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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주년 맞은 ‘가왕’ 조용필 | 68세의 현역, 전설로 남기엔 아직 이르다
기사입력 2018.05.04 09: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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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 ‘전설’이 살아있다면, 아마도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가왕’ 조용필(68) 말이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스로 데뷔한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뒤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국민적 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컬러TV 시대가 도래한 1980년대 ‘오빠부대’를 거느린 그는 2013년 세대를 초월한 명반인 19집 ‘Hello’까지 총 19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진정한 ‘국민가수’의 표상이 됐다. LP, 카세트테이프, CD에 이어 디지털음원 시대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팝 발라드(‘그 겨울의 찻집’)와 포크(‘친구여’), 디스코(‘단발머리’), 펑크(‘못찾겠다 꾀꼬리’),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미워미워미워’, ‘허공’), 민요(‘간양록’,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가곡(‘선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그는 팝록을 내세운 19집에서는 ‘바운스’, ‘헬로’ 등 21세기 청춘과 교감하는 혁신적인 사운드로 음원차트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일찍이 해외 시장에 눈을 떠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4회 연속 출연하며 한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그는 시대와 교감하는 뮤지션이기도 했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암울했던 시기, 한을 토해내듯 부른 ‘창밖의 여자’로 위로를 안겼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개탄하며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 우네’라는 ‘서울 1987년’을 노래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서울 서울 서울’로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다.

이 밖에도 조용필은 국내 최초 단일앨범 100만 장, 최초 누적앨범 1000만 장, 일본 내 한국가수 최초 단일앨범 100만 장, 대중가수 최초 예술의전당 공연, 국내가수 최초 미국 라디오시티 공연, 대중가요 최초 교과서 수록(‘친구여’) 등 수많은 ‘최초’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런 조용필이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조용필 음악인생을 조명하고, 팬들과 자축하는 이벤트들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의 50주년 기념사업을 다채롭게 전개하기 위해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가 출범했고, 상반기엔 50주년 기념 전국 투어도 진행한다. 1991년 13집 ‘꿈’을 끝으로 방송이 아닌 콘서트로만 관객과 교감해 온 그는 50주년을 맞아 최근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 후배들의 헌정 무대에 감격을 보이기도 했다.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의 여정에도 불구, 조용필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했던 것뿐”이란다.

최근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용필은 시종일관 겸손한, 한결같은 음악인의 모습을 보였다. 50주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를 드러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초년병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음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 역시 자명한데, 조용필은 “도전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 또한 “음악이 좋아서였을 뿐”이란다. ‘가왕’, ‘전설’ 등의 호칭에 대해선 더더군다나 손사래를 쳤다.

19집 ‘바운스’를 통해 세대통합의 아이콘이 된 것 역시, 음악으로써 오랫동안 사랑받고자 한 그의 노력의 결과다.

“예전부터 많은 분들과 얘기하며 고민한 것 중의 하나가 ‘음악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어요.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깨닫게 된 게 만약 젊은이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이들이 나이 들었을 때도 나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였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음악을 해야 하나를 다시 고민하게 됐죠. 그 세대가 팝과 록을 좋아하고 나 역시 많이 듣고 좋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맞지 않았어요. 찾고 찾다가 나에게 맞는 곡으로 ‘바운스’와 ‘헬로’가 나온 거예요. 그 곡을 통해 젊은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됐고, 앞으로 50~60년 정도 더 기억될 수 있게 됐네요.”

