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스마트 가전 시대 주목받는 하이얼 카피캣 벗어나 삼성전자에 도전장
기사입력 2018.04.04 14:43:3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중국 대표 가전회사인 하이얼에 정통한 인사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다. 2015년 1월 하이얼 전략기획실에서는 장루이민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모여 삼성전자, LG전자의 ‘스마트 가전’ 전략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대표 기업들이 어떻게 스마트 가전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예상을 곁들인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장 회장은 “그동안 품질로 승부를 걸어왔던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며 “스마트 가전 나아가 스마트홈 시장에서 우리가 글로벌 선두로 올라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글로벌 전자업계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곧 보편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집에 있는 모든 생활가전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스마트 홈’ 전략 구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발전 순서상 인터넷과 생활가전 간 융합이 첫걸음이고, 그 다음이 스마트홈을 의미하는 지능형 가전과 집 간의 연결이다. 이날 회의 자리에서 장 회장은 삼성전자 가전제품의 사진이 담긴 슬라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경영철학인 ‘시엔난허우이(先難後易)’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스마트 가전 시대에서는 삼성을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시엔난허우이는 ‘어려운 일을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쉬운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는 1991년 하이얼 회장으로 추대된 이후 ▲품질 경영 ▲해외 진출 ▲글로벌 가전 선두그룹 진입 ▲새로운 시장분야 개척 등 4단계 전략을 ‘어려운 일’로 정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장 회장의 추진력에 힘입어 1984년 중국 칭다오의 작은 냉장고 공장으로 출발한 하이얼은 창립 30여 년 만에 4대 난제를 모두 해결하며 중저가 카피캣(모방꾼) 이미지를 명품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1985년 ‘망치 사건’은 품질 경영을 최우선으로하는 장 회장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그는 하이얼 전신인 칭다오 냉장고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칭다오 냉장고를 구매한 소비자가 제품 불량을 이유로 항의 전화를 걸어 왔다. 장 회장은 곧바로 창고에 보관 중이던 냉장고 400대를 대상으로 긴급 점검을 실시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400대 가운데 무려 76대에서 하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전 직원을 창고 앞에 집결시켰다. 이어 쇠망치를 들고 불량 냉장고를 모두 내리쳤다.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충격 요법’을 쓴 것이다. 그는 “오늘은 불량품 76대에 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같은 안이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면 내일은 760대, 모레는 7600대의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외쳤다는 후문이다. 중국 당국은 장 회장의 쇠망치를 ‘국가문물 092호’로 지정해 현재 중국 국가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망치 사건 이후 장 회장의 품질경영 철학은 생산 공정에 녹아들어가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988년 하이얼은 국가가 공인하는 냉장고 부문 1위 업체로 선정됐고, 1990년에는 중국 당국이 최고 품질관리 기업에게 수여하는 ‘국가질량관리상’을 받았다. 이 무렵 하이얼은 냉장고 부문에서 국내 시장점유율이 0.2%에서 21%로 수직상승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중국 냉장고 시장을 장악한 하이얼은 1990년대 초반부터 ‘다원화 전략’을 펼쳤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TV, 에어컨, 세탁기 등 모든 생활가전으로 사업 외연을 넓힌 것이다. 이미 냉장고로 중국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하이얼은 다른 생활가전 부문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1998년 하이얼은 중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2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 회장은 품질 경영에 이어 다음 스텝인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 회장은 1999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지금 잘 나간다고 안주하면 안 된다”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해외 유수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며 ‘국제화 전략’을 역설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중국 전통 가전시장은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있었다. 또 하이얼은 이미 중국 시장에서 선두 그룹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장 회장의 구상이 마음에 와닿지 않은 직원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장 회장은 더욱 빈번하게 독일, 일본 등 기술 선진국을 방문하며 새로운 가전 시대의 도래를 예상했다. 공장장 출신답게 독일산 등 가전제품을 직접 가져와 분해하며 엔지니어들과 제품 개선을 위한 현장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10년간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는 분명한 결실로 돌아왔다. 2009년 하이얼은 백색가전 부문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이후 2017년까지 9년 연속 이 부문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이얼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백색가전 시장에서 하이얼의 점유율은 10.5%를 기록했다. 나아가 작년 전체 매출 2419억위안(41조원) 가운데 42%가 해외 시장에서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눈부신 성과에는 ‘해외 기업 인수’가 큰 힘을 보탰다. 하이얼은 2011년 일본 파나소닉으로부터 산요(Sanyo)를 사들였고, 2016년에는 ‘미국 가전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부문을 전격 인수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좀처럼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 하이얼에 정통한 인사는 장 회장에 대해 “백색 가전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발빠른 추격자)’로 거둔 성과에 만족을 못하는 것 같았다”며 “게임의 룰이 새롭게 바뀌는 스마트 가전 시대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되기 위한 고민이 계속 이어졌다”고 전했다. 장 회장은 GE 가전 부문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할 2014년 말 본사 R&D(연구개발)센터에 ‘지능형 가전’ 연구를 지시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하이얼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16’에서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냉장고를 선보였다. 같은 날 지능형 냉장고인 ‘스마트 패밀리 허브 냉장고’를 공개한 삼성전자에게 제대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같은 해 하이얼은 스마트홈 플랫폼인 ‘U+ 스마트 라이프’와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인 ‘코스모플랫(COSMOPlat)’ 등 지능형 제어 시스템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스마트 가전 소비·생산시대를 열었다.

올해 3월 열린 세계 3대 가전박람회 ‘상하이 가전 엑스포’에서 하이얼은 로봇집사 등 최신 지능형 제품들을 선보이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빠진 행사장을 홀로 메웠다. 스마트 제조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코스모플랫은 ‘인단합일(人單合一)’ 관리방식을 접목시켜 개발한 스마트 제조 플랫폼이다.
인단합일은 직원과 고객의 주문을 하나로 묶는다는 뜻으로 주문, 생산, 물류 등 전 공정의 자동화를 의미한다. 코스모플랫에서는 여기에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시켜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장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스마트 가전 시대의 막이 올랐다”며 “과거 하이얼은 해외 선진기술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표준이 돼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인혁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월가에 부는 CEO 세대교체 바람 JP모건, 다이먼 아성에 50대 후..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메이지 150주년에 ‘교육유신’ 나서는 아베정부

[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스마트 가전 시대 주목받는 하이얼 카피캣 벗어나 삼성전자에 도전장

[강계만 기자의 Blue House Diary] 한반도 운명의 봄… 北 비핵화·평화협정 일괄 타결? 북미대화 불발 ..

[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아마존 쇼크’에 휘청거리는 일본 유통업 의류·신선식품·헬스케어 시..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