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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특파원의 굿모닝 하노이] 한국·베트남 더 끈끈하게 만들 ‘2대 변수’… 박항서 열풍으로 가까워진 양국 간 ‘정서적 거리’, 韓 정부 비자완화 혜택에 ‘물리적 거리’도 성큼
기사입력 2019.01.10 10: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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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 간 협력 체제 구축이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금까지도 양 국가는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은 모습을 보여 왔는데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이벤트로 상호 협력의 폭과 깊이가 한층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항서호가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연이은 선전과 최근 한국 정부가 내린 베트남 대도시 거주민 상대 복수비자 허용이 두 축이다.

지난 12월 15일(현지시간)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확정지었다.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상대 말레이시아를 꺾었다. 1차전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2대2로 비긴 것에 이어 홈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2008년 이후 10년 만의 우승이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베트남 전역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국가 전체가 들썩거렸다. 흥겨운 파티는 밤이 새도록 지속됐다. 거리는 금성홍기를 흔드는 오토바이 부대와 차량이 만드는 붉은 물결로 넘실댔다. 곳곳에 태극기와 박항서 감독이 그려진 깃발이 함께 어우러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베트남 하노이의 가장 큰 번화가로 꼽히는 호안끼엠 근처는 거리에 인파가 일시에 몰린 탓에 오토바이 조차 유턴을 못할 정도였다. 이번 우승으로 박 감독은 지난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에 이어 세 번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역사를 썼다. 당분간 박 감독은 한국 출신으로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또한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이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트남 내 한류열풍을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 감독의 입지는 ‘성공한 감독’을 넘어 ‘영웅’에 가깝다는 평가다. 베트남 내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응유엔반둥씨는 “박 감독 덕분에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며 “베트남은 박 감독 성과에 보답하기 위해 박항서 이름을 딴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역사에 나오는 위인 이름을 길 이름으로 차용하는 사례가 많다. 박 감독의 성과를 널리 기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미 베트남 현지에서 박 감독을 만나려면 정부 고위관료이거나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급이 아니면 약속 잡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베트남 하노이 미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을 최종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과 응유엔쑤언푹 베트남 총리(왼쪽 둘째)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박 감독 희생적이고 겸손한 리더십으로 인기

현지에서 박 감독 인기가 고공행진을 펼치는 것은 그간 박 감독의 성과가 워낙 좋았던 데다 희생적이고 겸손한 리더십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월 7일 스즈키컵 결승 1차전이 열리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 박 감독은 이륙 직후 등을 다친 도 훙 중에게 비즈니스석을 내주고 선수자리인 이코노미석에 앉았다. 박 감독은 “부상당한 선수를 편안한 자리에 앉혀야 했는데 잊어버려서 미안하다”는 사과 메시지까지 전했다. 지난 8월에는 부상당한 선수의 발을 마사지 기계로 문지르는 영상이 SNS를 타고 퍼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KOTRA 하노이무역관에서 일하는 응유엔탄반 씨는 “박 감독의 파파(아버지) 리더십이 베트남 전역을 감동시키고 있다”며 “박 감독 덕분에 한국에 대한 호감도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감독이 보여주는 겸손한 태도가 베트남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다. 박 감독은 “더 이상 감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베트남에 갈 기회가 생겼다”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베트남 문화와 선수는 물론 국민 모두를 존중하려 했다”고 말한다. 15일 하노이 미딘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우승 세리모니 당시 응유엔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박 감독을 끌어안으며 연신 엄지를 치켜들고 감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푹 총리에게 네 번에 걸쳐 고개를 조아리며 끝까지 겸양의 태도를 보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베트남 국영방송사 VTV6 중계진이 ‘깜언(고맙습니다) 박항서, 깜언 한국’을 연신 외쳐댈 정도였다. 박 감독에 대한 감사에 더해 그를 보내준 한국에까지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특히 이번 스즈키컵 우승은 한국과 베트남의 정서적 거리를 단숨에 무너뜨린 일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박 감독을 연결고리로 양 국가 모두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광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방송사는 말레이시아가 펼친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주말 황금시간대에 중계 방송했는데 최고 시청률이 20% 가까이 나올 정도의 대박을 쳤다. 웬만한 한국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비 훨씬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 사실은 베트남 국민에게 널리 회자되며 ‘한국과 베트남은 하나’라는 공감대가 퍼지게 한 이벤트가 됐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한국과 베트남 국민들이 같은 공간에서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태극기를 든 베트남 국민과 금성홍기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이 동반 응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베트남 내 다수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지만 경제력 차이 등을 이유로 국가 간 정서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의 스즈키컵 우승이 양 국가 모두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축구를 매개로 양 국가가 정서적 일치감을 느낀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하노이에서 만난 택시 기사 레 밍 하이 씨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은 국적을 떠나 이제 하나다”라며 “한국 사람을 보면 베트남 사람을 본 것처럼 친근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경기가 끝난 직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나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나의 조국 한국도 사랑해달라”고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응유엔따이쯔엉 베트남프로골프협회(VPGA) 사무국장은 “박 감독 겸손의 리더십 덕에 베트남 사람들이 그를 자랑스러워 한다”며 “베트남 전체가 박 감독을 존경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감독에 대한 존경은 베트남 내 ‘한국 사랑’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공산이 크다.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직전 박 감독은 한국 축구 3부 리그격인 창원시청 감독이었다. 이전에 아시안게임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K리그 경남 FC의 감독, 전남 드래곤즈 감독 등을 거쳤지만 눈에 확 뜨일 만한 성적은 내지 못했다. 까마득한 후배인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기도 할 정도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훠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수석코치로 한국 국가대표팀을 4강에 올린 게 최대 성과였다. 한국에서 엘리트코스를 밟지 못한 박 감독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건너온 베트남에서 화려한 성공스토리를 쓰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발전시킨 리더십이 뒤늦게 꽃을 피우고 있다. 스타 감독 출신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독선의 늪’에 빠지지 않은 점이 특히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이에 앞서 지난 11월 말 한국 정부가 내린 베트남 대도시 거주민 사대 ‘5년 복수 비자 허용’은 양국 간 물리적 거리를 급격히 좁힐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국 법무부는 11월 말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라오스,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세안 11개국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업인, 국내 4년제 대학 학사 이상 학위소지자 또는 해외 국가 석사학위 소지자에게 유효기간 10년의 단기방문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다.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희박한 고소득, 전문직 직업군을 상대로 한국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조치를 내렸다.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따른 조치다. 신남방국가와 한국의 관계를 좀 더 끈끈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베트남 청소년들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그룹인 ‘NCT127’을 응원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 베트남인 한국 드나들기 쉬워져

