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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사학스캔들·재무성 문서위조 악재 사임 위기 내몰린 아베 총리
기사입력 2018.05.11 11:04:11 | 최종수정 2018.05.11 11: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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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가자들은 아베 신조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제가 기억하는 한 OO한 적은 없습니다.”

요새 일본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사학스캔들 관련 의혹이 불거진 야나세 다다오 전 총리 비서관이 사실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말에 답하는 과정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주변 정황상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부인을 위해 내놓은 궁색한 변명이 아베 신조 총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야나세 전 비서관이 사학스캔들의 한 축인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을 관련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총리가 챙기는 안건’이라고 말했다는 문건이 4월 초에 공개됐다. 문건에 등장하는 회의 동석자들 사이에서도 ‘총리안건’이란 발언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는 “제가 기억하는 한”이란 말 뒤에 숨어 버렸다. 저녁 술자리에 동석한 여기자가 취재 관련 질문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성희롱 발언을 해 문제가 된 재무차관도 음성파일까지 공개됐지만 “기억이 없다”며 잡아떼고 있다.

사학스캔들과 재무성 문서위조, 재무차관의 성희롱 스캔들, 남수단·이라크 파견 자위대 일보 은폐.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앞에 악재가 불거지고 있다. 지지율도 급전직하해 정권교체 위험수위라는 30%에 근접하고 있다. 아베 총리를 관방장관에 기용하며 정치적 위상을 키워 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까지 나서 “(9월 자민당 총재선거) 3선은 어려울 것”이라며 “6월에는 물러나지 않겠느냐”란 말까지 공공연하게 할 정도다.

오늘 아베 총리가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을 형국이다. 2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아베 1강 체제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아베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모리토모학원과 가케학원 스캔들이 도화선이다. 사학재단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 총리와의 인맥이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가 논란거리다. 모리토모학원은 초등학교 부지를 헐값에 사들였고 가케학원은 대학에 수의학부를 신설 허가를 받았다. 모리토모학원은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와의 인맥을 활용했고, 가케학원은 아베 총리와 40년 지기인 이사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것이 의혹 핵심이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응만 잘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까지 안 왔을 것이란 게 대체적 평가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나나 부인이 관여한 증거가 나오면 총리직과 의원직을 바로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한 게 화를 키웠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으니 문서를 조작해야 했고, 답변은 애매해졌다. 여기에 기존 답변을 뒤집는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신뢰성에 타격을 입고 있는 것.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인격을 믿을 수 없어서’라는 반응이 가장 많은 것도 이런 사정들이 영향을 끼쳤다.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에 주변의 우려에도 추진한 일들도 독이 돼서 돌아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베 총리를 변호해 주던 보수 언론 등의 분노를 불러온 방송법 개정 움직임이다.

일본의 민영방송 시사 프로그램 단골 메뉴가 아베 총리와 스캔들이다. 방송 내용이 긍정적일 리 없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왔던 아베 총리는 장기적으로 지상파와 인터넷방송 사이의 구분을 없애겠다는 취지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로 가짜뉴스(Fake News)를 비판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아예 언론 환경 자체를 바꿀 생각인 셈이다.

법안의 대상인 일본의 지상파는 모두 5대 전국지의 자회사다. 이중 요미우리와 산케이 등은 절대적인 우군이었다. 그러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방송의 영향력과 경영에 악영향을 줄 방송법 개정 추진이 이들을 자극했다. 결국 아베 총리가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 발언 수위를 낮췄지만 보수 언론의 의심스러운 눈길은 그대로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의 총재 재선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보수 언론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쯤이라면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3연임은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한국인의 눈에는 그렇다. 일본인의 답변은 그래도 아베 총리가 3연임을 하지 않겠느냐란 쪽이 대부분이다.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쪽에서 60~70%는 3연임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쪽에선 3연임 가능성을 80~90%로 본다. 현실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감과 대안 부재란 인식 때문이다. 특히나 북핵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은 ‘대안 부재’ 프레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엔 현실 정치공학도 한몫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자민당원만 참여하며 그중에서도 국회의원들의 표심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원들의 표심을 결정하는 것이 파벌이다. 현재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 소속 의원이 94명,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가 59명이다.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니카이파가 44명이다. 3개 파벌만 합해도 전체 자민당 소속 중·참의원 331명의 절반을 넘는 197명이다. 물론 아소파와 니카이파가 9월 선거까지 아베 총리를 지지할지는 미지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게 대개의 관측이다. 게다가 참원 의원 절반은 내년 6월 선거를 치러야 한다. 아베 총리가 낙마할 경우 차기 총재이자 총리는 정치력 부족 등으로 1년 내의 단명 정권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내년 선거에 나서는 여당 의원들 입장에선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아베 총리에 대한 비난이 자민당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여당 의원들이 총리 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총리 문제일 뿐이란 것이다.

일본 정가와 언론에서 정권교체를 전망할 때 자주 등장하는 ‘아오키 법칙’이란 것이 있다. 참의원의 맹주란 별명을 얻었던 아오키 미키오 전 참원 의원회장이 만든 가설이다. 총리와 자민당의 지지율을 합해 50% 이하로 떨어지면 총리가 교체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직전 대부분의 총리 퇴진 시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가설이다. 아오키 법칙에 따르면 아베 총리에겐 아직 여유가 있다.
가장 최근에 조사가 이뤄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선 아베 내각 지지율과 자민당 지지율은 각각 31%와 32%였다. 12%포인트의 여유가 있는 셈. 9월까지는 아직 4개월가량이 남아 있다. 과연 아베 총리가 벼랑 끝을 걷는 현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2호 (2018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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