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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칠레 와인의 자부심 몬테스 알파 M
기사입력 2020.06.05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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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와인은 칠레산 와인이다. 아마도 칠레산 와인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전 세계에서 칠레 자국 시장밖에 없을 것이다. 칠레는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뉴 월드, 즉 새로운 생산지로 구분되지만 무역업에 종사하던 디에고 가르시아 데 카세레스(Diego Garcia de Caceres)가 1554년 수도 산티아고에 첫 번째 포도밭을 조성했다고 하니, 칠레 와인 역사는 짧은 편이 아니다. 그 이후로 칠레의 와인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 18세기에 이미 유럽 본국으로 와인을 수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1831년에 이미 1900만 그루의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카베르네 소비뇽 위주의 블렌딩도 1850년대 무렵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불안한 정치적 환경이 지속되면서, 칠레의 와인 소비 및 관련 산업은 큰 쇠퇴를 겪게 된다.

칠레 사람들은 와인보다는 피스코(Pisco)라고 불리는 증류주를 즐겨 마신다. 피스코는 약 40도 정도 되는 술로, 스트레이트로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칠레 사람들은 피스코 사우어(Pisco Sour)라는 칵테일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탄산수와 라임, 설탕, 달걀흰자로 만드는 피스코 칵테일은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피스코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칠레의 와인 문화가 대중 속 깊이 들어오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마치 소주의 인기 때문에 와인이나 전통주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나라 소믈리에들의 푸념과도 비슷하다.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무려 75%가 해외로 수출된다. 수출 비중이 30% 정도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비교할 때 두 배 이상 높은 숫자다.



500년 가까이나 된 역사와 비교해 보면, 1990년대에 생산을 시작한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역사는 매우 짧다. 같은 아메리카 대륙의 경쟁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급 와인이 ‘파리의 심판’ 행사로 프랑스 와인과의 승부를 벌이고 세계 시장에 존재를 알린 것이 1970년대이니까 그 이후로부터도 거의 20년이 지나서다. 칠레산 고급 와인은 우리나라 외에 홍콩이나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의 고급 식당에서 칠레 와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고급 와인들을 최근에는 보수적인 파리의 와인 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데 비해, 아직까지 칠레산 와인은 고급 식당보다는 슈퍼마켓의 저렴한 와인 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의 와인 컬렉터들은 가족의 셀러에서 꺼낸 오래된 와인으로 와인에 대한 경험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유럽 컬렉터들의 입맛은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와인의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가족의 셀러를 물려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디어를 통해 와인을 배운 서울과 도쿄의 와인 애호가들은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 생산은 지역 생산자들보다는 오히려 해외 생산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칠레의 가장 유명한 프리미엄 와인인 ‘알마비바(Almaviva)’는 1997년 프랑스의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무통 로칠드’와 칠레 최대의 와이너리인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의 조인트 벤처로 탄생하였다. 무통 로칠드가 칠레에 진출한 배경에는 그보다 10년 먼저 칠레에 로스 바스코스라는 와이너리를 설립한 사촌 에릭 로칠드의 영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에릭 로칠드는 보르도와 같은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소유하고 있다. 알마비바는 칠레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지만 흥미롭게도 전 세계의 유통은 네고시앙(Negociant)이라 불리는 프랑스 보르도의 중개업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단점은 유로로 거래가 되어, 유로와 칠레 페소의 환율 변동에 따라 환차손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유통망을 갖고 있는 보르도의 네고시앙들은 알마비바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기도 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아닌 칠레인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은 바로 ‘몬테스 알파(Montes Alpha)’다. 몬테스 알파를 만드는 비냐 몬테스(Vina Montes)는 1988년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와 2명의 파트너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지만 모든 몬테스 와인의 레이블에는 “칠레로부터 자부심을 가지고(From Chile with Pride)”란 표현이 쓰여 있다. 이 문장은 비나 몬테스의 창업정신이자 지금까지 회사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산티아고의 가톨릭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뒤, 2년간 유명 와이너리에서 와인 메이커로 일을 했다. 현장에서 와인을 직접 만들며 학생이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의 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칠레는 좋은 자연환경과 유능한 인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왜 싸구려 와인만 만들까.”

특히 아우렐리오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 원액이 싸구려 원액과 블렌딩되어 싸구려 와인으로 판매되는 것이 몹시 속상했다. 자신의 조국인 칠레를 사랑했던 아우렐리오는 이 문제를 스스로 바로잡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개선하고자 한 칠레 와인의 문제는 크게 2가지였다. 유럽에서 들여와 150년 동안 포도밭에서 재생산된 묘목의 품질이 좋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르도에서 새로운 묘목을 들여왔다. 두 번째로는 포도밭이 조성된 토양이 너무 기름져서 고급 와인을 생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많은 양의 포도를 생산하기에는 좋았으나 포도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포도에서 좋은 맛이 나지 않았다.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고급 와인을 만들기에 적합한 새로운 땅을 찾아다녔다. 척박하고 경사진 땅에 새로 포도나무를 심었다. 야생 목초와 바위를 제거하는 데에 많은 비용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새로운 와이너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바로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선입견이다. 아우렐리오 몬테스가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였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고 한다. 고급 와인을 만들더라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들과 경쟁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렐리오 몬테스와 그의 파트너들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하였다. 특히 술을 즐기지만 아직 와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못했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주목하였다.

아우렐리오 몬테스와 그의 파트너들은 한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동시에 88올림픽 이후 와인 소비의 급격한 증가, 첫 번째 FTA 체결 국가로 칠레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 효과와 더불어 2002년 월드컵의 조추첨 만찬 와인으로 선정되는 특별한 우연으로 몬테스 알파는 한국 시장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는 외국 시장에서 몬테스 알파를 발견하면 왠지 우리나라 와인과 같은 친밀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해외 와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에서 성공한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우렐리오 몬테스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큰 성공이 다른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바이어들에게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와인으로 소개하면,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던 바이어들도 몬테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한류와 함께 성장한 한국 문화의 인기를 후광 효과로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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