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對韓 무역전쟁의 日 숨은 기획자
기사입력 2019.07.31 10:31:2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일본의 기습적인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미증유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과거사 등에 따른 양국 간 부침 속에서도 경제협력은 상호 협력의 분야로 관계 악화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양국 간 관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에서는 7월 15일 야마다 타카오 특별편집위원의 칼럼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로 변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란 일본의 우익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펴낸 동명의 책(1989년)에서 따온 것이다. 안보를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이후 일본 경제 거품붕괴와 함께 자신만만했던 분위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야마다 편집위원은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고 이에 대응했던 지금까지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분위기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전후에 태어난 이른바 전후세대들이 일본 정치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강화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의 전면에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마주 앉은 실무 협의 대표들



▶이마이 다카야 총리정무비서관

이마이 정무 비서관(61)은 아베 총리의 6명의 비서관 중에서도 수석 비서관이다. 일본의 비서관은 우리의 청와대 수석에 해당한다. 이번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이마이 비서관의 그림이라는 것이 일본 정계의 정설이다. 1982년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경제산업성에서 주로 일해온 관료다. 2006~2007년 아베 1차 내각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며 아베 총리의 신임을 얻었고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그를 다시 총리관저로 불러들였다. 이후 아베 총리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란 평가를 얻었다. 숙부인 이마이 젠에이(1913~1996년)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년) 밑에서 일했던 인연도 있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 관가의 가장 중요한 부처가 재무성에서 경제산업성으로 바뀐 것도 이마이 비서관의 존재 때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수출규제가 경산성 주도로 이뤄진 것 역시 이마이 비서관이 경산성 출신인 점과 무관치 않다.

이마이 비서관과 함께 주목할 인물이 사이키 고조 비서관이다. 올해 42살인 사이키 비서관 역시 경산성 출신이다. 다른 비서관들에 비해 10살가량 어리지만 1차 아베내각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던 중 아베 총리와 이마이 비서관 눈에 띄어 2017년 최연소 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경제산업성에 들어왔다. 이후 관저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경산성에서 경력보다 관저에서 일한 기간이 더 길 정도다. 그를 사석에서 만났다는 한 한국인은 “사이키 비서관이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물어 당황스러웠다”고 전하기도 했다.

총 6명의 총리 비서관은 경산성 출신 2인 외에 신가와 히로스구(56·재무성), 스즈키 히로시(58·외무성), 시마다 가즈히사(56·방위성), 하라 가즈야(51·경찰청)이다. 스즈키 비서관과 시마다 비서관은 지난 2012년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세코 경제산업상은 이번 수출규제의 주무부처 장관으로 전면에 나섰다. 올해 56세인 그는 와세다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한 후 1986년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에 입사해 줄곧 홍보를 본업으로 삼아 일해왔다. 회사 교육프로그램으로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된 것은 백부 세코 마사타카 참의원 의원(1923~1998년)의 사망이었다. 백부에게도 장남이 있었지만 참의원직은 세코 경산상이 물려받았다.

정계에 입문한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인 2005년. 우정(우체국 해당) 민영화 등을 기치로 내건 당시의 중의원 선거에서 그는 주특기를 살려 홍보본부장대리 겸 간사장보좌 역으로 홍보전략을 수립했다. 당시 그가 내세운 것이 인터넷을 활용한 홍보전략이었다.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그는 자민당 내에서도 인터넷 여론 대응 전략을 총괄하는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번 수출규제에서도 언론과 SNS를 통한 전략을 총동원했다.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이번 조치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은 각종 망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번 수출규제와 관련해서도 언론에 나와 한국으로 수출된 전략물자의 부적절한 관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인물이 그였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 여당간부의 발언이라며 북한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왔을 때 발언의 주체로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베 정권의 나팔수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인물이다. 그와 아베 총리의 접점은 일본 극우의 본산이라 불리는 조직인 일본회의다. 그는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뤄진 개각에서 총 21명의 대신 중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 출신만 14명에 달한다. 아베 총리는 이 모임의 특별고문을 맡고 있다.

1963년생인 그는 메이지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기초지자체 의원부터 시작했다. 도쿄도의 행정구역인 하치오지시와 도쿄도 의회를 거쳐 지난 2003년 중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2009년엔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도 있다.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기시다 정조회장(62)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정조회장은 간사장, 총무회장과 함께 일본 정당의 3대 주요 포스트 중 하나다.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그는 2015년 말 일본 외상 자격으로 윤병세 당시 외교장관과 한일 위안부 합의서에 서명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화해·치유 재단이 해산되면서 강경한 자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일본의 일반적 평가다. 외상 경험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경력이 없지만 그는 파벌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자민당 내 정조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자민당이 우경화한다는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온건파들의 목소리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평소 대부분의 안건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기시다 정조회장까지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 것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이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1957년생으로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장기신용은행에 취직했다. 5년간의 직장생활 후 1987년 부친인 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할아버지인 기시다 마사키 때부터 이어져온 지역구를 물려받은 것은 1993년이었다.

[정욱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SEAN Trend] 관광도시 다낭, 첨단산업도시로 꿈틀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10월 소비세율 인상 놓고 삐걱거리는 日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치솟는 돼지고기 가격에 비상 걸린 中, 아프리카돼지열병 탓 공급 10년..

[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 대선 출마 포기 선언… 출마 시사 8개월..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신종 마약 오피오이드에 병드는 美, 오남용 사망자 年 5만 명… 총기 사..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