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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혁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인플레 신호에 떠는 미국 증시…“연준 금리인상 속도 빨라질라” 재정적자 겹쳐 ‘베어마켓’ 경고등
기사입력 2018.03.09 11: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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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까지 무섭게 치고 올랐던 미국 증시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평온했던 미국 증시가 지난 2월 초에 급락세로 돌아선 계기는 ‘임금인상발 인플레이션 신호’였다. 1월 시간당 임금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2.9% 올라 8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고 이는 국채금리 상승을 자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채권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8% 선으로 올라서면서 4년래 최고 수준을 보였다. 미국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2월 2일과 5일에 이어 8일(현지시간) 또다시 곤두박질치면서 조정기(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에 진입했다. 1월 26일 고점(2만6616.71) 대비 10.4%의 하락률을 기록하면서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미 월가에선 “한동안 잠잠했던 미 증시에 극심한 변동성이 되돌아왔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미 실업률이 4.1%까지 떨어지는 완전고용 수준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물가 상승세가 미약해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 드디어 임금상승 신호가 포착되면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예기치 못한 금리인상은 기업들의 이자부담을 키우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연준은 올해 세 차례 금리인상을 예고했지만 4회 인상을 점치는 월가 전문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선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글로벌리서치 대표는 “금리인상 우려와 재정적자 부담이 시장을 억누르는 두마리 곰”이라며 “시장에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속도가 빨라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대표는 “연준 목표치(2%)를 하회하는 낮은 인플레이션이 오랫동안 지속돼 연준을 고민스럽게 만들었지만 마침내 임금상승세가 고개를 들었다. 올해 미 실업률이 3%대로 떨어질 것임을 감안하면 노동시장의 수급은 더욱 빡빡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경제 호조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고 약달러로 인한 미 수입물가 상승 가능성도 물가 상승을 자극할 요인이다.

해리스 대표는 “올해 연준의 금리인상 횟수를 아직까지 3회로 유지하고 있지만 추가 물가상승 신호가 나타나면 4회로 상향 조정할 수 있다”며 “올해와 내년에 걸쳐 6회 인상을 전망한다”고 말했다. 현재 1.25~1.5%에 달하는 미 기준금리가 내년 말이면 2.75~3%로 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유동성을 조이는 장치는 금리인상만 있는 게 아니다. 해리스 대표는 “미 연준이 4조5000억달러(약 4890조원)에 달하는 보유자산 축소를 작년 10월부터 개시했다”면서 “연평균 4000억달러씩 4년에 걸쳐 1조5000억달러의 자산을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의 재투자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월가의 예상대로 진행되면 2021년 연준 보유자산이 3조달러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연준의 국채 보유물량 축소는 국채가격을 떨어뜨리는(국채금리를 올리는) 영향을 준다.

올해 초 ‘채권왕’ 빌 그로스는 채권시장의 약세장을 선언했고 ‘신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흐는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지난해 고점인 2.63%를 돌파하면서 연내 3.25%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리엔 티머 피델리티 글로벌 매크로 담당 전무는 “이번 증시 폭락은 금리 문제”라며 “주식시장이 마침내 채권금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매매와 ETN이 변동성 가중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신호는 2월 14일(현지시간)에도 포착됐다. 미 노동부는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 대비 0.5% 올랐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0.3%)를 웃도는 것으로 미국이 인플레이션 흐름을 타고 있다는 증거로 인식됐다. 지난해 동월 대비로는 2.1% 올랐다.

미 증시 폭락을 초래한건 인플레이션 우려였지만 시장의 변동성을 키운 재료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프로그램 매매’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증시의 변동성을 한층 키운 상장지수증권(ETN)과 프로그램 매물 부담에 대해 시장 참가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소위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가 30을 찍으면 기계적으로 매도가 이뤄지는 프로그램 매매로 인해 지난 2월 5일 장 막판에 증시 낙폭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변동성에 대한 매도포지션을 취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거둔 ETN의 조기 청산 사례를 지적한 것이다.

마르코 콜라노빅 JP모건 투자전략가도 “자동설정에 의한 기계적인 투자 방식이 미 증시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로 프로그램 매매는 시장 유동성이 양호한 장 막판에 실행되도록 설정된다. 이 때문에 뉴욕 증시 마감을 앞두고 급락세를 연출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8개월간 미 증시가 유례없이 낮은 변동성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2% 이상 하락한 날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2016년에는 5번, 2014년에는 4번, 2011년에는 21번을 경험했다. 지난해 미 증시가 이례적으로 고요했던 셈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최근 ‘폴리티코머니’와 인터뷰하면서 “지난 며칠간 보여준 미 증시의 급변동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미 증시가 오랫동안 별다른 조정 없이 빠른 오름세를 지속했다는 게 놀랄 일이었다”고 진단했다. 엘 에리언 자문은 “지난해 우리는 역대 최저 수준의 낮은 변동성을 목격했다”면서 “이제 기술적인 조정 국면을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수직 하강을 경험했다고 해서 미 경제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다는걸 나타내는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예상보다 높은 임금 상승률에 미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는 건강한 경제라는 걸 보여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미 월가에선 기업들의 탄탄한 실적과 견고한 미국 경제를 감안할 때 지금의 조정기가 크게 우려스럽지 않다는 낙관론이 적지 않지만 당분간 아찔한 변동성 장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꼽히는 브리지워터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새로운 변동성 시대로 들어서고 있으며 더 큰 폭락을 경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밥 프린스 브리지워터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FT에 “오랜 기간 시장이 자기과신에 빠져 안주했다”며 “아마도 더 큰 폭락이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 통화완화 정책을 오랫동안 고수해 왔고 이로 인해 전례 없는 과잉 유동성이 시장에 유입됐다. 이는 세계 증시뿐 아니라 채권, 부동산 등 여러 자산가격을 부풀렸고 거품(버블)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프린스 CIO는 “세계 경제가 성장 사이클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으며 금리인상 전망이 변화할 경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이 가시화하면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새로운 변동성 국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프린스 CIO는 “증시가 바닥을 보기 전까지 저점 매수 전략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0호 (2018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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