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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메이지 150주년에 ‘교육유신’ 나서는 아베정부
기사입력 2018.04.04 14: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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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0일. 도쿄에서도 명문 여고로 꼽히는 게이오여고 입학시험장. 입시 학원 관계자들이 나와 학생들을 응원하면서 한국의 대입 시험장 못지않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매년 벌어지는 일이지만 올해엔 긴장감이 더 높았다. 현장에서 만난 아키타 가즈야 와세다아카데미 강사는 “명문고 선호가 뚜렷해진 올해는 수험생들의 부담이 여느 해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올해 고등학교 입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치러야 하는 2020년도 기존 센터시험(수능에 해당)이 ‘대학입학공통테스트’로 바뀌기 때문이다.

# 3월 9일. “대학입학공통테스트에서 영어 점수는 입시에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대학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0년 입시와 관련된 정책을 일부 공개했다. 가장 논란을 부른 것은 영어다. 2020년부터 변경되는 대입에서는 영어시험을 토익이나 일본영어검정협회 시험인 ‘에이켄’ 등 민간 테스트로 일부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읽기, 듣기 평가 외에 쓰기와 말하기 능력 평가를 자체 개발 대신 민간시험을 활용하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최고 명문대부터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요즘 일본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의 최고 화두는 2020년 대학입시 개편이다. 시험 방식이나 교과과정이 찔끔 바뀌는 정도가 아니다. 교육과정과 대학입시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는 개혁이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에선 ‘교육유신’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교육개혁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변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과거의 축적된 지식을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20세기형 교육으로는 21세기형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 불가능한 능력의 핵심을 사고·판단·표현력으로 잡고 이를 길러주고 평가하는 방법을 교육과정 전반에 도입하자는 목표다.

교육 현장이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가, 특히 대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서 대입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치르는 2020년도 공통테스트에선 국어와 수학에 논술형 문제가 도입된다. 영어시험은 말하기와 쓰기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2023년도 입시에서는 국어와 수학 외에 나머지 27개 시험과목에 대해서도 논술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식을 평가하는 것보다 종합적인 사고, 판단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통해 학교에서도 관련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에 처음 실시된 모의 시험 국어과목에선 주자창 이용 약관과 몇 가지 제약 조건 등을 제시한 뒤에 이를 근거로 주자창 업체와 이용료 협상 등에 내세울 논리를 제시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시나 소설에 대한 감상을 묻던 현재와는 지문의 성격도 문제 유형도 달라졌다. 전 과목에 논술 도입이 검토되는 2023년도 입시 이후에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대학 입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게 일본 문부과학성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힘도 적극적으로 빌리는 파격적인 변화도 도입키로 했다. 영어는 2020년도 민간시험의 말하기 쓰기를 도입하고 2023년엔 아예 민간의 테스트로 대체한다. 또 국어와 수학의 논술 채점 역시 민간회사에 위탁한 뒤 대학입시를 총괄하는 정부기구인 ‘대학입시센터’에서는 최종 확인만 하는 식이다. 논술 평가에 대한 논란 등을 고려해 일단은 5단계 등급으로 채점이 이뤄진다. 영어시험의 경우엔 공평한 기회 제공 차원에서 대입을 치르는 해의 4~12월 기간 중에 2번까지 시험을 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시험제도 외에도 2020년엔 초등학교, 2021년과 2022년엔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새로운 학습지도요강이 적용된다. 대략 10년에 한번 단위로 바뀌는 학습지도요강은 교사와 교과서의 기본적인 방향성을 설정하는 개정이다.

이번 개정에서 손이 많이 간 부분은 수업의 변화다. 지금까지는 ‘지식의 양’을 늘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이제는 ‘지식을 활용하는 힘’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개정을 지휘하고 있는 문부과학성과 문부상 자문기구인 ‘중앙교육심의회’에선 “주체적인 토론형 수업을 강화해 심도 깊은 수업의 현실화를 위한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체적인 교육과정 개혁과 함께 해외의 교육체계도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위스의 교육재단인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가 관리하는 과정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IB에서는 토론을 중시한다. 일본 정부에선 2015년부터 공교육에서도 이를 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취지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급격한 변화다 보니 수험생과 가족들, 일선 학교와 교육계 등에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학부모 입장에선 불안감에 ‘일단 입시교육에 강한 명문 고등학교에 넣고 보자’는 심리도 강해지고 있다. 영어의 경우 초등학생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벌써 말하기, 쓰기 전문 과정 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원만 더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시험 변별력이 더 낮아질 것이다’ 등의 비판들도 쏟아지고 있다.

또 민간 업자에 채점을 맡긴다는 구상도 평가의 공정성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해 명문 교토대학과 오사카대학의 논술식 시험에서 채점 오류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평가 과정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교육과정 개혁의 경우 교수방법 개발 및 교원 연수 등에 상당한 예산이 필요해 결국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교육과정의 변화로 우경화 교육이 강화될 것이란 점도 문제다. 고등학생의 경우 2022년부터 적용되는 새 교육과정에선 역사 및 영토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공공 과목이 필수가 된다. 일본 우익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대폭 반영된다.

적지 않은 진통을 불러오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시대변화에 맞춰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

시모무라 하쿠분 중의원 의원(전 문부과학상)은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20세기 교육에 머물러서는 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일본 교육개혁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2년 말 출범한 2차 아베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 겸 교육재생담당대신을 맡으며 교육개혁안 마련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이 시대에 맞는 인재상을 정의하고 각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 체계 전체를 아우르는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바뀐 대학입시 환경도 한몫했다. 인구가 줄면서 사립대 40%가 정원미달일 정도로 일본의 대학은 만성적인 입학생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 입시제도 다변화 등으로 우리의 입학사정관제와 비슷한 AO(입학처)전형 등이 확대되면서 시험 성적 없이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도 점차 늘었다. 어떻게 점수를 공정하게 매길까에 방점을 찍는 교육개혁의 의미가 날로 사라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올여름 수능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수능 절대평가 등의 논란으로 당초 발표 시점인 작년 여름에서 1년 늦춰진 것이다. 변화된 시대에 맞춘 근본적 교육 개혁에 대한 고민 없이는 수년 단위로 반복되는 혼선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교육개혁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길 권하는 이유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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