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정태영 부회장의 15년의 혁신 | 금융에 예술을 입히다
기사입력 2017.06.09 16:05:49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지난 1월 6일 경기 고양시 KB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는 KB금융지주 산하 주요 임원들이 결집했다. 이날 뚜벅뚜벅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다름 아닌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이었다. 관례적으로 라이벌 사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 나서는 일은 그 자체로 ‘파격’ 이상이라 할 수 있다. 100여 분간 진행된 강연에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글로벌·디지털·브랜드 전략과 기업문화에 대한 상당히 디테일한 내용들이 오갔다고 한다. 라이벌 사의 임원진에 자신의 회사의 전략과 문화를 소개하는 강연자로 나서는 행보는 다분히 ‘정태영스럽다’고 할 만하다.



“처음에 현대카드를 맡았을 때 적자가 2조원이라 하더라구요. 그날 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새로 맡은 회사가 적자라 신난다’고 했어요.”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을 맡게 된 시점은 2003년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한 번 살려보라”는 정몽구 회장의 특명을 받고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빅3의 ‘거물’이 되었지만 당시 현대카드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003년 현대카드는 적자투성이에 시장 점유율은 1.8%로 ‘꼴찌’ 회사였다. 또한 모기업의 ‘자동차 제조사’의 이미지도 덧씌워져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이나 쓰는 카드로 인식되기도 했다. 보수적인 업계에 수많은 혁신적인 시도를 바탕으로 정태영 부회장은 7년 만에 현대카드를 12%로 올려놓으며 업계 2위로 수직 상승시켰다. 이러한 성공사례는 2012년 서울대학교에서 현대카드의 경영 혁신 사례를 집중 탐구하는 경영학 과목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특정 기업을 주제로 학점을 주는 정식 과목이 개설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 부회장의 성과는 비단 수치적인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성과는 다소 촌스러웠던 기업 이미지를 탈피해 ‘현대카드를 사용하면 멋있다’라는 통일되고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예술가가 만드는 카드

‘정태영의 현대카드’는 늘 ‘혁신’이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대표적으로 업계 최초로 도입한 ‘선(先)할인 후(後)적립’의 세이브 포인트 제도는 그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이 ‘혜택’이라 느끼지 못했던 포인트나 마일리지에 가치를 불어 넣었다. ‘카드 사용=할인=포인트 적립’이라는 공식이 정립되면서 고객들이 할인을 위해 카드를 발급받는 기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카드 업계의 한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4년에 선보인 ‘챕터 2’는 혁신을 강조하는 정 부회장의 경영 전략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다. 스스로 주도해 온 포인트·캐시백 소비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그간 복잡하고 세분화된 상품 체계를 ‘포인트’와 ‘캐시백’ 두 축으로만 단순화시켜 모든 혜택을 카드 사용에 따라 차곡차곡 쌓는 ‘리워드’에만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또 카드 포인트 사용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고객들이 늘어나자 임원에게 월급의 일부를 M포인트로 지급하기도 했다. 포인트 담당 임원이 직접 사용해보고 몸소 체험해 보라는 의미였다. 결과적으로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비슷한 형태의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비스 혁신과 함께 주목받는 것은 바로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이다. 2000년대 초까지 신용카드의 디자인은 화려한 그래픽 디자인에 회사 로고나 사명을 찍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정태영 부회장은 이러한 업계 관행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현대카드는 디자인만으로 현대카드임을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업계 평균 카드 디자인 개발 비용이 20만원인 데 반해 현대카드는 약 1억원을 투입했고 카림 라시드, 레옹 스탁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카드 디자인을 맡기는 등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 부회장의 디자인 혁신은 단순히 카드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카드 사업을 통해 입증된 현대카드의 디자인 경영은 지난 2009년을 기점으로 고무장갑, 버스 승차대 등 단순 시각물에서 생수, 와인, 보드카 등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이외에 내용물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에 디자인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상생이라는 정부 정책을 실현함과 동시에 생필품과 공공장소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현대카드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노출,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얻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디자인 경영철학이 잘 드러나는 사례중 하나가 ‘1913송정역시장 프로젝트’다. 지금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지만 리뉴얼 전 송정역 시장은 노후화가 심해 시민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현대카드는 시장의 공식 명칭을 ‘1913송정역시장’으로 새롭게 바꾸고 시장이 처음 만들어진 연도를 이름에 활용함으로써 100년이 넘는 역사를 홍보하고, 시장 상인 스스로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창업에 관심이 높은 청년상인을 유치해 양갱과 호떡, 세계라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내세운 20여 곳의 청년상인 점포 설립을 돕고 매주 토요일 저녁엔 ‘토요 야시장’을 열어 볼거리를 더했다. 1913송정역시장은 하루 1만2000명이 이용하는 광주송정역 방문객을 흡수하며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위)COLDPLA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아래)1913송정역시장 전경.