그렇다고 해서 조용필의 선택이 전략적인 행보인 것만은 아니다. 그저 도태되지 않고자 하는 ‘현재 진행형’의 음악인으로의 삶 자체인 것. 특정 시대 혹은 장르에 머물러 있는 보통의 중견 가수가 아닌, 여전히 누구보다 치열하게 음악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열정적인 음악인의 노력이 지금의 조용필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태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음악인

최근 13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에서 열린 우리 측 예술단의 ‘봄이 온다’ 공연에 대해서는 진한 아쉬움을 전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할 정도로 컨디션이 엉망이었던 탓이다. 그는 “제 자신에 대한 자책을 많이 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라며 “무대에 나갈 때 어지러울 정도였는데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라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 조용필은 이번 공연에서 역시 ‘레전드’를 썼다. 국내 지상파를 통해 녹화 방송된 해당 공연에서 조용필은 가히 ‘명불허전’이라 할 만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며 그 명성을 재차 입증했다. 조용필은 “그쪽(북한) 음악은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표정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음악적으로는 좋았던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다들 옥류관에 들러 평양냉면을 먹고 왔는데 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호텔에만 있었다”며 솔직하게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 동네 청년이 불던 하모니카 소리로 음악을 처음 접했다는 조용필. 그는 “당시 큰 충격을 받고 아버지를 졸라 하모니카로 동요를 불기 시작한 게 음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후 축음기를 통해 가요를 접하고, 라디오를 통해 팝을 접하다 형이 치던 통기타를 잡아본 것을 시작으로 50년간 음악 외길을 걷게 됐다.

“처음엔 음악을 취미로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합주를 하고, 그룹을 만들어 하다 보니 결국 빠져 나올 수 없더라고요. 미8군 무대에 올라 기타를 한번 친 적이 있는데, 거기서 큰 매력을 느껴 음악을 해야겠다 마음먹게 됐죠.”

지난 50년간 발표한 무수히 많은 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일까.

“1989년에 만든 ‘꿈’이에요. 이 곡은 ‘추억속의 재회’와 같이 만들었는데 어떤 걸 먼저 내야 할까 고민했었죠. 두 곡을 한꺼번에 발표하기가 아까워서 주위 음악 하는 분들께 물어봤는데 다들 ‘꿈’이 좋다고 해서 먼저 ‘추억속의 재회’를 발표하고, 2년 후인 1991년 13집 앨범에 넣었죠.”

조용필의 음악은 대한민국 가요사에 큰 흐름과 줄기를 형성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그는 “그저 연구하다 보니 끊임없이 가게 되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발견하면서 충격을 받고 있다”며 “죽을 때까지 배우다 끝날 것”이라 말했다.

5월 12일에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투어 ‘땡쓰 투 유’의 서막을 올린다. 주경기장 단독 콘서트만 해도 벌써 7번째. 1968년 활동을 시작한 가수가 이곳에서 50주년을 맞는 것은 조용필이 최초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그는 한창이던 정규 20집 작업도 중단한 채, 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공연 타이틀을 ‘땡쓰 투 유’로 정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너무, 고마워서다.

“팬클럽도 생기고 했지만, 그동안 많은 국민들께서 주신 사랑도 받고, 음악을 통해 즐거움도 같이 나누고. 그래서 제가 노래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당신이 있었기에 내가 있었고, 그래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지난 반세기, 5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보답할 길이 없을 것 같아요”

▶“아직 은퇴 생각 없어”

가수로 살아온 지난 50년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역시 관객과 함께 한 순간이다. 그는 “공연을 했을 때 관객들이 만족하면, 너무 행복하다. 관객이 즐거워하는 모습, 관객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행복할 게 없다. 가수라면 다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도 은퇴 혹은 ‘마지막’에 대한 생각은 없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조용필은 “나를 좋아해 주는 대중에게 폐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좋아해 주셨던 분들이 (은퇴 선언으로 인해) 갖게 될 실망감이 가장 두렵다. 마지막 공연이라 선언해 버리면, 팬들은 배신당하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곧 다가올 ‘70’이란 숫자가 무색하게, 지금도 매일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과 새로운 음악을 찾아보고 듣고 지낸다는 조용필. 거창하게 ‘도전’이라는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삶 자체가 음악에 대한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은, 앞으로도 계속 될 터다.

“저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배우다 끝나게 되겠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팬들을 배신할 순 없잖아요. 허락하는 순간까지 계속 노래를 하겠습니다.”

68세의 현역, ‘가왕’ 조용필에게 ‘마지막’은 아직 너무 이른 단어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 유용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2호 (2018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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