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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전가의 보도’ 무역법 232조가 뭐길래
기사입력 2018.07.12 10: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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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 검토에 착수했다.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수입차에도 최대 25%의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교역국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잇달아 거론하자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

트럼프 행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은 1962년에 처음 제정됐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이 지속되고, 양국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였다. 소련 공산당 제1서기 니키타 흐루쇼프가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던 사건이 터진 것이 바로 1962년이다. 이 법은 군비 경쟁 속에서 공산권의 확장을 막고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무역확장법 제정 당시 미 의회는 대통령에게 관세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입품은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조항이다. 이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냉전 체제가 붕괴된 데다 미국이 자유무역을 지지하면서 사실상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WTO 출범 이후 1999년 원유, 2001년 철강 수입품에 대해 이 법을 근거로 조사에 나선 적은 있지만, 보복 관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까지 미국은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총 26건의 조사를 진행했지만,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수입규제를 시행한 것은 두 건 뿐이다. 16건은 조사 결과 또는 대통령 결정에 따라 해당 품목 수입이 국가 안보를 저해할 위협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1건은 제소자 요청에 따라 조사가 중단됐다. 또 다른 1건은 원유 수입 체제를 개선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번에 발표한 자동차나, 이미 시행에 들어간 철강과 알루미늄처럼 국가 안보를 저해할 위협이 있다고 판단돼 실제 무역 제재를 한 것은 1979년 이란산 원유와 1982년 리바이산 원유 수입 금지 2건에 불과하다. 당시 미국은 이들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한국,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우방들에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우다.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로

지난 4월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고율 관세 부과를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화살은 자동차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산 자동차를 위협하는 수입차를 상대로 ‘관세폭탄’을 투하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차량은 총 830만 대에 달한다. 멕시코가 240만 대로 가장 많고 이어서 캐나다, 일본, 한국, 독일 순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완성차와 부품을 포함한 대미 수출액이 200억달러(약 22조원)를 넘는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즉각적인 수출 감소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관세 회피를 위한 생산기지 이전과 이로 인한 국내 자동차산업 공동화 등 다양한 악재성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은 미국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출한 자동차 253만194대 가운데 미국에 수출한 물량은 3분의 1에 달하는 84만5319대를 기록했다. 국내 완성차 5사 가운데 현대차가 30만6935대로 가장 많고, 기아차 28만4070대, 한국GM 13만1112대, 르노삼성 12만3203대순이다. 쌍용차만 유일하게 미국 수출 물량이 없다.

금액으로는 완성차와 부품을 합쳐 지난해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146억5100만달러, 자동차부품 56억6600만달러로 전체 수출액(686억1100만달러) 중 21.4%, 8.3%를 각각 차지했다.

또 자동차는 2017년 전체 대미 무역흑자(178억7000만달러)에서 72.6%(129억6600만달러)를 차지한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 문제를 이유로 철강 수입에 제동을 건 전례가 있는 만큼 한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그간 미국 수출에 무관세 혜택을 받은 국내 자동차 산업으로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관세 부과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당장 금액으로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무력화돼 과거처럼 4% 관세가 부활하면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 감소로 인한 손실액이 3년간(2019~2021년) 약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한 일자리 손실도 8만1300명에 달한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후속 조치를 봐야 알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뿐 아니라 자동차부품 업체들을 포함한 국내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상무부가 조사를 시작하면 기간은 최장 270일까지다. 상무부는 이 기간에 자동차 수입이 미국 내 일자리를 줄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과거 수입산 철강 제품은 조사 시작부터 관세 부과까지 약 1년 걸렸다.



▶중간선거·NAFTA 협상용 카드?

이번 조사는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높은 유럽연합(EU)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분석된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카드를 꺼내들어 이들 지역 자동차 생산기지를 장기적으로 미국에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미국 자동차 관세율은 2.5% 수준이지만 EU는 이보다 4배 높은 10% 수준이어서 이를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도 예상된다.

관세 카드는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는 방법으로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 무역수지 적자는 총 7962억달러로 이 가운데 승용차가 1236억달러로 가장 많았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가장 크고 이어 캐나다 멕시코 독일 한국순이다.

미국 통상 분야에 밝은 관계자는 “자동차는 미국 소비자 후생과도 직결된 생활필수품인 만큼 고율 관세로 인해 수입차 가격이 뛰면 미국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당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스트벨트’ 전통 지지층을 공략하기 위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위스콘신·오하이오주 등 제조업 지역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하지만 지난 3월 대표적 공업지대인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패배하는 등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최근 러스트벨트 지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강경한 통상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탓에 선거가 치러지는 11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경 조치를 계속 쏟아낼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역보복 확산

미국의 관세 폭탄에 맞대응해 EU는 이르면 다음달(7월) 철강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기로 했다.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로 수출길이 막힌 외국산 철강이 EU로 대거 들어올 조짐을 보이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세운 것이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르면 7월 예비조치를 할 수 있다”며 “미국 관세 때문에 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려던 철강이 유럽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3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EU 제품에도 이달(6월)부터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했다. WTO 규정에 따르면 EU는 역내 철강산업에 심각한 영향이 있다는 예비조사 결과가 나오면 최장 200일간 임시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다. 또 EU는 미국의 관세에 맞서 이달 20∼21일부터 미국산 수입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EU로 철강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도 무역전쟁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이 EU로 수출한 철강은 23억9000만유로(약 3조원) 수준으로 인도 중국 터키에 이어 4번째로 많다. 이미 미국과 쿼터제 협상으로 수출 물량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유럽 무역장벽에 막히면 대체 시장을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멕시코는 EU 캐나다에 이어 3번째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멕시코 경제부는 이달 초 성명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는 WTO 규정을 어겼다”며 “WTO 체제하에서 분쟁 해결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소 첫 단계인 양자 협의는 WTO가 분쟁에 개입하기 전 당사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로 최장 60일간 진행된다. 멕시코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가 적절한 WTO 절차에 따라 채택되지 않았으며 WTO의 기반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합의(GATT)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소 근거로 제시했다. EU, 캐나다와 함께 지난 1일부터 미국의 철강 관세 영향권에 든 멕시코는 미국산 철강을 비롯해 돼지고기, 사과, 치즈 등 농축산물에 보복관세를 부과해 맞대응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국 지도자 간 언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이 최근 전화로 관세 부과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급랭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5월) 미국의 EU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가 확정된 후 전화 통화를 했다. 한 소식통은 CNN에 “마크롱 대통령은 그들의 관계를 고려할 때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통화는 끔찍했다”고 전했다. 메이 총리도 이달(6월) 초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며 유사한 대화를 나눴다. 영국 총리실은 성명에서 “메이 총리가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에 문제를 제기한 뒤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에 대해 국유기업을 통해 해외 생산기지를 인수하거나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를 우회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당국은 국유 철강·알루미늄 업체들의 해외 생산기지 인수·투자를 장려해 왔다”며 “중국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으로 해외 생산의 외연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해 통상 전략의 원칙을 모두 어긴 것이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서머스 전 장관은 “미국은 현저히 비전략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분별한 통상 대립으로 인해 대부분 국가가 미국에 맞서 중국 편을 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은 미국인의 구매 가격을 높이고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미국의 정당성과 힘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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