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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포커판 닮은 트럼프-김정은 비핵화 게임 ‘협상 달인’ 두 정상의 치열한 수 읽기
기사입력 2018.06.05 16: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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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드 게임 중에 ‘블랙잭’이라는 것이 있다. 규칙이 쉽고, 전략이 단순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카드 숫자의 합이 21을 넘지 않는 선에서 상대보다 더 높은 수치를 갖게 되면 이기는 게임이다. 21을 넘으면 무조건 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큰 블랙잭 판이 벌어졌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 이야기다. 비핵화와 그에 대한 대가를 논의하는 복잡다단한 외교적 협상의 문제지만, 단순화하면 북한이 핵무기 몇 개를 내놓을 것인가 하는 담판이다.

미국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몇 개인지 나름대로 추정한 수치가 있다. 그 숫자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미국 정보당국 최고위층만 갖고 있는 수치일 것이다.

북한은 이 수치보다는 반드시 많은 수의 핵무기를 공개해야 한다. 미국이 추정하고 있는 핵무기 숫자에 모자라는 수치를 내놓는다면 북한은 여전히 일부 핵무기를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것이고,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향후 미·북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되도록이면 최소한의 핵무기를 내놓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협상 상대인 미국이 기대하지도 않는 수준의 핵무기를 내놓을 이유가 없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를 했다고 인정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북한이 미국의 북한 핵보유 추정치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최소한의 핵무기를 공개하는 게임이다. 특정 수치는 넘어서면서 그 수치에 가까운 최소의 숫자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블랙잭과 닮았다.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수 싸움’이 시작됐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이번 미·북 정상회담은 기존의 정상회담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면서 “모든 조율을 마치고 정상이 만나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밀당’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우호적인 관계라면 서로 자신의 패를 공개하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오랜 세월 불신이 누적된 두 나라는 서로 자신의 패를 숨기고 상대의 패를 파악해야 하는 게임이 시작됐다.



▶미국, 북한 보유한 핵무기 숫자 파악에 분주

우선 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알아내기 위한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실제 핵보유 수치를 알아야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추정하고 있는 북한 핵보유 수치가 얼마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정보전에 몰두 중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추정치만 알아낸다면 북한은 손쉽게 비핵화 협상에 응할 수 있다.

북한의 두 번째 노력은 미국의 추정치를 낮추기 위한 연막작전이다.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이 많지 않고 완성한 핵무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에 강경파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북한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볼턴은 북한이 상당한 숫자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5월 16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볼턴 보좌관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북한의 세 번째 노력은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록 북한이 미국의 예상과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의 핵무기 보유 현황을 내놓더라도 이것이 전부라고 믿도록 하는 작전이다. 북한이 먼저 나서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자처하고 앞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등이 진정성을 증명하려는 작전의 일환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도 진정성을 피력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현황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함께 북한이 스스로 최대한의 핵무기를 공개하도록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틈날 때마다 ‘철저한 사찰과 검증’을 거론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최대한의 핵무기를 공개하도록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미국과 국제 핵 전문가들의 사찰 및 검증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북한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북한이 얼마든지 핵무기를 숨길 수 있다”고 바람을 잡는 것도 북한 스스로 더 많은 핵무기를 내놓으라는 우회적 압박이다.
북한이 충분한 수준의, 또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핵무기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 제재를 결코 완화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제재와 압박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위협을 가하는 것도 북한으로 하여금 더 많은 핵무기를 공개하도록 재촉하는 취지다. 장기집권이 가능한 독재자, 벼랑 끝 전술의 달인 김정은 위원장과 스스로 협상의 대가라고 자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대결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펼쳐진다. 이들의 수 싸움에 한반도의 명운이 달려있어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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