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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미술, 시장이 아는 미술 ⑥ “다시 문 연 박물관, 새롭게 지정된 국보·보물의 향연”
기사입력 2020.07.31 15: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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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오랜 휴관을 뒤로하고 지난 7월 22일 다시 개관했다. 지난 2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휴관한 후 5월 말부터 다시 휴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건 오로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그동안 박물관 주변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삼삼오오 박물관을 찾던 어린 아이와 학생들, 가족들 대신 휑한 바람이 공간을 채웠다.

재개관을 맞아 마련한 첫 전시회는 ‘새 보물 납시었네-신국보보물전 2017~2019’다.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새롭게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중 이동이 어려운 건축 문화재와 중량이 무거운 문화재를 제외한 83건, 196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국보와 보물을 공개하는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전시는 ‘역사를 지키다’ ‘예술을 펼치다’ ‘염원을 담다’ 등 3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김홍도가 1801년 57세의 나이에 그린 <삼공불환도>(보물 제2000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국보 제151-3호),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보물 제1951호), 김득신의 <풍속도 화첩>(보물 제1987호), 신윤복의 <미인도>(보물 1973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 등 국보와 보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미술시리즈는 다시금 관객을 맞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아울러 해외에서 돌아온 문화재와 아직도 환수되지 못한 문화재에 대한 아쉬움을 논한다. 우리의 문화와 함께 한여름 더위를 이겨내시길….

미술 시장의 선순환, 문화재 환수

글 김준선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고미술에 있어 ‘문화재 환수’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문화재 약탈의 아픔이 큰 우리에게 환수는 특히나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늘 신문지상 1면을 장식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두가 되는 환수 문화재. 이 달엔 이 부분에 있어 미술 시장의 선순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문화재 환수라 하면 약탈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실제 미술 시장에서 일하다 보면 100% 강탈에 의해 문화재가 반출되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시기 조선에 머물던 외국인 관료나 기업인들이 하사품으로 받아간 경우도 적지 않으며, 그보다 더 이른 시기 국외로 흘러간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지금처럼 문화재 보호법이 정립되지 않은 근·현대 시기, 재외교포들의 애장품으로 반출된 문화재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유물들이 경매 시장에 ‘환수 문화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데, 그 중 작품의 중요도나 그 스토리가 흥미로운 몇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해상군선도 서울옥션128회 미술품 경매, 6억6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도교의 여러 신선들을 10폭에 나눠 그린 <해상군선도>

2013년 현대화가 득세이던 가운데 조선시대 병풍 한 점이 메이저 경매의 대미를 장식했다. 당시 주춤하던 고미술 시장의 큰 화젯거리였던 이 작품은 도교의 여러 신선들을 10폭에 나눠 그린 <해상군선도>라는 그림이다. 총 12명의 신선이 시동 등 열댓 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는 장면으로, 도교의 여선(女仙)인 서왕모의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중앙에 배치한 신선들 주위로 높은 산과 계곡, 구름을 배경으로 두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 그림은 모본이 되는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바로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로, 병풍의 각 폭이 분리되어 있는 점이나 배경 묘사에는 차이가 있으나 신선의 형태가 동일해 두 작품 간의 영향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홍도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는 이 그림은 과연 우리나라가 아닌 어디에서 들어왔을까. 그 출처는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경매 당시 발간 책자에 소장가 집안의 사진과 편지를 실어 놓을 정도로 그 내력이 잘 남아 있던 이 작품은 1887년, 30살의 나이에 세창양행의 지사장으로 부임한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 olter, 1855~1916, 이하 칼 볼터)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의 창업주를 지낸 그는 1908년 조선을 떠나기 전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으며, 상해에서 얻은 쌍둥이 자매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다섯 형제를 조선에서 낳아 길렀다. 경매 당시 소장자였던 그의 후손에 따르면, 칼 볼터는 왕가와 친밀한 관계로 궁궐에 초대되어 고종과 순종을 직접 뵈었다고 한다. 실제 문헌 기록에서는 1898년, 독일의 황제 빌헬름2세의 친동생인 하인리히 친왕(Prinz Heinrich)이 내한했을 당시 고종황제 알현에 수행을 맡았고, 세창양행이 채광 중이던 당현 금광을 둘러볼 때도 동행했다고 전한다. 또한 외국인으로서 협판(協辦)이라는 벼슬을 지내고 민영익을 구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인 뮐렌도르프(Paul George von Mollendorff)와 긴밀한 관계 속에 사업 확장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당시 그가 정·재계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군선도 단원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일·러 3대국 사이에서 조선의 독립 외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고종은 1883년 독일과 한·독 수호조약을 맺었던 터라 국내에 정착한 독일인들에게 우호적이었는데,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외교권 박탈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칼 볼터에게 이 병풍을 하사했다고 전하고 있다. 1916년 볼터가 죽고 이를 상속 받은 둘째 딸 매리언 볼터(Marion Wolter)는 훗날 환수에 힘써준 딸 바바라 미셸 예거후버에게 유년 시절을 보낸 대한제국을 추억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예거후버 여사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얼룩진 혼란한 시기에도 작품을 고스란히 지켜냈다. 본래 1950년대 초 본국으로 돌려보내려는 1차 시도가 있었으나 당시 한국 전쟁으로 어지러운 국내 정세를 감안, 91세를 맞이해서야 드디어 고종에게 하사 받은 그대로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로 전송된 그녀의 편지에는 자세한 소장 경위뿐 아니라 작품이 고국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염원과 애정이 가득하며, 실제 경매에서는 경합 끝에 시작가의 2배가 넘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면암 최익현 초상 석지 채용신 서울옥션 142회 미술품 경매, 9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조선의 마지막 초상화가 석지 채용신의 〈면암 최익현 초상〉

