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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돋보기]日 대세로 자리잡은 직장인 부업 한 직장으로는 빠듯… 기업들도 부업 허용
기사입력 2018.02.02 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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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에서 근무하는 기타야마 게이치로 씨는 직장이 두 곳이다.

주중 본업은 소프트뱅크의 동영상 제작. 각종 요금제 등 회사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동영상을 만든다. 손 마사요시 회장의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간 동영상을 제작한 적도 있다는 게 기타야마 씨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회사 일에 특별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시작한 것이 친구가 운영하는 간판회사 아르바이트다. ‘회사’라지만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 제작소다. 지난 11월부터 소프트뱅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부업을 허용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물론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용계약서를 정식으로 체결하는 일은 안 된다. 또 업무연관성, 부업의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하는 회사의 심사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짧은 문구와 최소한의 이미지로 표현해야 하는 간판 작업이 동영상 제작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는 기타야마 씨의 설명이 부업 승인 심사를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됐다.

1차 선정 때는 총 130명이 지원했다. 컴퓨터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싶다거나 편의점 알바를 해보겠다는 신청자도 있었다. 물론 사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해 보고 싶다거나, 배우를 하겠다, 대학 등에서 강사로 일해 보고 싶다는 직원들 정도가 심의를 통과했다. 소프트뱅크의 나가사기 겐이치 인사부장은 “부업을 통해 다양한 산업의 장점을 흡수해 사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제도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부업 허용하는 회사들 늘어

부업을 허용하는 회사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전 직원 1만7000명에 달하는 소프트뱅크 규모의 대기업에서 도입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소프트뱅크 외에도 코니카미놀타, 이커머스 회사인 DeNA, 로토제약 등이 부업을 허용하면서 2018년은 일본 기업과 직장인들에겐 부업 원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 공무원들에 대한 부업 허용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나라현 이코마시에서는 3년 이상 근무 직원에 한해 지역공동체 관련성이 인정되면 부업을 허용했다. 작년 8월부터다. 효고현 고베시는 4월부터 일정조건을 충족하면 부업이 가능하다.

일본 정부에서도 부업 확산을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후생노동성에서는 지난해 12월 취업 계약서 기준을 바꿨다. 기존 표준 계약서 등에 들어 있던 ‘부업 금지’란 표현을 뺐다. 원칙적으로는 누구든 부업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신 과로 등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후생노동성에서는 고질적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지방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 정부는 본업에서 얻은 기밀 유출 가능성 등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부업을 허용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기업들 입장에선 마뜩치 않은 부분도 있다. 부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본업에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이단렌에서 정부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업 허용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놓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은 “부업 허용 여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기업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부업 허용은 확산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도입 회사에선 이업종 교류를 통한 창조능력 확대 등 거창한 이유를 내걸었지만 직장인들에겐 드러내놓고 말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서도 번듯한 직함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일본 직장인들의 삶은 하나의 직업만으론 먹고살기 빠듯해지고 있어서다. 직원 평균 연봉 1164만엔(약 1억1640만원)의 소프트뱅크에서 편의점 알바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심해지는 양극화와 고달픈 현실을 반영한다.

일반인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디플레이션 탈출에 목을 거는 일본 정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후 매년 임금을 올렸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상승폭은 날로 줄고 있다. 임금이 늘지 않으니 아베 총리가 나서 올해 임금은 3%를 올려 달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할 지경이 됐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하는 개인소비 통계만 보더라도 지난해의 경우 현재 통계가 나와 있는 11월까지 월간 기준으로 2인 이상 가구의 소비가 전년 동월에 비해 증가한 때는 3번에 불과했다. 인력파견회사 일본인재기구 조사에선 겸업·부업을 하고 싶다는 응답이 51.5%에 달할 정도다.

기업들과 연계해 가불을 대행해 주는 전문 업체만 20곳이 넘어섰다. 가불 전문기업이 개별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해당 기업 직원들의 신청이 있을 경우 월급 내에서 가불을 해주고 대신 일정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관련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소득이 낮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버틸 저축도 없어서다.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방법으로도 활용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스스로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 4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일본은행의 ‘2인 이상 세대별 금융자산 통계’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전무한 ‘저축 제로 세대’도 전체의 30.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을 가불받지 않으면 출퇴근 교통비마저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게 관련 업체들 설명이다. ‘거의 날마다 가불’이란 이름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BANQ에서는 “이용자의 48.6%가 생활비 충당 목적으로 가불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경우 20·30대 이용자가 80%에 달했다.

사는 게 팍팍한 직장인과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키우고 싶은 일본 정부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부업 활성화다.

기업들 역시 못 이기는 척 부업 허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일본기업들 역시 주력 사업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존 사업에선 이미 후발주자들에 치이는 상황이 됐으니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의 가전업체들이 대부분 인프라스트럭처나 자동화솔루션 등으로 업태를 바꾸는 식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정도의 빠른 기술 변화까지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이 결합되면서 인력 수요는 점차 줄고 있다. 강제적인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일본에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직원들이 새로운 일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인생 2모작, 3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부업 활성화를 촉진시킬 것이란 관측이 커지는 이유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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