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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0 Part Ⅰ 리뷰 | “기술을 담은 신제품 공급의 시대가 왔다” 허황된 기술로 고객 현혹하던 시대는 끝나
기사입력 2020.01.29 13:58:23 | 최종수정 2020.01.29 14: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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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시대가 왔다’ ‘수면테크·책상 위 텃밭… 세상에 없던 기술이 삶의 동반자가 된다’ ‘CES, 인공지능(AI)으로 통하다’

올해 1월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 CES(Consumer Electric Show)를 다녀온 국내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이다. CES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IT 기업들의 ‘장기자랑대회’ 같은 플랫폼이다. 저마다 자신들의 기술력과 비전이 뛰어나다는 점을 알리면서 이를 통해 자신들의 파트너와 고객들을 넓혀나가는 이벤트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언론들은 CES에서 발표되는 각종 신기술과 신제품들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 기술과 제품이 신기하면 신기할수록 보도횟수는 늘어나고, 보도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참가한 기업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매년 연초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한 해의 어젠다를 선점하듯, CES 역시 IT 기업들이 기술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여론 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CES를 찾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다. 기업들은 CES에 참가하여 새로운 파트너들을 찾기도 한다. CES에서 각종 협업들이 많이 발표되는 이유 또한 CES에 기술 기업들의 CEO들이 대거 참가하기 때문이었다. 요약하면, 기업들이 CES를 찾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자신들의 기술이 가진 우위를 널리 알림으로써,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장이 CES이기 때문이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거대 IT 기업들이 가진 신기술들을 구경할 수 있고, 그 기술을 활용해 미래를 남들보다 빨리 대비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CES를 방문하려 한다. 특히 기업경영에서 기술이 빼어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가 되면서 CES는 최근 수년간 급격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19년 CES 참관자 숫자는 18만 명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CES 참가자 숫자는 미중갈등에다 보이콧CES 운동 등이 겹치면서 17만 명 초반대로 줄어들었다.) 특히 국가 경제 성장에 있어서 기술이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미국 정부에서는 교통부 장관이 직접 올해 CES에 날아오는 일이 연출됐다.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트럼프 대통령의 딸)도 CES에 와서 ‘고용’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등이 대거 참석하면서 CES는 이제 정치인들도 신경 쓰는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단언컨대, 이번 CES는 과거와 다른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뭔가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술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비즈니스’ 기회가 더 강조되고 있었다. 과거처럼 CES에서 협업대상과 MOU를 체결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협업을 발표하는 트렌드는 물 건너갔다. 그래서 놀랄 만한 협업 발표는 없었다. 대신 기업들은 자신이 잘하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고, 무리하여 자신의 기술들을 과시하려 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지난해 CES의 화두였던 폴더블, 5G, 인공지능 등과 다른 올해만의 CES 기술 키워드는 무엇이냐’를 묻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뚜렷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What is Next Big Thing?(다음 차례 기술은 뭐냐?)’이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대신 ‘Anything can be Next(무엇이든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라는 답들이 돌아왔다.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싸움이라는 메시지가 뇌리에 꽂히는 CES 2020이었다.



▶‘공급의 시대’에 각광받는 CES

글로벌 저금리 시대에 돌입한 이후 미국과 일본 등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금리인하로 인해 시중에 수많은 자금이 공급되었고, 더불어 정부 재정지출도 확대되면서 거시경제의 총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호황의 가장 근본적인 원천이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한다. 한마디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기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소비 또는 투자하려 한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벤 버냉키 연준의장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미국은 약 10년간 돈을 시중에 뿌려댔다. ‘공포’를 권력의 원천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장 또한 공포로 (대선을 앞두고) 금리인하를 압박해 왔다. 그 결과 미국을 놓고 봤을 때 거시경제의 총수요는 더 이상 나아질 수 없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려면 총수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급 또한 이를 받쳐줘야만 경제가 성장한다. (공급이 늘어나지 않을 경우 물가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는 공급 또한 늘어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 5G, 퀀텀컴퓨팅, 블록체인, 스마트홈, 스마트시티 등 수년간 CES에서 등장하고 있는 수많은 신기술들 때문이다. CES는 바로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거시경제의 총수요에 발맞춰 경제성장의 또 다른 한 축인 총공급의 증가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주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CES에 새로운 기술이 많이 등장하면 할수록, 세계경제(특히 미국경제)가 나아질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전 세계 경제인들은 그동안 CES를 주목해 왔다. 수요가 팽배하여 공급이 경제성장에 더 큰 변수가 되어버린 지금, 경제에 새로운 공급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기술들이 CES에서 대거 전시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대한민국 CEO들이 CES를 참관하기 위해 날아오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이 된다. 시장의 수요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제품을 공급해 주느냐가 더 중요한 전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CEO들은 ‘신기한’ 것들을 찾아 CES를 방문한다.

이방카 트럼프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전자전시회 CES 2020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있다.



