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일본서 뜨는 신종업태 "분신로봇 카페·치매 식당·히키코모리 회사"
기사입력 2019.01.10 10:38:00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돈(dawn) 버전 베타’

“전 마사라고 합니다. 천천히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하얀색의 120㎝짜리 로봇 ‘오리히메’의 입을 통해 약간은 부자연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기계음은 아니다.

두 살 때부터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아온 나가히로 마사토 씨(26)의 목소리다.

외부 활동이 쉽지 않은 나가히로 씨는 도쿄 미나토구의 자택에서 컴퓨터를 조작해 로봇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서빙을 한다.

로봇에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카페의 상황을 파악해 손님에게 말을 걸거나 주문을 받고 또 음료를 전달하는 식이다. 나가히로 씨가 말하는 내용은 실시간으로 로봇을 통해 고객들에게 전달된다. 조금 느리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7일까지 한시적으로 일본재단 1층에 마련된 카페 ‘돈(dawn) 버전 베타’의 풍경이다. 발성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경우엔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화를 할 때 사용했던 방식처럼 눈동자를 움직여 자판을 클릭하는 식으로 로봇을 조작하거나 손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원하는 대로 로봇이 움직인다고 해서 ‘분신 로봇’이라고 부른다. 분신로봇 카페는 장애인들이 사회와의 접점을 넓히고 일도 하도록 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행사다.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거동만 가능하면 누구라도 카페에서 일하고 시간당 1000엔 가량의 돈도 벌 수 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빙을 하는 과정에서 손님과 대화하는 등의 교류를 통해 고독감을 털어내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실제로 185명의 장애인이 참여했다. 나가히로 씨만 하더라도 생전 처음해보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나도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혹시 찾는 사람이 없을까 하여 참석자를 사전 예약까지 받았지만 기우였다. 대부분 시간대에 고객들이 모두 찼다. 고객 입장에선 한 시간 단위로 이용 시간을 미리 정하고 네 명 입장이 가능한 티켓 한 장에 6000엔(약 6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등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참석했던 고객들 대부분은 회사 측의 감사 인사에 “오히려 힘을 얻고 간다”고 전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지난 9월 선뜻 이해가 안 되는 식당이 교토에서 문을 열었다. 하루짜리 프로젝트 식당이다. 2017년 9월 도쿄 롯본기에서 시작된 후 교토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행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과 대만에 문을 열기도 했다. 이름부터 주문을 실수하겠다고 당당히 밝힌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인지증, 한국 표현으론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교토 행사의 경우 총 110명의 손님을 응대하는 17명의 치매 환자를 위해 30명의 일반인 스탭들이 참여했다.

깜빡깜빡하다보니 적고 또 적고 확인해도 실수를 연발했다. 그래도 누구 한 명 재촉하거나 따지지 않았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사단법인인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비용 절감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홍보로 젊은 층의 높은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불러왔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동안의 사연을 엮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란 책도 냈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출판(웅진지식하우스)됐다.

이런 행사가 될까 싶지만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 개인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전통 양갱 생산업체인 ‘토라야’에서는 자사의 카페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교토 행사의 경우에도 취지에 공감한 히라이 마키코 씨가 법인에 연락하면서 성사됐다. ‘우리 엄청 꼼꼼하거든요’

2017년 여름 일본에 세워진 회사 이름이다.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평범치 않은 회사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이른바 ‘히키코모리’다. 히키코모리는 여러 이유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청소년들에서 시작된 현상이다. 최근에는 40~50대에서도 히키코모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히키코모리지만 일을 하면서 사회 적응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회사가 ‘우리 엄청 꼼꼼하거든요’다.

히키코모리들이 통상 일반인들에 비해 매우 꼼꼼하다는 점에 착안해 회사 이름을 붙였다. 주 업무 역시 꼼꼼함이 필요한 일로 이뤄져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에 필요한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등을 주로 대행한다. 히키코모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아직까지 회사 경영이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입소문 등이 나면서 점차 일감이 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위의 3개 프로젝트성 사업이 시작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강하게 작용했다.

가령 ‘돈 카페’의 분신로봇을 개발한 요시후지 겐타로 오리연구소 소장(32)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입원한 뒤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거의 3년간을 자신의 방안과 병실에서 천장만 쳐다보며 지냈다. 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고독 속에서 그는 ‘왜 몸은 하나뿐일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해결책을 고민하다 만들어낸 것이 오리히메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을 세상과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연구를 진행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경우에도 주변 지인들의 사례에서 출발했다. ‘우리 엄청 꼼꼼하거든요’ 역시 창업자가 과거 히키코모리 생활로 고통을 받았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보니 비용이 들어 독립적인 운용에는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인터넷 덕에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취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자금 조달이 쉬워졌다. 물론 여전히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취지에 공감해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사업의 목적에 공감한 작가, 만화가 등과 협업해 관련 굿즈 등을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한국보다 많은 장애인들을 생활 속에서 접하게 된다. 한국에 비해 장애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외부 활동이 더 자유로워서다.
한국에서라면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처지라도 일본에서는 외부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서다. 개개인이 힘을 모으고 사회가 이를 지원해서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회가 2019년 일본에서 꼭 배웠으면 하는 부분 중 하나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SEAN Trend] 관광대국 태국, 요트 산업 새 황금알 되나

[홍장원 특파원의 굿모닝 하노이] ‘베트남판 포니’ 빈패스트 자동차 박항서 축구열풍 앞세워 애국 마..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일본서 인기 끄는 ‘메루카리 슈가츠’ 노인들 인생 정리하며 중고물품 ..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중국 명품 소비에 감지되는 변화... 경기 둔화 우려에도 매년 6% 성장..

[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스타벅스 제국 일군 하워드 슐츠 대권 도전선언, 민주당 “트럼..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