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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막 오른 스가 총리 시대, 올림픽 불투명에 경기 악화… 1년짜리 비상내각 관료사회 장악했어도 파벌정치 혼란 가능성
기사입력 2020.09.29 15:25:46 | 최종수정 2020.10.02 12: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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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석화와 승자독식.

일본 언론들이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탄생 과정을 두고 내놓은 평가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건강문제를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금요일이던 지난 8월 28일. 당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총리관저와 자민당 간부들도 대부분 총리 임기 완주 의사를 밝힐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유력 후보들이 출마의사를 밝히고 치열한 선거전이 시작돼야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아베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 이틀 후인 지난 8월 30일,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47명)가 스가 당시 관방장관 지지를 선언했다. 다음날인 31일에는 자민당 1~3위 파벌인 호소다파(98명), 아소파(54명), 다케시다파(54명)가 경쟁적으로 스가 지지를 밝혔다. 여기에 코로나19란 이유로 약식 선거로 치러질 것이 이날 사실상 정해졌다.

전체 투표수가 국회의원(394표)과 지방(47개 도도부현 각 3표씩 141표)을 합해 535표인 상황에서 주요 파벌의 지지로 이미 스가 장관은 당선 기준인 과반수 표를 확보했다.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승자가 결정된 셈이다. 아베 총리의 전격적인 사임발표 후 사흘 만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총재가 총리가 된다.

아베 신조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총리가 선출됐다.



파벌에 의해 총리가 결정되는 상황이라 일본에서도 밀실정치란 비판이 나왔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본 정치에서 잊혀있던 파벌의 영향력이 다시 확인된 순간이었다. 파벌에 속하지 않는 무파벌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파벌 타파’를 외쳐온 스가 총리가 파벌의 힘으로 총리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파벌정치는 일본 정치, 특히 자민당의 역학구조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각 파벌별로 나름의 이념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철학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한 지역구에서 복수의 후보가 같은 당으로 출마해 또 선출될 수 있던 중선거구제에서 공천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당내 유력 인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파벌이다. 총리가 되길 원하는 파벌 회장 입장에선 소속 의원을 늘려야 했고 이를 위해선 정치자금을 끊임없이 공급해야 했다. 파벌 회장과 의원과 공생관계 속에서 정치자금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속되는 정치자금 문제로 규제 법안이 날로 강화됐다. 또 1994년엔 소선거구제 도입이 이뤄졌다. 이후 파벌의 영향력이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선거구당 1명만 출마가 가능하니 대표, 간사장 등의 힘이 절대적으로 강해졌다. 당 중앙 입장에선 당선 가능한 후보자가 필요해지다 보니 전략공천 등에 나섰다. 이후 파벌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총재선거, 개각 등의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파벌의 영향력을 확인하기도 어려워졌다. 2001년에 파벌에 속하지 않은 첫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가 총리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첫 선거인 1996년 선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초기엔 파벌에 소속하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않았다. 2009년 이후엔 무파벌을 유지하면서 파벌 타파란 명분에 공감하는 의원들을 모아 스가 그룹을 만들어 활동해왔다.

파벌에 속해있지 않다보니 어려움도 적지 않았던 그가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아베 전 총리와의 끈끈한 관계 덕분이었다. 2004년 북한의 만경봉호 일본 입항 금지를 위한 입법과정에서 의기투합한 후 아베 전 총리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왔다. 2006~2007년 1차 아베 집권기에 총무상을 역임했다. 5년 후 아베 전 총리가 다시 총재선거 출마 등을 권한 것도 스가 총리였다. 이후 7년 9개월에 걸친 아베 정권에서 관방장관으로 일했다.

9월 12일 일본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대 최장 관방장관이자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며 국민적 인지도도 높아졌지만 그가 총리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총재선 승리에 필요한 파벌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발표로 상황이 바뀌었다. 8년 가까이 이어진 아베 1강 시대를 통해 마땅한 후보를 키우지 못했던 주요 파벌 입장에선 영향력을 유지시켜 줄 후보가 필요해졌다.

또 신임 총재의 임기가 내년 9월까지 한시적이란 점도 한몫했다. 경기 악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올림픽 등 악재가 산적한 상황이다 보니 총재가 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공산이 높아서다.

스가 총리는 여전히 파벌 타파를 강조하고 있지만 과연 소신대로 실행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뜩이나 악재가 많은 상황에서 당 장악력 유지를 위해서는 파벌의 힘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파벌 타파를 내세운 총리가 20여 년 만에 다시 파벌정치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파벌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긴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총재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상황이 지속될 공산이 높다.

주요 파벌들이 충성경쟁이라도 하듯 스가 지지를 선언한 것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대학원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당 총재에 인사권이 집중된 상황에서 파벌 입장에서 유력 후보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대세를 굳힌 후보가 모든 표를 차지하는 승자독식이란 얘기다. 파벌의 힘이 스가 총리를 탄생시켰지만 파벌 역시 총재의 힘 앞에 무력함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스가 내각이 1년 비상내각이 될 것이란 평가 속에도 새로운 1강 체제의 장기정권이 등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특히나 스가 총리가 밑바닥에서 출발해 현 위치까지 올라온 실력파란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 스가 총리가 관료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보니 성과를 내기 쉬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가 총리는 내각 인사국을 통해 주요 간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손타쿠(알아서 기는) 관료’를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총리의 의중이 일사분란하게 반영되는 구조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과거 사례를 볼 경우 장기 정권 뒤엔 한동안 정권교체가 자주 발생하는 혼란기가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정욱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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