베트남을 놓고서는 플러스 알파 혜택이 추가됐다. 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베트남 3대 대도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민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별도의 5년 복수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번 비자를 받으면 5년간 추가 심사 없이 언제라도 한국을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거론한 변호사, 교수 등 직업, 학력 관련 부대 요건이 대폭 완화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하노이나 호찌민, 다낭에 거주지를 두고 있으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한국을 쉽게 오갈 수 있는 혜택을 준 것이다. 지금까지 베트남 국민이 한국에 입국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불법체류 등을 우려해 비자 심사를 매우 깐깐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베트남 내 ‘한류 열풍’으로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이 떠올랐는데 비자 심사를 거쳐 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베트남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면 이전보다 훨씬 쉽게 한국에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베트남 주요 SNS에서는 뉴스를 퍼나르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뉴스 검색 순위 1위로 한국 비자 완화가 떠오르는 등 국가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정도였다. 특정 국가와의 비자 정책은 신뢰를 의미한다. 베트남은 한국 정보의 비자완화 조치에 대해 적잖게 감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세안 국가에서 베트남에게만 유독 특혜를 준 모양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여타 아세안 국가 일부에서 “왜 베트남만 특별 대접을 하느냐”며 볼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외교가에서는 베트남이 한국의 비자완화 정책을 한국이 베트남에 보여주는 신뢰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이 베트남을 대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베트남은 물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중국 영향을 받아 유교 사상 영향권 안에 있는 특징이 있다. 단어의 60% 이상이 한자 기반일 정도로 문화도 비슷하다. 한국처럼 ‘체면’을 중요시하는 정서도 비슷하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이 베트남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면을 차린 베트남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을 대접하려 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의 투자를 더 유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국민을 상대로 한 거주 비자를 완화하거나 한국 기업 허가 심사를 덜 깐깐하게 할 수도 있다. 베트남 기업의 한국 투자도 향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베트남 여행객이 급증하면 여기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전망이다. 이걸 노린 베트남 자산가들이 한국 현지에 베팅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사람이 오가면 사업 기회는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ODA 자금으로 무장한 일본에 비해 한국이 선제적으로 비자완화 카드를 내민 것에 주목한다. 일본은 한국 대비 연간 10배가 넘는 ODA 자금을 쏟아 부으며 베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국을 필두로 동남아시아 전역이 일본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베트남은 한국이 일본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다. 이는 정부의 힘보다는 기업의 힘이었다. 대다수 투자가 삼성 효성 코오롱 SK 한화를 비롯한 민간기업에서 이뤄졌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제품이 베트남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한다. 한국 기업 전체를 합치면 3분의 1에 달한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부품을 수출하고, 베트남에서 이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공급하는 비즈니스 사이클이 확고하다. 그 덕에 지난해 한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기록한 무역흑자만 315억8000만달러(약 35조66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두는 무역흑자의 약 3분의 1을 베트남에서 거두고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단숨에 ODA 자금을 늘릴 수는 없지만 양국가 간 인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비자완화 조치를 내세우며 ‘베트남 마음 사로잡기’에 나선 셈이다. 2018년 한 해 지난 10월까지 한국 방문길에 오른 베트남 국민은 44만 명으로 전년(38만 명)보다 6만 명 늘어났다. 같은 기간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은 240만 명에서 260만 명으로 늘어났다. 레티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한국 비자완화 조치를 놓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양국 간 인적 교류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는데다 양국 간 관광, 교역, 투자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힐 정도다. ‘박항서 열풍’으로 서로에 대한 호감이 급속히 높아진 양 국가 국민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다양한 사업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갑작스럽게 완화한 비자 정책이 불법체류자 증가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할 대목이다. 실제 한국으로 유학 온 베트남 대학생 일부가 잠적해 사라지는 등 일부 부작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나름의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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