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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아현지사 화재로 네트워크 먹통, 방재·백업 체계 없어… 예고된 ‘IT 블랙아웃’
기사입력 2019.01.08 10: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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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대한민국은 통신 대란에 빠졌다. KT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불이 나 유선회로 16만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케이블 뭉치 단위)가 소실되면서 서울 서대문 마포 여의도 상암 등 수도권 일대가 마비됐다. 세계 최초 5G 송출을 일주일 앞두고 작은 불씨에 통신 네트워크가 먹통이 됐다.

과거에도 이러한 통신망 화재로 재난에 가까운 사고가 있었다. 1994년 3월 10일 발생한 서울 종로5가 통신구 화재는 서울 시내와 수도권 일대에 무더기 통신 두절 사태를 몰고 왔다. 화재로 지하 통신구 내 광케이블이 타면서 통신선로 32만1000회선이 손상돼 전화 회선은 물론 방송 회선까지 끊겼다.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대구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대구 시내 통신망이 마비됐다. 2000년 2월 18일에는 여의도 전기·통신 공동구에서 불이 나 21일까지 사흘간 통신 장애가 이어졌다.

그런 15년 뒤 똑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사물과 사람, 스마트폰과 PC가 촘촘히 연결되면서 더욱 인터넷 의존도가 심화됐다. 하지만 통신 기반의 중요성이 무색하게 통신 장애에 대한 대비는 여전히 15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초연결 사회에 통신이 없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작은 불씨에 사회가 멈춰 섰다는 공포까지 KT 아현지사 화재는 우리 사회에 통신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통신구는 국가 기반 산업에 준해 관리

통신은 마비되는 순간 인터넷과 통신, 뱅킹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또한 화재에 휩싸이면 즉각 진압이 어렵고 케이블을 일일이 연결해야 해 복구 시간이 길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필요로 한다. 통신구는 국가 기반 산업에 준하게 관리돼야 하지만 실제 관리는 허술했다.

서대문소방서에 따르면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통신구)에 스프링클러가 없고 소화기만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는 현행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등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 설비를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통신구는 통신 케이블을 집중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지하 시설물이다. 전력선, 가스관, 상수도관, 케이블관 등을 모아놓은 공동구와 같은 지하 구조물이다.

이번에 화재가 난 KT 아현지사 통신구도 통신설비가 밀집된 곳이다. 전화선 16만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 개가 밀집돼 있는 중요한 통신시설이다. 그러나 현행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전력 또는 통신사업용 지하구가 500m 이상일 때 스프링클러, 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 설비를 설치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KT 아현지사 지하에 있는 통신구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통신사 관리도 부실했다. 전국 56곳 KT 지사 일부 통신구는 방재시설이 미비해 ‘제2의 KT 아현지사 사태’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지난 8월 KT 송파통신구는 송파소방서가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한 결과 ‘소방시설 등 불량’으로 지적 조치 받았다. 앞서 6월 KT 영등포지사 역전통신구는 소방특별조사 세부조사에서 ‘소화·경보 시설 등 분말 소화기가 내용연수(사용기한)가 초과됐고, 자동확산소화기도 내용연수가 초과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는 전국 단위 서비스에만 백업 체계 갖추도록 규정

통신구의 경우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회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행법과 제도에는 전국 단위 서비스에만 백업 체계를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부는 현재 통신시설과 관련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따라 A·B·C·D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A등급은 수도권·영남권 등 권역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곳이며 B등급은 광역시도, C등급은 3개 이상 시군구에 영향을 미치는 설비로 지정하고 있다. 아현지사는 시군구 범위로 영향이 제한적인 D급으로 평가 받았다.

현재 A~C등급은 통신망 손상 시 백업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이원화돼 있지만 D등급은 의무조항이 없어 대다수가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 D등급에 해당되는 아현지사는 서울의 2개 구 정도에 국한돼 백업 체계가 완성돼 있지 않았다.

