은 어땠나요?

가치투자를 접하고 바로 회사에 미국처럼 가치투자전용펀드를 만들어 보자고 건의를 했어요. 당시 대리 나부랭이(?)에 불과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주셨어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국내 1호 가치투자펀드인 동원밸류이채원펀드입니다. 운용업계 처음으로 가치투자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죠. 처음 나왔을 때는 고객들이 개념을 이해하긴 어려웠죠. 다만 수익률이 괜찮아서 가입자는 많았습니다. 1998년 12월에 론칭을 해서 1999년 9월까지 누적수익률이 127%였어요. 20~30% 코스피가 상승했으니 4~5배 아웃퍼폼을 한 셈이죠. 매주 매일경제에서 펀드 수익률 공시를 했는데 저희 펀드가 거의 1등을 했어요.

▶당시부터 운전이나 골프를 하지 않고 종목코드 600여 개를 다 외워서 “주식에 미쳤다”는 소리도 들으셨다고 하던데요?

조금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종목코드는 한 번씩 다 샀다 팔았던 종목이고 주식에 집중해 살다 보니 외우게 된 것이죠. 운전도 골프도 안하고 주식 외에 딱히 취미가 없다 보니 주변에서 그런 소리도 들었는데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운전은 했으면 사고가 났을 거예요. 공간지각능력이 좀 떨어져서 인적성 검사를 하면 거의 빵점이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길치이기도 하구요. 골프를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주말은 가족과 함께’란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주중은 주식과 함께 주말은 가족과 함께.(웃음)

▶업의 특성상 소위 철새가 많은데 한 직장에서 오래 계시는 비결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성격 자체가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에요. 오래된 친구를 자주 만나는 편이고 음악도 20~30년 전부터 듣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유일한 취미가 무협지를 읽는 것인데 새로운 작품보다는 한번 봤던 책을 다시 꺼내보는 편이죠. 또 입사하기 어려운 시절에 나를 뽑아준 회사와의 의리도 있을 것이고 증권과 달리 저를 믿고 따라와 준 고객들이 있거든요.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위기에도 신뢰 보내준 회사

화려한 복귀이후 가치주 전성시대 맞아


가치투자 전도사로 국내주식시장에 거목으로 성장한 이채원 대표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9년부터 시작된 IT버블로 성장주 장세가 이어지며 가치주가 폭락을 하던 시기였다. 가치투자펀드로 슬로건을 내건 자신의 투자철학을 바꿀 수 없다고 다짐한 그는 책임을 지고 당시 동원투신을 떠나기도 했다. 약 6년간 증권으로 옮겨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06년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채원의 가치투자 인생에 위기가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1998년 출시한 이채원펀드의 9개월 정도의 누적수익률이 127%였습니다. 그런데 IT버블이 시작되면서 1999년 9월부터 연말까지 88%까지 떨어졌어요. 고점에 가입하신 분들은 많이 손해를 보셨죠. 버블이 심해지면서 가치주들이 더 빠졌어요. 2000년 2월에 휴가를 내고 사표를 낼까 많이 고민했어요. 내가 잘못된 것인지 주식시장이 잘못된 것인지 원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던 시기 였습니다.(웃음)

▶실제 한 6년간 회사를 떠나계셨다고요?

회사를 떠날지 남을지 고민을 하던 그 시기에 김남구(한국투자금융) 부회장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가치투자라는 철학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잠시 시장의 왜곡이 심한 상황이니 증권으로 옮겨서 고유자산을 운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잘 쉬고 오라며 금일봉도 주셨어요. 고민 끝에 2000년 4월에 동원투신을 떠나 증권사로 옮기게 됐죠.

▶버블이 꺼지면서 대다수 종목이 이전보다 좋은 흐름을 보이지 않았나요?

한 3개월만 더 버틸걸 잘못했죠.(웃음) 당시에 롯데칠성을 10만원에 샀는데 6만원까지 떨어지고 아모레퍼시픽을 1만8000원에 담았는데 1만원까지 떨어지고 기술주는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갔어요. 그래도 그 주식을 살 수는 없더라고요. 철학을 바꿀 수는 없는 문제이니. 끝까지 한 주도 안 사고 회사를 떠났어요. 그 이후에는 제 펀드 대부분 회복해 펀드수익률이 1위를 탈환했습니다.

증권으로 옮긴 이후에 운용성적은 어땠습니까?

