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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시대 패션시장 지각변동-5060이 실제 구매층으로 ‘그레이네상스’시대 왔다
기사입력 2018.07.12 09: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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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있던 지난 6월 13일 덕수궁 현대미술관에는 5060 남녀 관람객들이 북적거렸다. 가벼운 아웃도어 의류부터 정장 차림까지 다양했지만 선거를 마치고 근현대 작가 전시를 보러 온 노년 관객들이다. 2년 전 이곳에서 열렸던 이중섭 전시 때 전쟁과 가난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몰리면서 미술가에 복고열풍을 일으켰듯 최근 미술관에서는 젊은 데이트족 못지않게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진 얼굴의 관람객들도 늘었다.

메이머스크(출처=메이머스크인스타그램)



지난 11일 월요일 저녁 압구정역 인근 8층 학원가 건물에 자리 잡은 ‘무지크바움’. 문을 열고 포근한 응접실 같은 공간을 지나면 대형 스피커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진 작은 소극장 겸 강연장이 나타난다. 증권맨 출신 음악칼럼니스트 유형종(57) 대표가 운영하는 음악동호회 공간에는 요일마다 돌아가며 오페라, 클래식음악, 발레감상 등 주제가 있는 강연과 감상 활동이 벌어진다. 이날은 회원 중 한 명이 현대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병사의 이야기> <풀치넬라> <결혼> 등을 통해 신고전주의적 면모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 대표처럼 50~60대에 의사와 교수, 은퇴한 직장인 등이 주축이고 자녀들 대학을 보냈거나 출가시켜 여유가 생긴 가정주부들도 참여한다. 연회비를 내고 정회원이 될 수도 있지만, 부정기적으로 오는 게스트 회원도 가능하다.

경제권과 실권을 잃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60대 이상 세대의 위상이 바뀌고 있다. 세계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연령층은 각종 산업의 ‘주요 소비층’으로 인식될 뿐 아니라 산업지도 자체를 바꾸는 힘을 발휘한다. ‘뒷방노인’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이제는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백발(Grey)과 전성기(Renaissance)의 합성어)’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패션·성인산업 등 과거 20·30대가 주 타깃이었던 산업의 주도권이 고령층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전 세대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수명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자신들 방식으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글로벌 시장전문기관 민텔의 리차드 코프 선임 연구원은 “나이가 있지만 여전히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을 위한 산업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태어나 60~70대 황혼기를 맞이한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현재 미국의 주요 소비층이다. 글로벌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소비의 43%가 베이비부머의 지갑에서 나왔다. 20·30대 소비가 13%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미국, 베이비부머를 노려라’라는 보고서에서 “미국 베이비부머들은 과거 세대에 비해 늘어난 수명과 축적된 부를 통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건강에 관심을 갖는 등 다양한 분야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혼·미혼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결혼정보산업, 여행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여가용 자동차 산업 등도 급부상하고 있다고 KOTRA는 분석했다.

메이머스크(출처=mayemuskmodel.com)



▶전 세계 고령화가 산업계 지도까지 바꿔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백화점 VIP고객의 절반이 50대 이상 연령층이고, 고가 시계와 수입 가구 등에서 5060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5060세대의 전년 대비 매출증가율은 2015년 5.8%에서 지난해 8.8%로 높아졌다. 올해는 5월 말 기준 9.6%까지 성장했다. 일례로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뱅앤올룹슨(B&O)과 보스 등 고가 스피커 판매는 5060이 큰손이 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고급 오디오와 대형 TV 등 프리미엄 가전과 수입시계 시장에서 5060 비중이 급증하면서 주요 소비자층이 됐다”고 전했다. 특히 과시용 소비보다 본인을 위해 투자하는 성향이 강해지며 수입의류와 화장품, 럭셔리, 리빙 부문 신장률이 돋보인다.

올해 5월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5060 연령대의 매출이 수입의류는 20.7%, 화장품 11.3%, 럭셔리 15.8%, 리빙 17.5% 성장했다. 롯데백화점도 시계와 보석 등 럭셔리 상품군에서 60대 이상 고객의 매출 비중이 2012년 8.9%에서 지난해 13%로 늘었다. 전체 연령대 중 비중이 가장 커진 것이다.

