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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봉 베트남 KAS 홀딩스 회장 | 베트남·미얀마등 6개 폰 들고 다녀 “아세안 전체가 기회의 땅이죠”
기사입력 2018.04.03 1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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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장순봉 회장은 20대 중반 하노이 대우호텔 건설에 참여하면서 베트남과 연을 맺었다. 주재원 생활이 끝날 때쯤 베트남의 성장성을 보고 청년창업을 결정했다. 베트남을 포함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12개 법인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장순봉 KAS(Korea Asean Seogwoo) 홀딩스 회장이 건넨 명함에는 6개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그의 사업 활동이 벌어지는 주 무대마다 각기 다른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무거워도 좋으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순봉 회장은 1994년 베트남에서 석우종합건설을 종잣돈 1억원으로 세운 후, 24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의 종합건설업체로 키워 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장 회장은 현재 석우종합건설을 포함해, YS건축사무소, 교육회사 등 총 12개의 법인을 거느리고 있다. 장 회장은 현지 투자의 가장 큰 메리트였던 ‘저임금 노동력’ 경쟁력이 베트남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과거에 비해 옅어졌지만 한국보다 싼 노동력을 활용한 사업 기회는 베트남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아직 개발 여지가 많은 아세안 전역이 기회의 땅이라고 여기는 장 회장은 베트남의 성공을 바탕으로 인근 국가로 사업 영토를 급속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 6대의 휴대전화가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그에게 성공의 기회를 열어 준 베트남과의 첫 만남은 ‘우연’ 그 자체였다.

그의 베트남과 처음 인연은 대우그룹이 하노이에 투자한 대우호텔 공사에 건축기사로 파견되면서다. 전혀 뜻하지 않은 이 같은 인사 발령은 당황스러웠고, 마주한 베트남은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실제 당시 은둔의 국가에서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으로 국가 문호가 막 열리기 시작한 베트남의 거주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힘들어서 사표를 9번이나 썼었다. 그때마다 상사와 직장동료들이 이 프로젝트만 끝마치자고 다독여서 겨우 견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힘든 경험이 오히려 그에게 사업 밑천이 됐다.

그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음식과 물도 입에 맞지 않는 곳에서 1년 정도 견디고 나니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제야 이제 막 국가의 문을 열고 뭔가를 시작하려는 베트남은 기회로 생각됐고, 아예 눌러 앉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때가 27살이었다. 이 같은 선택은 그에게 천재일우의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그가 택한 업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건설업계고, 베트남 개방과 동시에 쏟아져 들어온 우리 업체들의 건설 일감을 독식했다.

“한국 업체가 현지에 투자하여 공장을 지으려면 아무래도 현지에서 말이 통하는 우리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수밖에 없었고, 거의 유일한 업체였던 우리가 혜택을 봤다.” 2010년까지 베트남에서 한국 업체로서 정식으로 등록해 활동한 건설업체는 2곳밖에 없었다는 것이 장 회장의 설명이다. 석우종합건설은 2001년 베트남에서 외국인 최초로 건설사 단독법인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장 회장은 사업초기 한국 대 베트남 공적원조(ODA) 물량도 적극 공략했다. 무상원조 사업의 경우 이익을 내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현지 기반 마련 및 인맥 구축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 재정적 안정성이 담보되는 것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여기에는 장 회장의 사업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원칙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이고, 수주 물량도 감내할 수 있는 자금 범위에서 사업을 진행했다”면서 “사업 초기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용도가 낮은 베트남 업체의 물량을 무리하게 수주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우리 정부와 한국 대기업들의 덩치 큰 물량을 맡는 것이 낫다고 봤다”고 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은행 차입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장 회장의 말이 믿기지 않아 재차 물었지만 “지금까지 은행 문턱을 밟은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건설업체로 현지에서 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현지화”라고 단언했다.

그는 “만일 사업 초기부터 회사 자체를 현지화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성공은 불가능했다”면서 “회사를 설립한 이후 가장 신경 쓴 부분이 현지화”라고 했다. 그는 “사업 초기 고민은 베트남의 노동력은 쌌지만 숙련도 면에서는 뒤처지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교육을 통해 현지 직원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면서 “결국 이것이 건설품질로 이어졌고, 저임금 메리트의 장점에 더해 회사 수익성을 만들어 내는 단초가 됐다”고 했다.

현재 베트남 본사의 경우 전체 250명 직원 중 10년 이상 장기근속 베트남 직원들은 50명이나 된다. 장 회장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로 사업 확장이 가능했던 것도 양질의 베트남 건설 기술자들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세안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인력과 자재를 모두 공급하려 했다가는 수익성이 담보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회사는 최근 일본뿐만 아니라 덴마크 등 유럽 쪽 물량도 일감으로 확보했다. 또 자체 설계기술도 가지고 있어 이 부분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회사 운영에 있어서도 현지화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라 한국인을 우대하는 정책은 애초부터 없었다. 회사에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 인근 아세안 국가 출신들도 꽤 된다. 회사는 직원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운영하고 있다.” 그는 “회사 창업은 한국 사람이지만 주인은 베트남인들”이라며 “향후 기업 공개를 하게 되면 미얀마, 캄보디아 등 국가 출신 사원들에게도 우리 사주를 줄 계획”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베트남 접근법에 대해 진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베트남 열풍에 물밀듯이 한국인과 한국기업들이 밀려들고 있지만 베트남의 속내는 여전히 두려워해야 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일화 두 가지. “2008년께 중부 푸옌성에 평화의 공원을 지을 때였다. 완공을 한 후 기공식을 하는데 현지 주민들이 왜 이런 공원을 짓느냐며 항의를 거세게 했다. 또 한 번은 역시 중부 어느 지역에 건설 자재를 사러갔는데 한국인임을 숨겨야 했다.”

장 회장은 “무상원조 사업을 하면서 베트남 곳곳을 다녔는데, 특히 중부 지방의 반한 감정이 뿌리 깊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이런 부분들은 언젠가는 양국 관계에서 터져 나올 부분들”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국과의 관계가 좋은 지금이야말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라면서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베트남은 언제든 한국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우리 당국은 지금의 분위기에만 취해 있지 말고 먼저 베트남의 마음을 달래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회장이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장 회장은 “신남방정책이란 거대 담론도 필요하지만 정작 현지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세세한 것들에 대한 무신경”이라면서 “베트남뿐만 아니라 아세안 전체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정책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태국,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 현지 기업가들의 불만처럼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현지 활동을 했으면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의 체계적인 현지 활동은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면서 “보여주기식 외교 말고 피부에 와닿는 현지 정부 활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외교관도 지역전문가 못지않게 지역을 잘 아는 이들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사명을 2011년 한국(Korea) 아세안(ASEAN) 석우종합건설(Seogwoo)의 첫글자를 따서 KAS로 개명한 것은 그가 얼마나 현지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엿보게 해준다. 우연히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들어와 사업 성공 기회를 잡은 장 회장은 베트남과의 인연 못지않게 아세안도 자신에게 운명적인 상대로 여긴다.

“만일 당시 주재원 발령지가 베트남이 아니라 다른 아세안 국가였어도 지금의 나는 그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장 회장은 “물론 그 국가가 베트남이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더없는 행운이었다”며 웃었다.


조만간 그는 새 휴대폰을 하나 더 마련해야 한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벗어나 해양 아세안으로까지 진출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인프라 건설 정책을 적극 펴고 있는 필리핀에 사무소를 곧 연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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