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청순 베이글녀 조여정 | ‘밉지 않은 악역’으로 물오른 연기
기사입력 2017.06.09 15:50:42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배우에게 한 번 생긴 꼬리표는 바뀌기 쉽지 않다. 역할이나 작품 속에서 각인된 장면은 그 배우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된다. 배우 조여정(36)은 청순한 외모에 건강미 넘치는 몸매로 ‘베이글녀’라고 불렸다. 인형 같은 얼굴은 데뷔 초 조여정을 대표하는 키워드였고, 영화 드라마에서 보인 노출 연기는 화제가 됐다.

조여정은 KBS2 드라마 <완벽한 아내>에서 아동 학대를 받은 뒤 구정희(윤상현 분)에게 집착하고, 그의 아내인 심재복(고소영 분)의 삶을 뒤흔드는 이은희 역할을 맡았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조여정은 방송 내내 박수를 받았다. 단순히 보이는 외관으로 평가를 받던 그는 온전히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배우가 된 것이다.

“캐릭터가 무섭진 않았지만, 촬영을 끝내고 나서 ‘얘 왜 이래’라고 했죠. 이은희와 저는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더 어려웠어요.” 이은희는 대학생 때 구정희의 공연을 본 뒤 그를 마음에 품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상처받은 그에게 구정희는 새로운 삶을 뜻했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표현은 스토킹으로 이어졌고, 조여정의 섬뜩한 연기는 <완벽한 아내>를 이끄는 힘이었다.



▶사이코패스 연기 성장의 디딤돌

‘친절한 웃음 뒤에 감춰진 싸늘한 눈빛’은 이은희가 가진 캐릭터를 설명하는 표정이었다. 이은희는 속내를 숨기고 한 가정에 접근하는 ‘문제적 여자’였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은희의 개성이 강해져서 너무 어려웠어요. 시청자들이 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게끔 하려고 고민했죠.” 조여정은 악역인 이은희가 단순히 밉게 보일까 걱정했고, ‘저 사람도 딱한 인생이다’라는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

조여정의 어머니는 매회 <완벽한 아내>를 보고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짧은 격려 문자를 보내던 어머니는 이은희가 눈속임을 위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 정상인처럼 행동하자 ‘이은희가 반성하는 모습도 좋았다’고 했다. “엄마 문자를 받고 ‘성공했구나’ 했죠. 그래야 재밌으니까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어려웠어요. 이은희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고, 연기가 늘었죠. 이은희에게 고마워요.” 어머니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이은희는 조여정에게 또 다른 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완벽한 아내>는 조여정의 연기로 회자되고 있지만, 첫방송 전에는 고소영(45)이 10년 만에 복귀하는 드라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여정은 고소영에 대해 “어릴 때부터 나의 스타였다”고 했다. “배우를 하니까 고소영 언니와 함께 작품하는 날도 오더라고요.” 고소영, 조여정은 <완벽한 아내>가 잘 조율된 현악기처럼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두 축이었다.

윤상현(44)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조여정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이은희에 대해 고민할 때 윤상현 오빠가 ‘왜 자꾸 걱정하냐’고 하면 모든 게 심플해졌다”고 회상했다. 촬영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윤상현은 조여정에게도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한국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은 주로 남자 배우들이 맡았다. 2000년대 전후로 조직폭력배 등 거친 남자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나 잔인한 살인범을 앞세운 장르물이 인기를 끌어서다. 여자 배우들은 제한적인 배역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조여정이 연기한 이은희는 그래서 더 특별한 캐릭터였고, 벌써부터 조여정이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배우 활동 경력은 길었지만, 그가 드라마 시상식에 초대받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정말 중요한 건 드라마를 통해 호응을 얻었다는 그 자체인 듯해요. 그게 상이고 기쁜 일이죠.” 열정을 쏟은 결과물이 쌓이는 것이 조여정에게는 상과 다름없었다.



▶속살 드러나는 노출연기로 관심

조여정이 확실히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건 지난 2010년 영화 <방자전>부터였다. 그는 이몽룡을 사랑하다가 방자에게 흔들리며 두 남자에게 덫을 놓는 발칙한 춘향으로 등장했다. 춘향전을 비튼 <방자전>으로 조여정은 주연배우로 발돋움했고, 짙은 애정신으로 관심을 받았다. <후궁: 제왕의 첩>에서도 조여정의 노출은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조여정은 <방자전> <후궁: 제왕의 첩>을 통해 의도하지 않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속살이 드러나는 장면들 때문에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서운한 감정도 있었으나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외적인 상황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없죠. ‘내 직업인데 어떻게 하겠어’라고 생각해요. 억울하고 답답해도 어쩔 수 없죠.”

환한 미소를 머금던 조여정의 배우로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곧았다. 자신의 손을 떠난 순간들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훌훌 털어 보내는 편이었다. 작품이나 연기 칭찬에는 쑥스러워하다가도 촬영장 이야기가 나올 때는 연기를 하듯 몰두해 순간들을 떠올렸다.

서른 중반이 된 조여정이 최근 들어 선택한 역할은 흥미롭다. 몸매보다는 사연이 부각되는 인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영화 <인간중독>에서는 완벽하지만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숙진 역을 맡아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외모만 주목받던 그가 비로소 연기력으로 평가받았다.