건강관리와 관련된 상품군에서도 5060 세대 영향력이 돋보인다. 롯데백화점의 스포츠상품군 구매 객단가는 50대 이상이 30대 고객을 2016년부터 추월해 ‘액티브 시니어’ 열풍을 입증한다. 지난해 50대 이상 고객의 구매 객단가는 18만원대로, 30대 객단가(17만원대)를 넘었다.

현대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발마사지 기기와 안마의자 등 건강관리 용품을 모아놓은 홈 헬스케어 편집숍 ‘헬스테크’를 2015년 9월 열고 6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 신장률이 31.1%였고, 올해는 5월 말까지 36.5% 뛰었다. 특히 60대 이상 고객 비중은 60.9%로 이들의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115%에 달한다. 여성 가발 전문 브랜드 ‘파로’는 머리숱이 적어진 시니어 여성들을 겨냥한 부분 가발 인기 덕분에 매년 10%대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50대 이상 고객들이 ‘골든 에이지’라 부를 정도로 본인을 위해 과감히 소비를 하고 있고, 특히 건강관련 제품에 관심이 많아 매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돈과 시간적 여유가 많은 5060은 백화점 문화센터 주요 고객이 됐다. 최근 몇 년 새 각 백화점은 시니어를 겨냥한 강좌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개설한 강좌 중에서 ‘6주완성 러블리 메이크업’ ‘시니어 필라테스 요가’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과정은 지난해 개설 이후 매 강좌 정원이 마감될 정도다. 특히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과정은 신청자가 늘면서 올봄 여름 학기부터 강좌를 초급반 중급반으로 2개 나눠서 개설해야 했다. 실제 문화센터 카탈로그에 직접 시니어 모델로 참여할 기회도 얻는다. ‘시니어를 위한 통기타 교실’과 ‘스마트폰 200% 활용하기’ 등 강좌도 인기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를 이용하는 50대 이상 고객은 최근 3년간(2015~2017년) 이전 3개년 대비 두 배가량 늘었고, 2018년 봄학기 시니어 대상 강좌 수는 전년 봄학기 대비 3배로 늘어났다. 김대환 롯데백화점 문화마케팅팀장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니어 고객층 활동이 크게 늘면서 관련 강좌도 꾸준히 신설하고 있다”며 “선호하는 분야도 미용, 여행, 운동 등 자신을 가꾸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시니어 대상 모델 워킹 문화센터 강좌 사진



▶롯데백화점 시니어 모델 문화강좌 인기

온라인여행사 인터파크투어의 구매자 프로파일을 분석해 보면 50대와 60대 이상 고객(모바일 이용 고객 기준)이 지난해 약 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이 약 5%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인터파크투어는 여행사 최초로 만 60세 이상 고객에게 해외 패키지 여행상품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시니어 요금제를 출시했다. 60대 이상 고객의 전체 여행상품 예약률을 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PC 접속을 통한 예약은 재작년 대비 12%, 모바일을 통한 예약은 18% 증가했다. 특히 모바일 접속을 통한 해외여행 상품 예약이 171% 급증해 여가활동에 적극적인 액티브 시니어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5060이 이미 주력 고객인 홈쇼핑도 시니어 계층을 겨냥한 방송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홈쇼핑은 올해부터 매주 수요일 7시 15분부터 8시 15분까지 자막 크기를 키우고 건강식품과 레포츠, 컴포트화를 주로 판매하는 얼리버드쇼를 편성하자 매출이 이전보다 평균 10% 이상 증가했다. 젊은층이 주로 이용하는 편의점업계도 5060을 공략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GS25는 시니어 겨냥 요실금 패드 판매에 나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60대 이상 연령층의 영향력은 식품산업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식품회사들은 치아가 약한 고령층도 쉽게 씹어서 먹을 수 있는 ‘연화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연화식은 기존 음식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시니어들이 충분히 구매할 능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니어들은 치아가 약해져도 고기나 떡 같이 ‘씹는 즐거움이 있는’ 음식을 여전히 선호하기 때문에 식품회사들이 푸드테크를 접목시킨 제품들을 연구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약 1조1000억원 규모였던 실버푸드 시장은 2020년엔 16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설 명절 때 ‘더 부드러운 한우 갈비찜’과 ‘더 부드러운 돼지 등갈비찜’ 등 연화식(軟化食) 기술을 접목한 설 선물세트 5종을 판매했다. 8만원부터 14만원까지 고가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000개 한정세트가 완판됐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연화식 전문 브랜드 그리팅 소프트(Greating Soft)도 선보였다. ‘부드러운 생선’ 등 연화식 기술 2종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고 가자미와 고등어 등 뼈째 먹는 생선 8종을 시범 생산해 중앙보훈병원 등에 환자식용으로 내놓고 있다. 아워홈도 지난해 말 고기, 떡, 견과류 등 딱딱한 음식을 효소로 연하게 만드는 특허를 출원하고 곧 B2B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풀무원 푸드머스도 2015년 실버푸드 전문브랜드 ‘소프트 메이드’를 론칭하고 ‘부드러운 족발 고기편’ ‘더 부드러운 멸치’ 등을 B2B용으로 판매 중이다.