▶비웃음 받던 컬처프로젝트

현대카드의 큰 자산이 되다

짧게 올려친 헤어스타일에 모던한 디자인의 안경, 젊은 캐주얼 복을 즐겨 입는 부회장의 세련된 이미지는 곧 현대카드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그에게서 보수적인 금융권 CEO의 풍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 부회장은 정교한 브랜딩 전략에 예술을 적극 활용했다. 현대카드 특유의 세련된 이미지는 형성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연과 미술·예술 프로젝트라 평가받는다. 특히 대한민국 문화마케팅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Super Concert)’ 역시 치밀한 브랜딩 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가 첫선을 보이기 전, 전문 공연기획사도 아닌 카드회사가 초대형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티스트를 금융마케팅에 끌어들인다며 저평가하기도 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현대카드는 2007년1월 세계적인 팝페라 그룹인 ‘일디보(IL DIVO)’의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10년간 22차례 초대형 콘서트를 개최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록 밴드인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전 세계 대중음악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폴 매카트니’가 슈퍼콘서트를 통해 국내 팬들과 첫 만남을 가졌으며, 최고의 디바(DIVA)인 ‘비욘세’와R&B 황태자 ‘어셔’도 슈퍼콘서트를 통해 국내 팬들과 조우했다. 세계적인 힙합 뮤지션 ‘에미넴’과 R&B 전설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 등도 슈퍼콘서트 무대를 빛낸 아티스트들이다. 공연 외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투영해 직접 제작한 생수(잇워터)부터 공연에 사용하는 야광봉의 디자인까지, 현대카드 디테일의 힘은 슈퍼콘서트 전 부분에 녹아 있다.

2014년 정태영 부회장이 이준우 당시 팬택 대표를 만나 현대카드의 디자인 경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기업문화 최고의 경쟁력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강조하고 창의적·혁신적 경영기법을 많이 도입한 정 부회장은 ‘한국의 잡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훌륭한 기업문화에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철칙하에 사내복지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현대카드 인사이드를 통해 “(현대카드에 부임하면서) 회사 직원들의 임금도 10% 이상씩 올리고 사옥 인테리어도 최고로 바꿔 나갔다”며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면 비용은 줄일 수 있겠지만 재능 있는 직원들은 가질 수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그는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종종 사내 사우나에 방문해 임원부터 말단사원까지 만나며 ‘알몸소통 행보’를 펼친다. 연말이면 현대카드나 현대캐피탈 직원들은 정태영의 자리에 앉아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대카드의 움직임은 애플, 구글 등 역동적인 글로벌 IT 기업 문화와 닮아 있다. 정 부회장이 국내외 IT 기업들을 돌며 혁신 DNA를 이식해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2월 정 부회장은 스타트업 ‘배달의 민족’을 방문했고, 3월엔 미국 구글 본사를 찾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근무환경을 위해 캐주얼 복장 규정을 도입하고 승진연한을 철폐하는 등 그가 바꾼 제도는 온라인상에는 예외 없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간결하고 신속한 ‘소통’을 강조하는 그는 ‘PPT 금지령’을 선포하며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과 환호를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회사 내부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단순화 2.0’제도를 추진해 쓸데없는 관행을 없애려고 했다. 부하직원이 궁금한 게 있을 때 보고서를 올리지 말고 직접 전화나 이메일로 상사에게 문의해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 게 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성과를 중시하는 정 부회장의 스타일은 지난 2월 변경된 승진제도에도 반영됐다. 기존 4·4·5·5년의 승진연한을 사실상 없애고 진급한 지 2년이 지난 직원은 모두 승진대상이 될 수 있도록 인사체계를 손질했다. 그 결과 올해는 전체 승진 대상자의 16%가 승진연한과 무관하게 승진했다.
개인 역량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승진하는 정체된 인사 문화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정 부회장은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이지 않은 디테일은 획일적인 보급품에 불과하며 높은 수준의 디테일에는 높은 조직 문화가 필수 조건이다”라며 기업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 부회장의 현대카드의 미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1호 (2017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탄생 100주년 세계 최초 교육보험 설립 ‘..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 “제조회사의 본질은 제품, 품질은 타협할 수 없다”

노차영 삼성생명 WM사업부 상무 | 진정성 있는 가문교육이 장수기업 일구는 첩경(捷徑)이죠

배우 김소현 | 아역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첫사랑 경험하고 싶어요”

경영일선 복귀한 이재현 회장 | 움츠렸던 CJ그룹 날개 달고 훨훨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