조여정은 이후에도 영화 <워킹걸>을 통해 완벽주의자 커리어우먼 보희를, SBS 드라마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에서는 안하무인의 독재자 고척희를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지난해에는 KBS2 4부작 단막극 <베이비시터>에서 대학생 베이비시터와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복수하는 천은주를 연기했다.



▶흥행보다 새로운 장르·캐릭터에 욕심

20대 여자 배우로서 사랑받는 역할을 주로 맡아 하던 조여정은 30대에 접어들며 변신을 택한 것이다. “어느 순간 로코(로맨틱 코미디)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장르나 캐릭터를 고민하는 시기죠. 동글동글한 제 외모와 반대되는 캐릭터를 하면 관객들이 새롭게 받아들일 듯했어요.” 조여정은 작품마다 거창한 ‘도전’이 아닌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사 한마디도 고민 끝에 내뱉는 조여정은 매 순간이 치열했다. 조금 더 다양한 작품을 만나려고 한 건 여자 배우들이 더 넓은 공간에서 연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좋죠.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바람으로 시작해요. 여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지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동료 배우들에게 시선을 나눠줄 정도로 조여정은 욕심이 많은 배우다. 흥행이 기대되는 작품에 참여하기보다는 새로운 장르나 캐릭터에 더 눈이 갔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해보고 싶으니 뛰어들어 보자’는 방향이었다. “키만 성장을 멈췄지 연기는 성장 중이에요. 한창 연기가 성장할 나이죠.” 일부러 어려운 벽에 부딪치고 자신에게 숙제를 던질수록 ‘배우 조여정’의 존재는 더욱 커졌다.

조여정은 <완벽한 아내>를 끝낸 뒤 제36회 국제현대무용축제 ‘모다페 2017’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평소 현대무용과 무용수의 몸에 오랜 동경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현대무용을 보러 다니다가 1년 전부터 현대무용을 배우고 있다. 몸매 관리는 물론 배우로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다.

현대무용 외에도 조여정은 일상에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홀로 아침에 영화를 보거나 한강 근처에서 바람을 쐬기도 한다. “혼자 무엇이든 하는 걸 좋아해요. 한적하고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까딱까딱 졸기도 하죠. 모든 재밌어 하는 듯해요.” 새벽에도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 그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

동그란 이마 덕분에 조여정은 동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이마가 너무 튀어나온 것 같다”고 툴툴대면서도 카메라 스태프가 얼굴을 예쁘게 잡아줬다며 웃었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볼이 통통했는데, 살이 빠지면서 이마가 더 도드라지는 거 같아요.” 곧이어 ‘바비인형’ 같다는 칭찬에는 유쾌하게 웃었다.



▶혼기 가득 찬 그녀 “아직 결혼은…”

삽십 대 중반인 조여정은 혼기가 가득 찼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결혼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다”고 했다. 아직은 홀로 지내는 생활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결혼한 고소영에게 이전과 다른 아름다움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소영 언니가 결혼한 후에 엄마로서의 미(美)가 생겼다고 느꼈죠. 멋있더라고요. 결혼 생각이 없다가도 내일 돌아서면 있을 수도 있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지금은 최대한 좋은 작품을 하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결혼은 잠시 미뤄둔 조여정은 1년에 한 편씩은 촬영을 하고 있다. 배우의 미덕 중의 하나는 좋은 작품을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는 이전보다 무대가 줄었지만, 차기작을 기다리면서 재밌게 살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작품을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단다. 그가 찾는 재미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복잡한 감정선을 고민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푸는 게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였다.

“어떤 차기작과 만날지 늘 궁금하다”고 한 조여정은 “배우는 항상 멜로를 원하는 듯하다. 최근에 사랑받는 역할을 하지 못해서 다음 작품은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낯설고 독특한 소재를 만나 배우로서 성숙해진 그가 이제는 다시 멜로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조여정이 최근 연기한 역할들은 주목받았지만, 그만큼 극 안에서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4개월 동안 <완벽한 아내>와 생활했던 조여정은 시청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로 “천만 곱하기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부진한 시청률에도 조여정이 끝까지 버틴 건 시청자들의 호응 때문이었다. 악역이었지만, 시청자들이 밉지 않게 봐준 것도 조여정의 연기력과 진심이 전달돼서다.

“‘저 친구 노력하는 거 같다’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보다 더 노력하는 배우도 있겠지만, ‘노력과 진심이 조금씩 통하는구나’라고 느꼈죠. 고민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시는 거 같아서 찡하더라고요. 색다른 시도가 항상 성공하는 게 아니어서 부담은 되지만, 다음 작품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와도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한인구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1호 (2017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창규 KT 회장 | 황의 법칙은 잊어라, ‘5G’로 통신 혁명 이끈다

첫 민간 출신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소비자보호와 금융신뢰 회복에 최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새 정부 위기관리 구원투수,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개혁적 시장주의자 “..

‘삼순이’로 로코퀸 올랐던 김선아 그녀에게 느껴지는 농염한 ‘품위’

서병수 부산 시장 | “난 정치 DNA보다 행정 유전자가 더 많은 사람”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