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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코라오 꿈꾸는 김보연 SNK라오 코퍼레이션 | 10년 만에 매출 50배 ‘쑥’ 건자재 팔다 리조트도 지어
기사입력 2018.05.30 17: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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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김보현 SNK라오 코퍼레이션 대표는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로컬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다. 캐나다 유학파인 김 대표는 2007년 라오스에 서 회사를 설립, 10여 년 만에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건설업체를 키워냈다.

SNK라오 코퍼레이션은 최근 라오스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토종 건설업체다. 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라오스 정부에서 인정하는 1군 건설업체로 분류되며 업계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회사 매출은 100억원을 넘나드는데 우리 1군 건설업체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 아세안의 다른 국가에 비해 발전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약 700만 명의 작은 내수 시장을 가진 국가에서 일궈낸 실적이고, 더군다나 이 업체의 대표는 라오스에서 볼 때 외국인인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코라오’라는 라오스 대표 기업이 있지만 최근 관심도만큼은 이에 못지않은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는 김보연 대표다. 김 대표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회사의 업력 못지않게 젊다는 점이다. 1979년생인 김 대표는 올해 한국 나이로 만 40세, SNK라오를 설립한 것은 30대였다. 지난 10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현지화와 신뢰”였다. 해외에서 기업을 하는 이들이 내놓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답변이라고 여겼지만 그가 풀어내는 설명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라오스를 포함해 아세안에 진출하는 많은 기업인들이 현지화와 현지인들과의 신뢰를 외치지만 수박 겉 핥기 식이 대부분이고 이는 실패란 결과물로 돌아와 쓴맛을 보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도 그러려니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라오스를 경험하고 이해하고 이를 사업에 녹여내고 있었다. 김 대표는 현지화를 이야기하면서 라오스와 인연을 먼저 꺼냈다. 그와 라오스의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찮게 이뤄졌다. 군 제대 후 자신의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던 김 대표에게 부친이 갑자기 라오스행을 권유한 것이다. “당시 부친이 지인들과 함께 라오스와 베트남의 국경지대인 락사오에 120만 평 규모의 조림지를 조성하는 사업에 투자했는데 라오스 현지에서 이 사업체 관리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직전까지 라오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김 대표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부친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라오스에 첫발을 내디디게 됐다. 이때가 2007년 2월이다. 이후 3년간 락사오와 수도 비엔티안을 오가며 지냈다. 그와 라오스의 이 첫 인연은 유쾌하지 못하게 끝났다. 공동 투자를 했던 지인이 투자금을 가지고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 성공의 발판이 됐다. 김 대표는 락사오 투자 건이 실패한 후 곧바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라오스에 남았다. 여전히 미개발 상태인 라오스의 잠재력이 눈에 들어왔고, 이 나라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사업기회를 찾던 그에게 영감은 준 것은 3년간 거주했던 락사오의 주거 환경이었다. “라오스에서도 오지인 락사오의 주거환경은 열악했습니다. 대부분이 목조주택인데, 단열도 되지 않고 방충도 잘 안됩니다. 더위와 벌레와 싸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도시에서의 주거환경은 비슷했다. “라오스인들은 바닥 자재로 원목을 많이 선호하지만 친환경적인 데 반해 잘 썩고 벌레도 많았습니다. 또 벽에는 벽지를 바르지 않고 그냥 페인트 칠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에 그는 나뭇결 모양의 PVC 타일, 벽지 등 한국의 질 좋은 건축 자재를 들여와 팔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 2009년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생각보다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이유를 찾다 보니 시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질 좋은 건축 자재라도 시공이 깔끔하게 되지 않으니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는 한국의 전문 기술진을 데려와 직원들에게 시공 기술을 가르쳤고, 시공 수준이 업그레이드되자 이게 소위 대박이 났다. “라오스에서는 집을 지어도 마감 기술이 부족해 외관상 깔끔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이를 당연시 여겨왔지만, SNK가 손을 대면 뭔가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벽지, 타일 설치 등이 아닌 천장 지붕 등에 기술과 규모가 큰 공사요청이 밀려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직원들을 일일이 교육을 시키며 이를 해냈다. 