2000년 4월부터 6년 동안 고유계정 본부장으로 700억원 한도로 자금을 운용했어요. 가치투자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누적으로 435% 수익률이 났는데 코스피가 같은 기간 56% 상승했습니다. 가치투자가 한국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했죠. 단 장기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고유자산운용 경험과 결과가 2006년 복귀와 연관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투운용본부장 시절 인력이 대부분 스핀오프되면서 지금 회사가 새로 생겼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2006년 4월에 ‘10년 이상 함께할 고객들을 모신다’는 광고를 만들어 모든 신문 1면에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펀드는 환매제한이 90일인데 3년 환매제한을 걸었죠. 국내에서 유일합니다.

▶10년 펀드 수익률은 어떤가요? 그리고 당시 고객들이 많이 남아 있을까요?

누적수익률은 157%이니 초기에 1000만원 투자하신 분은 자산이 2570만원이 됐죠. 연평균 복리로 따지면 10% 정도로 보면 됩니다. 코스피가 50% 상승했으니 3배 정도 아웃퍼폼한 셈이죠. 현재 10년 펀드고객은 몇 만 명 정도 인데 10주년 행사를 거치면서 보니 초기가입자 분들도 꽤 계시더라고요. 전체 가입자 중에서 8년 이상가입을 유지하고 계신분이 50% 이상으로 장기보유 고객들이 대다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훌륭한 수익률이지만 주식투자에 있어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듯합니다.

매년 20~30%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라면 사실 저희 타깃은 아닙니다. 저희의 투자목표는 금리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금리가 10%라면 펀드는 15%의 수익은 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식을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금리가 2%대이기 때문에 연평균 수익률을 3~5%를 목표로 합니다. 리스크는 철저히 방어하고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로우 리스크(Low Risk)-미디엄 리턴(Medium Return)을 추구합니다.



가치투자는 돌을 들춰 가재를 찾는 일

금리인상기 가치주 장세 다시올 것


▶종목발굴에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되시나요?

가치투자는 단순노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투입한 시간에 비례해서 수익률이 늘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치투자는 돌을 들춰서 가재를 찾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예전에는 돌을 10개만 들춰서 1~2마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100개를 들춰도 1~2종목 찾기가 어려워졌어요.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종목발굴이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기법도 많이 알려졌고 대학투자동아리도 늘어나고 시장참여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시장의 왜곡이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어요. 20년 전에만 해도 기업탐방 가는 사람도 드물었거든요. 탐방 가면 정말 주식을 줍다시피 했어요. 이렇게 좋은 숨겨진 기업이 있었나 했는데 요새는 정말 싼 주식을 찾아서 회사를 탐방하면 싼 이유가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재무제표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잖아요. 그만큼 가치투자의 기회는 줄어든 셈이죠.

▶점점 가치투자가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저희가 연간 2000회 이상 기업탐방을 하는데 1000여 개의 기업은 될 거예요. 그래도 새로운 종목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만큼 싸면서 좋은 종목을 찾기가 어려워졌어요. 단순히 업이 나빠서 싼 주식을 사면 안되잖아요? 회사의 가치가 점점 나빠지기 때문에. 시장의 오해나 편견 무관심, 일시적인 기업실적의 약화된 주식을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인생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종목이 있나요?

롯데칠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객들이 마음고생 많이 하셨죠.(웃음) 10만원대부터 사서 6만원까지 떨어질 때까지 전체 상장주식의 18%까지 샀어요.

이유는 실적과 자산이었습니다. 당기순이익이 해마다 600억, 800억, 1000억원까지 증가했어요. PER은 1배를 가까스로 넘겼으니 저평가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산이 컸습니다. 서초동에 사이다 야적장이 1만700평 정도있었는데 그 당시가치로 3000~4000억원이었어요. 3.3㎡당 3000만~4000만원짜리 땅이었죠. 대한민국에서 제일 싼 주식이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9만원 8만원 떨어지는데 7만원까지 떨어졌을 때는 섬짖하더라고요.

▶역사적 최저점과 최고점을 다 경험한 종목이었겠군요?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펀드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 수량을 담았는데 계속 하락했어요. 혹시 “1만700평이 아니라 1700평으로 내가 착각한 게 아닌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야적장을 무작정 갔어요. 역시나 끝없이 넓더라고요. 다음날 다시 7만원대에 더 담았어요. 그런데 6만원까지 떨어지더라고요. 정말 극한의 공포를 겪고 난 다음날이 역사적인 최저점이었습니다. 장중 5만5000원까지 떨어진 주식이 200만원대까지 스트레이트로 40~50배가 올랐습니다.