2016년 말, 그 해의 마지막을 장식한 12월 경매에 <귀환(歸還)>이라는 기획 섹션이 마련되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네 그림이 모두 이 귀환에 속한 작품들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환수된 문화재이다.

조선은 500여 점에 달하는 초상화가 남아 있어 기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무엇보다 피부질환까지 세세히 묘사하는 리얼리즘이 의학 분야에서도 활용되는 등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석지 채용신은 조선의 마지막 초상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채용신은 조선의 전통적인 초상기법을 이어 받으면서도 근대기 서양식 입체화법을 가미해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했는데, 왕의 어진뿐 아니라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그렸으며 1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초상 작품들은 여러 박물관과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익현 초상 석지 채용신 보물 제1510호, 190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중 출품작과 같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 인물들의 초상도 남아 있어 흥미롭다. 이 초상의 주인공은 바로 구한말 독립 운동가이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이다.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는 자를 수 없다.” 그가 남긴 말처럼, 최익현은 열악한 국가 재정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편에 서 경복궁 중건에 반대하며 흥선대원군과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을사오적의 처단을 외치며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하는 등 강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행적들이 여럿 전해지고 있다. 1905년 채용신이 그린 반신상의 최익현 초상이 보물 제1510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출품작의 경우 보물과 달리 전신상에 관복을 걸친 모습으로 우측 상단에 ‘면암선생74세’, 즉 1905년에 그렸으나 을축년인 1925년에 다시 임모했음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작품은 미국 LA에 소장되어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실존 인물의 초상이자 기록화의 한 대목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 환수된 셈이다.

행려풍속도 화산관 이명기, 서울옥션 142회 미술품 경매, 6억4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조선후기 궁중화원 화산관 이명기의 〈행려풍속도〉

이번에는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이 반출되어 있는 일본에서 들어온 작품을 한 점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오사카에 소장되어 있다 본국으로 돌아온 이 병풍은 조선 후기 궁중화원 화산관 이명기의 <행려풍속도>이다. 이명기는 단원 김홍도와 동시대 활동했던 인물로, 단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춰 여러 명작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수량이 궁중 기록화에 참여한 것을 제하고는 전하는 바가 많지 않으며 더욱이 풍속화의 장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료사적으로 귀한 작품 한 점이 경매를 통해 국내에 공개된 셈이다. <행려풍속도>는 선비가 집을 나서 여행을 하며 접하는 생의 여러 장면을 담은 것으로, 삶을 대하는 낙천적인 자세와 토속미가 두드러지는 그림의 소재이다. 이러한 풍속도는 앞서 살펴본 <해상군선도>와 같이 김홍도에 의해 정형화된 모본이 전하며 이는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출품작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총 6폭으로 구성된 병풍에는 나귀를 타고 마을에 들어서는 첫 폭을 시작으로, 농민들이 논에서 김을 매거나 계곡에서 종이를 뜨는 노동의 모습, 반면 선비들은 절벽 아래 폭포에서 풍류를 즐기거나 배를 타고 길을 나서는 모습, 나뭇짐을 지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 등 당시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다. 또한 마지막 폭에는 ‘筆臨團園意 단원 그림의 뜻을 본받아 그리다’라고 남겨 작품 못지않게 중요한 화가들 간의 교유관계를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문화재 환수는 새로운 작가 발굴이나 이미 알려진 작가의 새로운 장르, 색다른 작품의 모색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도 서울옥션 142회 미술품 경매, 6억7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중국 위·촉·오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연의도〉

