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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100년, 200년 땅속에 묻혀 있던 연꽃씨앗의 꿈
기사입력 2020.10.13 09:50:46 | 최종수정 2020.10.13 10: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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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7대 임금 세조 때의 일이다. 어떤 떠돌이 중이 재상 권람의 집에 이르러 재상을 한 번 보기를 청했다. 권람은 중을 서재에서 기다리게 하고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중은 벽에 걸려 있는 ‘위천조어도’(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질하는 그림)를 보고 그림 아래에 시 한 수를 써 붙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비바람이 소소히 낚시터에 부는데 / 위천의 새와 고기는 기심을 잊었구나 / 어찌하여 늘그막에 매 같은 장수가 되어 / 백이숙제로 하여 고사리 뜯다 굶어죽게 하였는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사육신을 죽인 세조와 그의 무리를 비꼰 시지만 품격이 맑아 절로 비감한 기분이 든다. 권람이 뒤늦게 서재로 나와서 보니 중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고 자신이 아끼는 ‘위촌조어도’ 아래에 낯선 글씨의 시 한 수가 적혀 있다.

“아뿔사, 매월당이 왔는데 몰랐구나.”

하고는 중의 뒤를 쫓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매월당이 누구인가. 다섯 살에 이미 시를 썼다고 ‘오세’로 불리던 김시습이 아닌가. ‘위천조어도’의 그림과 매월당이 남긴 시 속의 위천이 바로 중국 역사에 나오는 위수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위천, 혹은 위수라고 부르는 강이 있다. 아니, 강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아주 작은 냇물이 있다. 중국의 위천은 옛 역사의 많은 사연을 안고 황하로 흘러들고, 우리나라의 위천은 대관령의 한 자락에서 발원해 지금도 옛 법도 그대로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전통 유가마을인 위촌리와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앞을 지나 경포호수로 흘러든다.

대관령 한 자락에서 발원한 위수가 흘러드는 경포호수는 지금도 넓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넓었다고 한다. 넓지만 호수 한가운데도 깊지 않아 일부러 죽으려고 마음먹고 뛰어드는 사람이 아닌 다음엔 호수에 빠져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진개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수가 깊지 않아 가장자리에서부터 흙을 메워 논을 만들었다. 늪이었던 시절 그곳에 가득했던 연꽃씨앗들은 새로 호수에 갖다 붓는 흙속에 깊숙이 묻혀 싹을 틔울 수 없었다. 이 역시 쌀이 귀하던 시절의 일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이제 쌀이 흔하다 못해 쌓인 것을 처치하지 못해 나라가 골머리를 앓는 시대가 되었다. 호수 주변의 논들을 다시 파내어 늪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옛날에 논을 만들기 위해 호수를 메웠던 흙을 다시 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곳에 족히 200년, 300년 전에 묻혀 있던 연꽃씨앗들이 다시 싹을 틔워 물 위를 가득 메웠다. 오랜 시간 잠속에 스스로 깨어난 잎과 꽃들이다.

그런 오랜 시간의 사연을 안고 있는 경포호수 주변 늪지에 연꽃과 연잎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와 화가들이 모여든다. 그 중에 내가 아는 한 화가가 있다. 그는 경포호수 주변 늪지의 연잎 풍경을 즐겨 그린다. 이력도 아주 특별하다. 내가 그의 그림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권승연 화가는 어릴 때와 중·고등학교 때에는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도 전혀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문득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마흔이 훌쩍 넘어서였다.

오랜 세월 내 안에 숨어 있는 재능과 열망을 남의 것인 양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다가 불혹이 넘은 어느 날 경포호수 늪지의 연처럼 새로운 시간 속에 내 안에서 나를 부르는 새로운 부름으로 잠에서 깨어나 붓을 잡았다. 그 붓으로 오랜 시간 가슴 밑바닥에 감춰두었던 연꽃씨앗의 싹을 틔우고 줄기를 늘이고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연은 그렇다. 100년이고 200년 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 꽃을 피운다고 해서 결코 꽃과 잎이 작아지거나 달라지는 법이 없다. 단 하나의 씨앗으로도 몇 년이면 호수를 가득 메운다. 내가 강릉 경포호수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권승연 화가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경포호수 주변 습지의 연잎들만 화폭에 담는 뜻도 어쩌면 그가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시절, 자신의 삶이 저 습지에 새롭게 탄생한 연잎들의 일생을 닮아서가 아닐까.

그는 그 습지의 연꽃씨앗들이 오랜 세월 깊은 땅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잘 알고, 또 그 잠속에 저마다 자기 생에 피어 올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걸 알기에 늪을 가득 메운 연잎마다 가지고 있는 서로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그들의 꿈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일관되게 그리는 그림이 연잎이며 그 그림들의 제목 또한 일관되게 ‘동상이몽’이라 붙이는 것도 저 경포호수 늪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연잎들의 내력을 그가 자신의 꿈처럼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글과 그림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제까지 내가 숱한 습지에서 똑같은 풍경으로 봐온 연잎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잠시 멈칫하고 놀란다. 그것은 마치 사진을 찍어 확대해놓은 듯한, 아니, 사진을 인화하기 전 사물의 명암이 정반대로 재생되어 있는 커다란 컬러필름의 원판을 보는 듯한 낯설음과 놀라움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익숙하게 봐온 사물로서의 연잎 하나하나의 모습이 저토록 표정이 다 다르고, 거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처럼 부여된 색이 다른 것에 놀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과 가을 경포습지를 달구며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굴러간 태양의 시간과 그것을 받아들인 연꽃과 연잎들의 시간과 또 그걸 화폭으로 옮긴 화가의 시간,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아우르며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꿈까지, 그 모든 것이 동상이몽일 수 있다. 100년, 200년 깊은 땅속에서 연꽃씨앗이 피어올린 꿈도 아마 씨앗마다 달랐을 것이다.

물 위에 시들어가는 연잎 위에는 지난봄과 여름 태양이 끌고 간 긴 시간의 수레자국이 나 있다. 그 수레자국 위에 나는 한 줄의 글로 동행을 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동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다들 내일이면 또 저마다 저 씨앗들처럼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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