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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옛사람들의 여행 풍류
기사입력 2020.07.07 10: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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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어디로든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름은 다가오고, 휴가철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어디 안전하게 쉬다가 올 곳이 없을까. 서울 사람들은 거의 자동으로 제주도와 강원도의 어느 곳을 떠올린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의 여행지 한 곳을 소개할까 한다. 새로운 곳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다. 예부터 강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이곳을 들렀다 간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조선 사대부가의 상류 저택으로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 99칸짜리 집이다. 이 집을 ‘선교장’이라고 한 것은 이 동네가 예전 경포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엔 임금이 사는 궁궐만 100칸 이상 지을 수 있었다. 전국에 99칸짜리 집들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집들을 오밀조밀 붙여 지어 답답해 보이는데, 강릉 선교장은 3만 평 대지에 마치 마을처럼 집을 흩어지어 우선 보기부터 시원하다. 그 안에 있는 집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면 더욱 그렇다.

강릉 선교장



대갓집의 안채 치고 선교장의 안채는 다른 고택의 안채에 비해 화려한 편이지만, 선교장 안에서는 비교적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깥채와 사랑채가 그보다 더 호화롭기 때문이다. ‘열화당’이라고 부르는 주인 전용의 사랑채는 한옥 건물로는 참으로 호화롭게 지어졌다. 마당을 향한 앞쪽의 함석지붕은 제정 러시아식 건축방식이다. 이곳에 묵었던 러시아공사가 답례로 지어준 것이라 한다.

바깥에서 선교장으로 들어갈 때 솟을대문 옆으로 길게 늘어선 행랑채의 고만고만한 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기거했을까. 행랑 뒤쪽에 방마다 굴뚝이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보통 큰 저택 행랑엔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데, 선교장은 일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 선교장 바깥에 오밀조밀하게 지은 집들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하듯 선교장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일을 했다.

대궐만큼 큰 집이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당연히 사랑채나 바깥채만으로는 방이 부족하니까 손님들도 급수에 따라 행랑에 묵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면 끼니마다 상 차리는 것도 큰일이었을 거다. 이 집에 손님이 가장 많던 시절에는 상을 차려내는 소반만 몇 백 개였다고 한다. 손님의 신분과 주인의 친소 관계에 따라 상, 중, 하로 분류해서 하급 손님들을 행랑에 재워 보냈던 것이다.

귀한 손님이야 당연히 사랑채에 모신다. 앞에 얘기한 ‘열화당’에 모시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저마다 직업이 있고 하는 일이 있으니 어딜 가도 오래 있을 수 없다. 휴가가 아무리 길어도 열흘이다. 그러나 예전에 서울에서 길을 떠나 선교장을 오가는 손님들은 장기 손님이 많았다. 서울에서 금강산 유람을 가더라도 오가며 반년 이상 놀고 오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짧으면 한 달, 길게는 아주 식객처럼 몇 달을 보내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고급 손님들한테는 계절에 맞춰 새로 옷도 지어주고, 떠날 노자도 두둑이 챙겨주었다.

그러다 보니 주인 입장에서 이제 그만 갔으면 싶은 손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손님들은 어떻게 내보냈을까. 일테면 빈대 같은 손님은 또 그런 손님대로 내보내는 방법이 있었다. 서로 점잖은 체면에 그만 가라고 직접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이 상차림을 달리하는 것이다.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은 너무 야박하고 저급스럽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상을 차리는 것도 법도가 있다. 밥을 놓는 자리, 국을 놓는 자리, 반찬마다 놓는 자리가 다 정해져 있다. 그렇게 상을 차려 올릴 때 반찬자리를 바꾸어 올린다. 김치 놓을 자리에 간장을 놓으면 나그네도 눈치를 알고 그만 일어서는 것이다. 그 시절 풍류를 즐기는 한량들에게는 그들만의 식객 법도가 있었다.

선교장 입구 연못 한가운데 있는 ‘활래정’은 선교장의 상징이자 얼굴 같은 정자다.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있어 마치 연못 한가운데 정자가 있는 듯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차를 마시던 곳이다. 선교장의 연꽃차는 특히 유명하다. 어떻기에 유명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차를 관리하는 방법이 특이해서이다. 다음날 아침에 마실 차를 밤새 아직 피지 않고 오므리고 있는 연꽃 꽃잎 속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꺼내 차를 끓였다.

여기에서 의문 한 가지. 이 정도 규모의 집이 중국이나 일본에 있었다면, 또 이렇게 손님과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으로 따로 누마루까지 있다면 여기 활래정에 부속 찻간을 만들었을 텐데, 우리나라 정자에는 찻간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옛날 영화를 보더라도 중국과 일본은 손님이 보는 앞에서 차를 끓이지만, 우리는 손님이 보는 앞에서 차를 끓이지 않다. 손님 앞에서 주인이 직접 차를 끓이는 것을 체신이 없다고 여긴 듯하다. 부엌이나 찻간에서 끓인 차를 손님이 있는 방으로 내가는 식이다. 우리가 서울의 대궐을 둘러보든 오죽헌 같은 국가보물로 지정된 건물을 보든 아니면 조선시대 최고의 고급주택으로 이름난 선교장을 보든 그것을 그냥 건물로만, 풍경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안에서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생각하며 봐야 한다.

옛날 이곳은 서울에서 잠시 공직을 떠나 있던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여행을 할 때 한 계절 내지 두 계절을 머물다 떠나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가는 방법도 강릉을 거쳐 금강산으로 갔다. 태백산맥의 다른 고개는 위험해서 넘기 어려웠다. 이곳 선교장에 들러서 잘 대접받고 다음 계절의 옷까지 준비해 금강산으로 떠났다. 그렇게 금강산으로 떠난 사람을 대궐에서 다른 벼슬을 주며 급히 찾을 때에도 바로 금강산에 들어가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선교장에 기별하면 선교장의 연락군들이 알아서 그를 찾아 기별해줬다. 금강산으로 저 혼자 떠난 사람은 찾을 수 없지만, 이곳 선교장에 들렀다가 떠난 사람들은 오가는 인편으로 서로 기별을 주고받았다.
지금 같으면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일을, 또 열흘씩 걸어서 오가던 길을 KTX 기차를 타면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 짧은 길을 코로나19가 막고 있으니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세상 모든 길들이, 또 답답함들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 풀리고 물러나길. 해외가 어렵다면 국내여행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오길 기다린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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