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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고개 드는 美 경기침체 우려… 中·獨·남미 등 전 세계 빨간불, 무역전쟁 격화 땐 ‘도미노 불황’ 우려
기사입력 2019.09.02 13: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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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안한 회복세를 이어왔던 세계 경제에 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 미중 무역전쟁은 전 세계 실물경제에 직접적 타격을 안기기 시작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지난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중국의 7월 산업생산은 1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오는 10월 말이 시한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재협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동아시아는 한일 무역 갈등과 홍콩 민주화 시위가 겹쳤고 남미에선 아르헨티나가 좌파정권 집권 가능성으로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전 세계 주요 대륙 곳곳에서 정치경제적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악의 무질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올해 글로벌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3%에서 3.2%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2019년 성장률을 3.9%로 예상했으니 1년 새 0.7%포인트를 떨어뜨린 셈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3.5%다. 그러나 IMF 안팎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의 전망치에는 죽을 쑤고 있는 남미 경제의 회복, 미중 무역 갈등의 봉합, EU의 완만한 성장 등 여러 기대감이 녹아들어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돈을 만지는 금융시장은 이미 최악에 대비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리세션(Recession·경기침체)이 나타날 우려가 있는 국가로 유럽에선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을 꼽는다. 중남미의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위험하며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한국이 리세션 위험군이며 러시아도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세를 나타나는 현상을 리세션으로 정의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 후 어김없이 리세션 발생

무엇보다 ‘나 홀로 성장세’를 구가해온 미국마저 올 하반기부터 성장률이 둔화되고 수년 안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4일 세계 채권시장에선 ‘장단기 금리 역전(yield curve inversion)’이 12년 만에 발생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보다 낮아진 것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리세션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지만 경기침체가 예상되면 장기 안전자산에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며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에 따르면 1978년부터 40년 동안 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 금리 역전이 발생한 것은 모두 다섯 차례다.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 평균적으로 22개월 뒤 여지없이 리세션이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제도(Fed)가 시간을 좀 더 확대해 1955년 이후를 분석해보니 총 10번의 역전 현상이 있었다. 이 가운데 9번은 리세션이 찾아왔다. 이쯤 되면 ‘탄광의 카나리아’로 불러도 무리가 없는 경험칙이다. 독성물질에 민감한 카나리아가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처럼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은 경제위기를 알리는 신호라는 얘기다.

가장 최근 사례를 보면 2007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앞서 2005년 12월 무렵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5년 당시는 미국 경제가 성장률 3%를 육박하는 호황기를 이어가던 때였다. 당시에도 위기론이 비등했지만 대체적 시각은 “이번은 다르다”였다. 하지만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자 결국 숨겨져 있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파생상품들이 시한폭탄처럼 터지고 말았다.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이 터지기 전에도 금리 역전이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말들이 나온다. 이번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계 거물인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고문은 마이너스 금리로 유통되는 15조달러 이상의 유럽 국채가 채권시장을 교란시킨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이 혼탁하니 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금융위기 이후 대처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유동성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갈 곳 없는 돈들이 채권, 주식, 원자재 시장 등을 떠돌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또 오락가락하는 연준의 통화정책도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연준은 지난해 네 번이나 금리를 올리더니 지난 7월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9월 말에도 한 번 더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고 이번에는 한번에 0.5%포인트를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채권 투자자들이 경제의 장기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금리 역전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채권 금리는 일반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매겨진다. 장기채는 장기 예금과 같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금리를 받고, 단기채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받는다. 그런데 최근엔 낮은 금리를 줘도 안전한 미국 장기국채에 전 세계적인 수요가 쏠리는 것이다.

물론 시장이 불안한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제품에 관세를 아무리 매겨도 정부 수입만 늘어날 뿐 소비자 피해는 없다고 큰 소리를 쳐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9월부터 관세를 부과하려던 16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12월로 시기를 미룬 것은 스스로 소비자물가 상승을 염려했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서서히 꺼져가는 경기를 정부지출과 민간소비로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재·부품에 그치지 않고 중국산 소비재에 관세가 본격 부과되면 수입업자들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가격이 올라 수요가 줄어들면 수입업자 도산에 그치지 않고 미국 경기 자체가 꺾이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양호한 미국 경기를 감안하면 가까운 시일 안에 리세션이 올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실제로 금리 역전 이후에도 평균 1년 이상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문제는 대체 언제가 경기가 꺾이는 시점이 될지 미리 예측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당분간 전 세계 금융시장이 뚜렷한 방향성 없이 오락가락할 가능성이 높은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빠르게 금리를 낮추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오히려 버블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무역전쟁부터 수습하는 것이 즉효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고집하며 계속 중국을 때리는 게 내년 대통령 선거에 유리할지, 아니면 적절한 타협을 택해야 할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판을 벌렸다는 한탄이 미국 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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