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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계절은 어떻게 바뀌는가
기사입력 2020.03.05 13: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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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는 아니고, 아마 중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남보다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 살 때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때 국어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이었던 분이 시인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은사님께 가끔 전화를 드리곤 하는데, 그때에도 시인이셨던 만큼 독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고등학교를 입학시험을 봐서 들어가던 때인데도 지금 읽는 한 권의 책이 어른이 되어 읽는 열 권의 책보다 가치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게 지금도 내 기억에 박혀 있다.

그때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내 머리가 책의 잉크를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떤 책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닥치는 대로 읽던 어떤 책에서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는 멋진 말 하나를 배웠다. 뒤돌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떤 명사의 수상록이거나 수필집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어나가던 중 본문 안에서 저 멋진 말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책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저자의 말’에서 눈에 스치듯 그것을 본 듯하다. 어쩌면 내가 읽던 책이 아니라 아버지가 읽던 책을 옆에서 이건 무슨 책인가 하고 슬몃 보았던 것인지 모른다.

거기 책머리에 나오는 지은이의 말(책에는 ‘저자의 말’) 맨 끝에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시기를 바로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이야, 이렇게 멋진 말이 있었구나.’



어려운 말 한마디도 쓰지 않고 다가오는 계절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 멋진 말을 배운 다음 나는 꽤나 틈틈이 이 말을 써먹었다. 그 무렵 군에 가 있는 형에게 쓰는 안부편지의 제일 끝에도 몇 월 며칠 하는 날짜 대신 ‘계절이 바뀌는 길목’을 쓰고, 이제 계절이 완전히 바뀐 다음인 한겨울에 숙제처럼 써내야 하는 일선장병 위문편지 뒤에도 어김없이 그 말을 쓰곤 했다.

그보다 뒤늦게 배운 한자 말 ‘환절기’와 비교해보더라도 이 말은 이따금 한 번씩 쓸 때마다 그 안에 시적인 서정이 그대로 뚝뚝 묻어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말을 처음 배운 소년의 나이는 열다섯이었고, 그것을 가장 왕성하게 쓰던 시절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리고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무수히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정작 계절이 바뀌는 길목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점차 어른이 되면서 내 삶의 시간도 잊고 계절도 잊고 자연도 잊고 살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돌아보니 나 역시도 어느 책에 쓴 ‘작가의 말’ 끝에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으면서도 그때 그런 계절의 길목을 제대로 느끼고 살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 요즘 다시 그 말을 처음 배웠던 어린 시절처럼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서 나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이 바로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아니 이미 성큼 봄이 와 있는 것을 느끼는 계절의 길목이다. 저녁과 아침엔 아직 겨울처럼 쌀쌀하고 한낮에는 봄기운이 온 세상에 퍼져 있는 듯하다. 2월과 3월의 차이만이 아니라 이게 겨울과 봄의 차이구나 싶게 따뜻함이 전해온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동안 계절을 피부로 느끼는 날씨와 달력의 숫자로만 계절을 보낸다. 그만큼 바쁜 삶을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사람도 계절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다. 시간은 어떤 일의 ‘일정’이라는 알음으로 달력 위로만 지나간 듯하다. 그러나 달력은 날짜와 시간의 나침반이지 계절의 나침반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새 학년 새 학기 개학을 막 한 때이고, 어른들에게는 이제 겨울을 막 보내고 새로운 기분으로 봄을 맞이하는 때이다. 말로는 누구나 그냥 덧없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자연을 느껴보자고 하지만 매일 오가는 길이 같고, 매일 앉아 있는 책상의 위치가 같으며 매일 바라보는 하늘 역시 그것이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 도시 사람들의 삶이고 직장인의 삶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이야말로 바로 계절이 바뀌는 그 길목이 아닌가. 어린 시절 농촌에서 매일 들판을 보던 기억으로 되돌려 볼 때, 눈 녹은 땅에서 무언가 파란 싹이 올라오는 것도 바로 요즘 철이다. 꽃봉오리들도 하루가 다르게 개화시기를 기다리며 더 동그래진 모습을 보인다.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은 어떻게 다르지요?”

누군가 물었다. 그냥 묻는 게 아니라 이것을 봄마다 묻는다면서 다시 물었다.

옆에서 한 사람이 아는 척 설명을 한다.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은 둘 다 노랗지. 그런데 산수유 꽃은 작은 꽃잎마다 꽃자루가 길게 피어 있고, 생강나무 꽃은 꽃자루가 짧아 한군데에 뭉쳐 있듯 몽글몽글 피어 있지.”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절대 헷갈리지 않을 방법을 알려줄게. 꽃모습이 영락없이 카스텔라 같으면 산수유고 클로버처럼 뭉쳐 있으면 생강나무 꽃이야.”

“그걸 가르쳐줄 때는 아는데 해마다 잊어버려 해마다 물으니 문제지요.”

그래도 그렇게 꽃모양이라도 묻고 지나가는 게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기에 가능하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자연의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배우며 감탄하는 일들을 우리는 수시로 잊고 살았다.

고향에서 친구가 말린 칡을 보내왔다. 일부러 산에 가서 캔 것이 아니라 길을 넓히며 길옆의 밭둑을 조금 허물었는데, 겨우내 땅속에서 살찐 칡뿌리가 드러나 그걸 손질해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이렇게 고향에서 오는 귀한 물건이 전하는 봄소식에서도 묻어난다.


그런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가는 게 너무 많다. 어른이 된 다음 서울로 와서 말과 글로만 계절이 바뀌는 길목을 찾고 느끼며 살았지 몸과 마음으로는 그 길목을 잊거나 건너뛰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한번 그 길목에 나서봐야겠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4호 (2020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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