▶2020년 CES를 통해 새롭게 ‘공급’된 신기술들

이런 배경 때문에 매년 CES는 새로운 기술들을 ‘공급’하고 전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를테면 CES 2019에서는 LG전자가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였고, ‘벨(BELL)’랩이 하늘을 나는 전기운송수단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도 많은 IT 기업들이 새로움을 선사하기 위해 전시를 진행했다. 경제에 파급효과가 있는 순서대로 열거하자면 ‘전기차’가 가장 큰 화두였다고 할 수 있다. CES 주최 측인 CTA(전미기술자협회)는 ‘전기차의 10년 시대(Electric Decade)가 열렸다’고 평가할 정도. 소니가 전기차 신제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전기차 회사인 ‘바이튼’이 이번 CES에서 ‘M-Type’이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우버와 현대차는 전기로 날아가는 UAM(도심항공운송수단)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벤츠도 전기로 움직이는 아바타(AVTR)라는 새로운 콘셉트 자동차를 내놓았다. 전기라는 에너지원이 이처럼 대세가 되자, 이미 전기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강자 테슬라의 주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테슬라는 CES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CES가 끝난 뒤 기아차는 11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내놓겠다는 발표를 했다. ‘전기 마차떼 효과(Electric Herding)’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 해동안 전 세계 8800만 대가 팔려나가는 자동차 시장이 이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의 시대로 새로운 공급을 예고하고 있다. 그 본격적 변화가 CES에서 관찰된 것이다. 자동차 시장은 미국만 따지더라도 연간 300조원가량의 대형 시장이다.

다음으로 가장 큰 시장규모를 갖고 있는 신기술은 단연 ‘웨어러블(Wearable)’이다. 애플의 에어팟, 애플워치 및 삼성의 이어버드 등으로 상징되는 웨어러블 시장은 올해 CES에서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다. CTA 측이 이번 CES에 맞춰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웨어러블 시장은 약 31% 정도 매출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는 놀랍지 않은 숫자다. 이미 2019년 웨어러블 시장은 70% 이상의 성장을 북미에서 기록했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에어팟 같은 경우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때 가장 많이 팔린 품목 중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에어팟은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 가로수길 매장에서 판매되는 에어팟의 숫자가 전 세계 2위 매출을 기록할 정도. 이번 CES에서는 델타항공이 전시장에서 승객들의 짐들을 손쉽게 옮길 수 있는 웨어러블 형태의 로봇을 선보였고, 혈압을 측정하는 웨어러블(참케어, 오므론), 통증을 치료하는 웨어러블(헬스리안) 등도 나왔다. P&G는 기저귀에 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제품도 들고 나왔다. 이밖에 스마트스피커(올해 14% 성장예상), 스트리밍 서비스(11%), 스마트홈(4%) 등도 이번 CES에서 주목받은 기술들이었다. 이 영역과 관련이 있는 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CES에서 어떤 기술들이 전시됐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을 듯하다.



▶기업들이 ‘도시’를 논하기 시작했다

CES에서 전시된 ‘신기한’ 것들은 전기차, 웨어러블, 스마트홈, 스트리밍 서비스뿐만이 아니었다. 수면테크, 베이비케어, 인공돼지고기, 복합현실(XR) 등 CES 2020은 ‘신기한 것들’을 모아놓은 박람회장 같았다. 그 중에서도 기자가 가장 놀란 것은 ‘새로운 도시’를 공급하겠다는 도요타의 발상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사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급을 일으키기에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다. 거시경제의 총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 폴 로머 뉴욕대 교수(2018년 노벨상 수상자)가 ‘차터시티’라는 개념을 만들어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CES 개막 하루를 앞둔 6일(현지시간) 도요타자동차의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가 발표한 ‘우븐 시티(Woven City·짜여진 도시)’는 미래모빌리티와 인공지능 등이 함께 융합된 거대한 스마트시티였다. 그 옛날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향인 시즈오카 현에 있는 도요타 공장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21만 평짜리 스마트시티를 건설하겠다는 선언이다. 도요다 사장은 “도요타그룹 미래 방향성은 AI, 모빌리티, 로보틱스, 소재과학,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맞춰져 있다”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각종 실험을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환경에서 진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가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스마트시티를 새로운 경제 활력을 일으키기 위한 거시경제 공급 확대 차원에서 이번 정권이 추진해 왔다. 그러나 도요타처럼 기업과 민간이 중심이 되는 도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부 주도의 세종 부산 스마트시티만 나오고 있다. 도요타가 CES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스마트시티들은 아직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매력발산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CES 2020

냉정하게 말해 이번 CES 2020에서는 과거 인공지능, 블록체인, 퀀텀컴퓨팅처럼 시대를 한꺼번에 뒤바꿀 만한 천지개벽할 혁신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수의 CES 참가자들이 “생각보다 CES 볼 것 없더라”라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기도 했다. 기술만 놓고 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CES에서는 보다 더 중요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기술에만 머무르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기술’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움직임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김현석 CE부문 사장이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 ‘볼리’를 내놓았다. 로봇이라는 대상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기술. 그러나 ‘볼리’를 통해 컨트롤되는 스마트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준비단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인공지능, 5G 등과 같은 첨단기술은 이제 누구나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며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가치 있는 무엇을 만들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CES 2020이 ‘기술전쟁’뿐만 아니라 ‘응용전쟁’이 시작됐다는 선언과도 다름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혁신이 더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CES 2020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샌디 카터 AWS 부사장은 매일경제가 CES 2020과 맞춰 개최한 매경비즈니스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혁신은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무엇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지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카터 부사장은 “카네기멜론 대학팀의 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 CEO들은 시간의 80%를 고객들과 함께 보내는 반면 규모가 큰 대기업은 20%만 고객과 함께 보낸다”며 “그게 대기업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기술도, 기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며,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야 하고, 그로써 인간에게 가치를 주어야만 한다”고 역설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그 기술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우리의 삶 속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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