이번에는 일본 도쿄에서 전해지다 돌아온 <삼국지연의도>이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위·촉·오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 소설을 도해한 것으로, 늘 보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감계를 목적으로 그려진 고사도의 일종이다. 도상이 중국에서 유입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이미 조선 중기부터 등장해 말기까지 꾸준히 남아 있는 편이다. 현대 못지않게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던 장르로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조선 후기부터는 민간에 의해 민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의 경우 대형의 크기에 수준급 실력으로 보아 궁중에서 화원들의 손을 거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삼국지연의도>가 유비, 관우, 장비 세 영웅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반면, 출품작의 경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벌이는 전투의 클라이맥스 만을 골라내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조조가 허저로 인해 목숨을 구하는 장면이나 제천의식 직전의 공명, 그리고 유비가 적로를 타고 유포를 피해 강을 건너는 모습 등은 일반적인 민화나 화가들의 솜씨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대목들로 흥미롭다. 8폭의 각 폭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김새가 모두 다르고 자세나 표정이 생동감 넘치며, 오랜 타지 생활에 세월이 지났음에도 색이 바래거나 훼손됨 없이 완벽한 보존 상태를 지니고 있어 더욱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요계관방지도 서울옥션 142회 미술품 경매, 4억원 낙찰 ⓒ서울옥션



▶숙종의 명으로 제작된 북방지역 지도 〈요계관방지도〉

미국 LA에서 들어온 <요계관방지도>는 1636년 병자호란 이후 효종의 북벌 정책을 이어 받은 숙종의 명으로 제작된 북방지역의 지도이다. 백두산 인근과 만주 지역을 두고 여전히 청나라와의 국경 분쟁이 계속되자 숙종은 1705년 중국에 사신으로 간 비변사 제조 이이명에게 청나라의 지도를 비밀리 입수하게 명했다. 당시 지도는 군사 정보와 안보 위협의 가능성 등으로 지금처럼 일반에게 보급화되어 있지 않았으며 왕실의 기밀품이자 중요한 자료였다.

이후 이이명이 들고 귀국한 몇 가지 문서들을 토대로 조선의 서북쪽 지역과 명에 조공하던 해상해로를 합해 10폭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요계관방지도>이다. 1폭에서 3폭까지는 백두산 인근 지역과 천지의 모습이 보이며, 중앙 4폭부터는 흑룡강부터 산해관을 지나 북경 남쪽 보정부에 이르는 대지에 중국의 만리장성과 성책들을 망루 위에 색색 깃발로 상세히 묘사했다.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당시 조선의 북벌의지와 함께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동여지도와 마찬가지로 선조들의 지리적 이해, 지도에 대한 제작 수준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현재 <요계관방지도> 병풍은 위 작품을 포함해 총 3점이 발굴되었다. 이이명이 숙종에게 올린 어람용이 보물 제1542호로 지정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며, 또 다른 한 점은 3폭이 유실된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워낙 기밀사항이다 보니 제작 당시부터 소량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0폭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2점에 그쳐 희소성이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중 1점이 멀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넘어 왔으니 그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다.