그러다 단순 시공을 넘어 집을 지어달라는 주문까지 들어왔고, 김 대표는 아예 사업영역을 주택 건설까지 넓혔다. 그 결과가 현재인 것이다. 현재 회사는 건설 및 토목,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하는 종합건설업체로 거듭난 상태다. 2016년 150억원의 매출, 지난해에는 7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회사 설립 첫해 매출이 2억여 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급성장하던 회사가 지난해 주춤했던 것에 대해서 양보다 질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라오스 경제가 성장하면서 건설시장에서도 기회가 많아졌지만, 입찰 경쟁이 너무 심해지고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수주가 난립하면서 입찰참여를 줄이더라도 안정적인 발주물량에만 뛰어드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SNK라오의 건축 기술이 알려지자 라오스에 진출하는 한국 업체들의 일감도 김 대표는 대거 따냈다. 김 대표는 이 대목에서 한국업체가 라오스에서 뿌리내리기 힘든 것은 어설픈 우월의식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라오스는 건축물 외양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국의 건축 기술이 앞서 있다고 해서 현지에서 한국식을 고집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외벽을 유리로 고집하는 것을 들었다. 김 대표도 자신도 현지 사정에 정통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회사 설립 초기의 일이다. 마케팅을 담당했던 라오스 직원이 6개월이 지나도록 실적이 하나도 없었다. 다소 이상해 그의 행적을 쫓아 보니 회사에 출근하고 외근을 나간 후 목적지가 집이었다. “이 직원이 그동안 거래처를 뚫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외근을 퇴근 개념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화도 나고 황당했지만 락사오 시절의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사회주의를 오래 경험한 라오스인들은 책임감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를 그대로 지적하고 나무라면 자존심이 센 라오스인들은 그냥 회사를 그만둬 버립니다. 설립 초기 직원 한 명이 아쉬웠던 저는 락사오에서 했던 대로 일을 제대로 하면 약속한 대가를 반드시 준다는 것을 약속했고 실천했습니다.”

김 대표는 “라오스의 많은 건설 회사들이 급여 날짜를 어기는 경우가 많은데, SNK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서 “월급을 제때 주는 것은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서로 간의 신뢰를 쌓고 지키는 확실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급여에 대한 약속은 공사 현장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현장 노동자들이다. “일자리 수가 사람보다 더 많은 라오스에서 대규모 인력이 필요로 하는 건설업에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발주처와의 약속도 어기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라오스 건설업체의 경쟁력은 숙련된 노동자를 누가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SNK의 경쟁력이 바로 이에 있다”고 자신했다. 사람이 기회이자 리스크인 셈이다. SNK라오는 향후 아파트 건설에도 뛰어들 예정인데, 그 전 단계로 주택 분양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도 비엔티안의 고급 주거단지에 직접 토지를 매입해 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한 채당 분양 가격은 땅값을 포함해 3억원을 웃돈다. 여기서 김 대표의 사업의 특징 중 하나가 무차입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인 적은 없다”면서 “저가수주를 절대 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도 확장하지 않았던 게 회사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김 대표에게도 듣기 싫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부인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부인은 라오스인이다. 사기를 당한 후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라오스인 부인 집안이 현지에서 꽤 괜찮다. 부인의 외할아버지는 라오스가 공산화되기 이전 총리를 지냈고, 장인이 한국에서도 라오스 호텔체인으로 잘 알려진 완사나 호텔그룹 회장이다. 주위에서 부인 덕을 보고 있다고 할 만도 하다. 그는 “장인 집안에 기대서 사업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면서 “이런 시선이 가장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2007년 라오스에 첫발을 내디딘 후 라오스를 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라오스어를 열심히 공부한 것도 일환이었습니다. 라오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깊숙이 다가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현재의 인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라오스 정재계 2~3세들과 교분도 두텁다. 현재 그는 건설업 외에 신규 사업으로 미용, 화장품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을 가진 한국의 앞선 미용 화장품도 라오스에서 통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시설이 열악한 라오스를 위해 한국식 병원을 짓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 증시 상장도 꿈꾸고 있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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