이뿐 아니다. 근육량 감소 등을 막기 위해 고령층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 주는 식품들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매일유업은 최근 사코페니아(골격근이 정상보다 크게 줄어드는 근감소증)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류신 등 근육 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아미노산을 섭취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이다.



▶글로벌 패션업계 60대 모델 전면에 등장

명품 패션업계에는 지난 2015년부터 60대 이상의 시니어 모델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그레이네상스가 열렸다.

당시 80세의 여류소설가 존 디디온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셀린느의 메인 광고 모델이 됐고 프랑스 브랜드 생로랑은 70대 싱어송 라이터인 조니 미첼을 광고모델로 썼다. 이후 베트멍과 돌체앤가바나 등도 시니어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들어서는 20대가 주요 타깃층이었던 중저가 브랜드도 시니어모델을 기용하고 있어 그레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SPA 브랜드 망고(MANGO)는 60대 모델인 린 슬레이터(64) 교수를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60대 패션 블로거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슬레이터 교수는 유니클로와 발렌티노, 발렌시아가 등 많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의 어머니이기도 한 메이 머스크(70)는 미국 유명 화장품회사 ‘커버걸’의 메인 모델이다.

영국패션전문업체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패션의 차세대 주자는 60대가 됐다”며 “과거에는 이들이 패션 산업의 홍보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제는 이 공식이 뒤집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BOF는 또 “시니어 모델은 자신의 연령대뿐 아니라 젊은층에도 영감을 줄 수 있어 더욱 환영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메이 머스크와 린 슬레이터의 주요 팬층은 20대 후반에서 30대다. 노년층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 변화가 노인들을 앞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뉴질랜드 매체 스터프는 그레이네상스를 언급하면서 “젊은층들 사이에서 ‘실버 폭스(은빛 여우·백발노장)’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하며 “인스타그램과 스냅챗 등에 사로잡힌 디지털 세대들은 이제 일시적인 것들에 싫증이 났다. 이들은 실버폭스들이 삶 속에서 어렵게 얻은 경험과 지혜에 환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레이네상스 시대는 일본의 성인산업마저도 바꿔놓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고령화로 인해 최근 일본의 성인산업이 갈수록 점잖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등가 주 소비층이 20·30대가 아닌 노인층으로 옮겨가며 일본의 성문화를 통째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는 28%에 달한다.

마쓰시마 가쓰히토 도쿄 야노 연구소 연구원은 <이코노미스트>에서 “노인들은 (여전히 성적 욕구를 느낄 만큼)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 비해 덜 적나라하고 더 부드러운 서비스를 원한다”고 밝혔다. 일본 에도시대부터 일본 ‘성 산업의 중심지’로 불렸던 도쿄 요시와라 지역은 성인산업 분야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주 소비층이 60대로 바뀌면서 요시와라에서는 직접적인 매춘보다는 비누거품 등을 통해 마사지를 받는 ‘소프랜드’나 ‘카바쿠라’(노래를 부르는 카바레식 클럽)가 더 성업 중이다. 50대 이상을 주 독자층으로 설정해 가슴 등 여성 주요 신체부위 노출이 거의 없는 성인 잡지도 나왔다.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를 입수하기는 어렵지만 노골적이었던 일본의 성문화가 보다 덜 노골적인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한나 매일경제신문 유통경제부 이새봄 국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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