정부가 통신시설을 전수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KT 아현지사와 같은 D등급 통신시설의 70%가 지방에 집중됐다. 지역별 D등급 시설 개수를 보면 전라도가 총 148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상도 141곳, 경기도 132곳, 서울 90곳, 강원도 64곳, 부산 60곳, 충청도 56곳 등의 순이었다. 권역별로 보면 부산·대구·울산·경상도가 256곳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인천·경기도(250곳), 광주·전라도(185곳)가 뒤를 이었다. 지방에서는 KT 아현지사처럼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통신시설이 더욱 많다는 얘기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점검을 통해 중요통신시설 등급분류 적정성을 확인하고 우회로 확보 여부, 소방설비 현황 등을 파악해 이달 말까지 ‘통신재난 방지 및 수습대책(가칭)’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통신 인프라 재난 대응책 재정비해야

통신인프라의 재난 대응책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AT&T는 1998년 통신두절 사태 1년 뒤 벨연구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구성, 1년 넘는 기간에 걸쳐 네트워크 복구 매뉴얼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통신시설 ‘A·B·C·D 분류체계’ 재평가를 통해 새롭게 만들고 재분류한 지사별로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와 피해 복구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단순히 화재 방지 시설 확충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과 백업 시스템 마련 등 국가 기간통신망에 걸맞는 ‘플랜B’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진 등 국가적 재난이 많은 일본의 경우 소프트뱅크 등 대형 통신사들이 긴급 무료 와이파이망인 ‘파이브 제로(0) 재팬’을 제공한다. 무선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누구나 ‘00000JAPAN’으로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다.

일본은 비상 와이파이망 외에도 통신 두절이 불러올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촘촘한 매뉴얼과 대응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담당 부처인 총무성에서는 정보통신 네트워크 안전·신뢰성 기준을 통해 긴급 상황 시 대체가 가능한 통신망 확보와 관련한 기준 등을 세부적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박진호 숭실대 교수는 “국가적으로 통신망 이원화 등 백업을 유도하고, 케이블 등이 밀집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기 화재 대책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T 아현지사 사태로 피해를 본 이용자들에 대한 보상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KT는 서비스 장애기간에 따른 이용요금 감면과 함께 영세 소상공인 서비스 장애사실을 접수 받아 이를 근거로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KT는 유무선 가입고객 대상 1개월 이용요금을 감면하기로 했으며, 이번 화재로 소실된 동케이블 기반 유선서비스 가입자에게 최대 6개월치 요금을 감면하기로 했다. 동케이블 기반 인터넷 이용고객은 총 3개월의 요금을 감면하고, 동케이블 기반 일반전화(PSTN) 이용자는 총 6개월의 요금을 감면한다.

감면금액은 최근 3개월(8~10월) 사용요금의 평균치로 산정했으며, 감면기간(1·3·6개월)에 따라 산정요금을 매월 감면하는 방식이다. 요금 감면은 2019년 1월 청구에 적용되는데 동케이블 기반 인터넷 가입자는 2019년 1~3월, 동케이블 기반 일반전화 가입자는 2019년 1~6월 청구에 적용된다. 요금감액 대상자는 홈페이지 및 스마트폰 ‘마이케이티’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드결제 장애 소상공인 보상 관심

초미의 관심사는 주문전화 또는 카드결제 장애로 불편을 겪은 소상공인에 대한 보상이다. KT 약관에는 인터넷 서비스 장애로 인한 1차적 피해 보상은 명시돼 있지만, 서비스 불능으로 인한 2차 피해에 대한 보상 내용은 없다. KT 인터넷·유선 서비스 장애로 인한 2차 피해는 통상적인 보상과 다른 ‘특별 손해’다. 이 경우 손해를 주장하는 쪽이 피해를 입증하고, 손해 발생 사실을 상대방이 알거나 알 수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KT는 피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서비스 장애사실 접수를 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청, 마포구청, 은평구청, 용산구청, 중구청 등과 협의해 오는 26일까지 2주간 해당 관내 주민센터 68개소에 직원을 상주시켜 서비스 장애사실을 신청 받고 있다.

중소신용카드가맹점에 해당하는 연 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은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지참한 후 인근 주민센터에서 장애사실을 접수하면 된다. KT는 접수된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 후 위로금을 지급할 계획이며, 대상자와 지급규모는 개별 통지한다.

[이선희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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