▶그 이후에 비슷한 종목을 만나신 적이 있으십니까?

2010년 차화정이란 말이 유행할 때 비슷한 상황이 왔죠. 중소형가치주는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소비재 음식료 관련주는 PER이 3~5배 정도까지 턱도 없이 싸게 거래됐어요. 아무래도 거품이 생길 때 이러한 상황이 옵니다. 그때는 자신 있게 많이 사놔서 2011~2014년에 수익률이 상당히 좋았죠. 코스피를 50% 이상 아웃퍼폼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학습효과를 거치신 셈이네요?

어느 주식을 바닥에 살 때 느끼는 감정이 깊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식을 바닥에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종목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쌓이고 쌓여서 마음속에 철옹성처럼 철탑을 쌓는 것이죠. 그런 상황이 다시 오면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이 키워집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러한 감정을 이겨내기가 힘든 거죠. 그래서 가능하면 계산기를 두드린 뒤 기계적으로 주식매매를 하려고 합니다.

▶현재 시점에 삼성전자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시나요?

저평가 영역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시크리컬(Cyclical) 섹터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익이 얼마나 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러한 주식은 인기가 좋을 때 팔고 아무도 안 쳐다볼 때 조금씩 담는 편인데 요새는 조금씩 관심이 떨어지고 있을 때니 관심은 두고 있습니다.

▶한투밸류에서 전통적인 가치주가 아닌 엔터주식을 담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최근에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많이 담은 것은 아니지만 워낙 시총이 작아서 JYP엔터에 투자한 것이 공시로 알려지게 됐습니다.(웃음) 비싼 주식을 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실 텐데 저희는 많이 쌀 때 들어갔습니다. 섹터 담당자가 이 주식을 4000원에 샀어요. 이후 3배정도 오른 시점에 펀더멘털이 개선됐습니다. 저도 그 당시 탐방을 갔는데 실제로 좋아지고 있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저 스스로도 콘텐츠 기업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죠. 트와이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회사의 음원을 구매해야 하니까요. 다른 엔터사와는 다르게 부대사업보다 음악과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개인적인 투자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부동산 자산 외에 거의 모든 자금은 우리 펀드에 넣고 있습니다. 유일한 재테크 수단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펀드가 잘못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제가 되겠죠.(웃음) 책임감을 가지고 운용을 해나가기 위해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장환경을 고려할 때 가치주 장세가 다시 찾아올 거라 보십니까?

2014년부터 IT버블 이후에 14년 만에 강력한 그로스 사이클이 찾아왔습니다. 나스닥이 사상최고가를 기록하고 이러한 저금리·저성장·4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그로스주식들이 시세를 분출하고 있는 것이죠. 예전에는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올랐는데 지금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100년 누적으로 보면 보통 사이클이 밸류가 그로스보다 살짝 위에 있습니다. 그러다 그로스가 밸류를 급격하게 추월하는 시기가 오죠. 1999년 IT버블이나 2009년 성장주 장세가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가 찾아온 이후 다시금 가치주 장세가 찾아왔습니다. 곧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중소형 가치주가 빛을 보는 시기는 언제로 보십니까?

2013년 8월 이후로 거의 5년간 중소형 가치주가 언더퍼폼하고 있습니다. 미국시장과 한국시장이 아주 비슷하고 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중소형 성장주는 많이 회복을 했는데 중소형 가치주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어요. 그러나 금리가 올라갈수록 성장주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4회(미 금리인상)를 하게 되면 기준금리가 2.5가 되고, 미 10년 물은 3.2% 정도를 안착할 것으로 봅니다. 하반기로 갈수록 가치주 장세가 올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투자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돈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움직입니다.
수익성이 높은 투자처가 발견되면 모든 돈이 그리로 모이는 것이죠.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성장기업으로 꼽히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존을 예로 들면 PBR가 20배로 고평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가총액이 800조 정도 되는데 벌어들인 돈은 40조원 정도 되는 셈이죠. 물론 이익은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그러나 주가는 조정을 거쳐서 균형을 맞추는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크죠. 이에 반해 많은 이익을 내는 우량주들은 다시 빛을 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담 설진훈 편집장 정리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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