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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미국이 견제하는 中 민·군융합 전략
기사입력 2018.08.30 08: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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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치(44·가명) 씨를 처음 만난 시점은 2011년 가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베이징 소재 5성급 호텔에서 마케팅·문화사업 부문 사장을 맡고 있었다. 첫 대면 후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대화 중 그는 자신이 10년 넘게 중국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소대에서 근무했다고 소개했다. 군 출신 인사가 갑자기 호화 호텔 사장이 될 수 있었던 연유가 무척 궁금했지만 예의상 묻지 않았다. 그 후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2013년 여름께 쑨 씨는 중국의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컨설턴트 직책이 기재된 명함을 가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무렵 중국의 한 방송사가 개최한 행사에서 중국 유명 연예인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의 모습이 뇌리에 생생하다. 몇 개월 후 그는 다시 중국 지방정부가 지분 참여 방식으로 설립한 행사 대행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그곳에서 열병식 행사 기획, 무기 전시 및 홍보 등 업무를 담당했다. 30대 젊은 나이에 호텔 사장을 하고, 무척 짧은 기간에 연예 기획과 국가급 행사 프로젝트까지 두루 경험한 그는 언제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최근 베이징에서 오랜만에 쑨 씨와 다시 조우했다. 이번에는 무역회사 대표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확실히 주변 지인들을 놀라게 하는 재능을 지녔다. 저녁 식사 도중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취급하는 방위산업 기술과 제품을 해외에 홍보하고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것도 당국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면서 말이다. 쑨 씨는 “지난해부터 드론,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보유한 중국 기업들이 군 관련 정부 사업에 입찰하는 것도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 7년이 지나서야 그를 둘러싼 궁금증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다. 그와 헤어질 무렵 중국의 ‘군민융합(軍民融合·이하 민군융합)’ 프로젝트가 뇌리를 스쳤다.

쑨 씨가 전역할 무렵인 2010년 당시 중국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는 ‘민군융합’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중국 정기간행물인 과학기술논단에는 민군융합의 정의를 ‘국방·군사의 현대화를 위해 경제, 과학기술,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민간과 군대 간 심화된 결합(융합)’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간과 군대가 우수 인재, 첨단기술 등을 공유해 상호 발전하는 모델이다. 민군융합의 방식은 인재 교류에서 시작해 첨단기술의 공동 개발 및 공유로 이어지는 단계별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민군융합의 궁극적인 목적인 ‘군산일체(軍産一體)’다. 우수 인력과 첨단기술이 민간과 군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민군의 선순환 발전을 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은 ‘민군융합’을 국가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제시했다. 당시 시 주석은 “민군융합 전략은 국가의 통일화된 발전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며 “국방과 사회경제, 군용 무기와 민간 기술, 군인과 민간 인재 간 적극적인 교류와 융합을 통해 전방위적인 발전 궤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시진핑 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중앙군민융합발전위원회’라는 별도 조직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쑨 씨는 중국 당국이 민군융합 시범 사업을 펼칠 때 인재 교류 차원에서 민간 영역으로 배치된 인물로 추정된다. 그는 “초기에는 쌍방향 인재 교류가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역 군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업 등 민간 영역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점차 첨단기술을 다루는 기업과 국가급 연구소 간 인적·물적 교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군이 민간기업의 첨단기술을 차용해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민간 기업의 군수 시장 진출을 유도하면서 민군(民軍)의 상호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과학기술논단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민군융합 기업은 500개에 달하고, 2025년께 이들 기업에 투입될 정부 예산은 2513억위안(약 42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참고로 올해 중국의 국방예산 추정치는 1조1039억위안(약 188조5000억원) 정도다.

최근 중국 당국이 큰 관심을 보이는 민간 영역 기술은 인공지능(AI), 드론(무인기), 정밀 레이더 기술 등이다. 이달 초 랴오닝성에서 열린 ‘제4회 중국 민군융합 포럼’에서는 이 같은 중국 당국의 관심사를 반영하듯 민간 업체의 첨단기술이 적용된 100여 종의 최신 방위산업 제품들이 전시됐다. 또 이 행사에는 군 관계자, 해외 박사급 연구원, 기업인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민군융합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이 포럼의 소주제 중 하나가 ‘미·중 무역전쟁과 민군융합 전략의 시사점’이었다는 것이다. 중국 국방 전문 매체 미얼쥔스왕은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를 강하게 비난하며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며 “사실 미국은 단순히 중국이 기술 강국으로 변모하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로 무장된 군사 강국으로 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전쟁을 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안팎에서는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선 중국이 마지막 남은 경쟁국인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위안화의 기축통화 지위와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 국제화’와 ‘군사 굴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중국의 국방 예산은 최근 2년 연속 1조위안을 돌파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핵항공모함, 전략 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 무기 개발과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미국과의 군사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중국의 강군몽(强軍夢·강한 군대의 꿈) 전략의 일환으로 민군융합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무역전쟁에 앞서 중국의 민군융합 전략을 주시해 왔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지식재산권 침해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자국의 첨단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방과 민간 영역(기업) 간 융합을 유도하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선진기술이나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확보한 첨단기술이 군사 영역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ZTE 등에 제재를 가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44개 중국기업과 연구소에 대한 핵심 부품 수출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수출 통제 대상에 추가된 기관은 중국 최대의 미사일 시스템 개발 기업인 중국항천과공집단(CASIC) 산하 연구소, 통신 시스템 제조업체인 HBFEC 등이다. 수출 통제 대상에 오르면 중국은 민수용과 군수용으로 모두 쓰일 수 있는 핵심부품을 미국 기업에서 구매할 수 없게 된다. 과거 ‘군산복합’ 전략으로 군사 최강국이 된 미국이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걸으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6호 (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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