이외에도 비록 경매를 통해서는 새 주인을 찾지 못했으나 우리가 흔히 강화도 조약서라 부르는 ‘조일수호조규’ 한 본 역시 재일교포에 의해 소중히 보관되어 왔으며, 종종 해외경매 사이트에도 우리 문화재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국외소재 문화재재단과 불교 관련 단체 등에 의한 불교문화재 환수의 노력은 해마다 이어지고 있으며, 유물을 구입해 박물관에 기증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의 후원도 눈에 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에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으며 그 반출경로와 소장내역은 각기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재들이 환수되어 들어오는 과정 또한 다양해졌다. 그 중 공개된 미술 시장인 국내외 경매를 통해 저마다의 스토리를 지닌 문화재들이 등장하는 선순환 작용의 비중이 점차 커져가는 만큼 주목해봐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Interview|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박물관 서비스,

이제 직접 확인해보시죠”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휴관 기간이었지만 박물관 직원들은 더 바빴습니다. 그간 준비했던 오프라인 전시나 교육, 행사들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언택트 일상이 되는 상황에 대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거든요. 다시 관람객을 맞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실에서 만난 배기동 관장은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문화·관광업계의 피해를 안타까워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간 언택트 일상에 대해선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생긴 변화가 아니라 팬데믹으로 인해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라며 “문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박물관이 문화의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배기동 관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지인 전곡리 유적 발굴로 국내외 학계에 이름을 알린 고고학자다. 당시 27세의 나이에 총괄소장을 맡아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25년간 발굴을 주도했다. 최근 취임 3주년을 맞은 배 관장은 취임 후 스마트국립박물관을 추진하며 디지털과 온라인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어쩌면 평생 현장에서 지내다 행정가로 옮겨왔듯 오프라인 관람 현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오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스마트박물관은 박물관이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죠. 지난해에 스마트박물관 원년을 선포하고 전담부서를 설치했고,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시관에선 인공지능 로봇이 관람객을 안내하고 3D 스캔 기술로 중요소장품의 원형을 기록해 복원하는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디지털실감영상관을 개관했어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첨단 영상기술로 완성된 콘텐츠를 상영합니다. 4면 영상으로 재현한 고구려 벽화무덤이 실제 유적으로 인도하는 셈이죠.”



▶박물관은 일상의 힐링과 재충전 공간

배 관장은 “박물관은 그저 산책하거나 바람을 쐬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새로운 일상의 첫 시작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관람객의 관심사와 반응을 연구하고 여러 사업을 기획합니다. 전시를 보러오는 것도 좋지만 너른 공간에서 휴식도 취하며 힐링하는 공간으로 찾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각 지역 소속 박물관에도 이러한 환경이 갖춰져 있거든요. 방문하기 이보다 좋은 장소가 없습니다. 직접 올 시간이 없다면 온라인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롭게 올린 영상을 확인해보실 수도 있어요. 지난번에 BTS가 와서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코로나19 영향으로 졸업식을 열지 못한 전 세계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개최한 가상 졸업식)’을 촬영했는데, 그 영상이 현재 2000만 뷰를 넘겼더군요. 아주 놀랐습니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와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에도 고마움을 전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죠. 그동안 우리 관에 여러 번 유물을 구입해 기증해왔습니다. 지난 2014년엔 900년 만에 귀향한 <고려나전경함>을 YFM에서 확보해 기증해주셨어요. 2018년에도 고려시대 불감을 전해주셨습니다.”

배 관장이 추천하는 올 하반기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회는 어떤 기획일까. 그는 우선 ‘새 보물 납시었네-신국보보물전 2017~2019’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만큼 박물관 구성원들이 전시를 위해 땀을 흘렸고, 국보와 보물을 공개하는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국가지정문화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죠. 그야말로 한국 보물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1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인 <평안감사향연도>를 소재로 디지털 전시도 기획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영향으로 유물의 이동이나 해외로의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원작과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특별전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첫 시도인데, 박물관에 적용된 4차 산업혁명 기술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12월에 열리는 ‘고대의 빛깔, 칠기’전도 놓치면 아쉬운 특별전이에요. 매년 전국의 소속 박물관에서 열었던 전시 중 하나를 서울에서 개최하는데 이 전시는 작년에 국립김해박물관에서 개최했던 전시지요. 우리 옻칠의 역사와 우리 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의 칠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오시면 좋은데 코로나 때문에 꼭 예약을 하고 오셔야 합니다. 아니면 한참 기다리실 수도 있거든요. 국립중앙박물관 앱에서 하시면 됩니다. 스마트디지털 시대잖아요.(웃음)”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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