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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영웅들의 합작, 오퍼스 원
기사입력 2019.11.07 10: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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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지역성, 특히 어디서 포도를 재배했는지 그리고 어디서 병입하였는지가 매우 중요한 제품이다. 한 병의 와인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특징들, 예를 들자면 빈티지라고 불리는 포도 수확 연도, 포도 품종, 색깔, 거품, 숙성 정도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생산지이다. 미국 나파 밸리 와인이니, 칠레산 와인이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와인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원산지 명칭 통제’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AOC(Appellation Origine Controle) 혹은 미국의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같은 규정들은 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원산지 규정은, 원래 가짜 와인의 범람을 막고, 한 지역 와인 전체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지역 농부들 사이의 약속이다. 대체로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신대륙 와인일수록 규정이 느슨하고, 와인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생산지일수록 자세하고 엄격하다. 가령 프랑스 보르도 같은 경우, 포도품종뿐만 아니라 어떻게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지 포도 수확을 할 때 어떤 바구니를 써야 하는지, 그 바구니에 얼마나 많은 포도를 담아야 하는지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런 통제는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품질을 보장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와인 양조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자본이 없는 젊은 양조가들의 성장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의 경우, 최소 5년 이상 양조장에서 숙성을 해야만 와인을 출시할 수 있다. 이미 5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던 양조장은 어려움이 없으나,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하는 젊은 양조가에게는 최소한 5년 이상의 투자를 해야만 와인을 판매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규제를 피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적지 않은 젊은 양조가들이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으로 나파 밸리의 유명한 컨설턴트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온다 도로(Onda d’Oro)’와 ‘바소(Vaso)’를 양조한 필립 멜카(Philippe Melka) 역시 보르도 출신이면서 새로운 기회를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다. 하지만 이미 성공한 포도원이 신대륙에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특히 보르도의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와 ‘오퍼스 원(Opus One)’을 세운 1979년에는 매우 놀라운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후 역시 보르도의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가 프랑스 포도원으로서 처음 칠레로 진출한 것이 1988년의 일이다.



‘오퍼스 원’이라는 이름은 작품이라는 뜻의 ‘오퍼스(Opus)’, 그리고 첫 번째라는 뜻의 ‘원(One)’이 합성된 말로 지금은 작고한 두 명의 와인 영웅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와인이다. 가족의 남작 작위를 따 바롱 필립(Baron Philippe)이라고 불리는 샤토 무통 로칠드의 ‘필립 로칠드(Philippe de Rothschild)’ 그리고 나파 밸리 와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하와이에서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각각 보르도와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의 역사를 바꾼 두 영웅의 업적을 생각한다면 오퍼스 원이 아니라 오퍼스 투(Opus Two)라는 명칭이 오히려 어울릴 것 같다. 필립 남작은 보르도 와인 2등급에 지정되었던 샤토 무통 로칠드를 각고의 노력을 통해 1등급으로 진급시킨 인물인 동시에, 지금은 일반화된 샤토 병입 제도를 도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과거에는 양조장에서는 와인을 만들고, 병입은 유통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병입 과정에서 몰래 다른 와인이 섞이는 경우도 있었고, 같은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유통업자가 병입하느냐에 따라 품질의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장악한 유통업자들의 반대로 샤토 병입이 정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필립 남작은 가족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하고 이웃의 양조자들을 오랫동안 설득하여 샤토 병입 제도를 안정화시켰다.

로버트 몬다비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세계적인 수준의 와인으로 성장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이름인 동시에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인 로버트 몬다비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로버트 몬다비의 가장 큰 업적은 보리유 빈야드(Beaulieu Vineyard)의 와인메이커인 ‘안드레 첼러체프(Andre Tchelistcheff)’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양조가들을 키워낸 것이다. 안드레 첼러체프는 나파 밸리의 브레인으로 나파 밸리 포도원들의 기술적인 문제를 도왔고, 로버트 몬다비는 나파 밸리의 얼굴로서 지역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였다. 1976년 파리의 전문가 시음회에서 프랑스 와인들을 누르고 1등을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의 양조가 ‘마이크 거기쉬(Mike Grgich)’도 로버트 몬다비가 키워낸 와인메이커 중 하나다. 성격이 특별했던 마이크 거기쉬가 일했던 와이너리 중에서 유일하게 불화 없이 떠난 포도원이 로버트 몬다비라는 점도 흥미롭다.

사진 오퍼스 원 홈페이지



오퍼스 원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나파 밸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지만, 프랑스 보르도의 DNA를 갖고 있는 와인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와인메이커인 ‘뤼시앙 시오노(Lucien Sionneau)’와 로버트 몬다비의 아들인 티모시가 만든 첫 번째 빈티지는 오퍼스 원이 아닌 ‘나파메독(Napamedoc)’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었고, 이 이름은 1981년 빈티지까지 유지되었다. 당시 뤼시앙 시오노는 은퇴를 앞두고 있던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양조가였으며, 티모시 몬다비는 오크 배럴 사이에서 막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온 젊은 양조가에 불과했다. 오퍼스 원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포도밭인 칼롱 빈야드(Kalon Vineyard)는 1981년 오퍼스 원에 합류하게 된다. 지금 막 성장하기 시작한 와인 생산지로서 나파 밸리가 프랑스의 기술을 필요로 했던 것은 이해하기 쉬우나 이미 확고한 명성을 가지고 있던 보르도 샤토가 당시로서는 프리미엄 와인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나파 밸리에 투자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필립 남작의 비전은 옳았고, 오퍼스 원은 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도 나파 밸리 와인 중에서 가장 알려진 와인으로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와인이라고 한다. 오퍼스 원이 다른 미국 와인들과 다른 독특한 특징은 양조보다는 유통에 있다. 오퍼스 원은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의 유통은 프랑스 보르도의 중개인인 네고시앙(Negociant)에 의해 유로화로 거래된다. 오퍼스 원의 수출 담당 부사장인 로렁 들라쉬(Laurent Delassus)는 보르도 와인 유통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그의 사무실 역시 프랑스 보르도에 위치해 있다. 최근에는 많은 나파 밸리 와인들이 오퍼스 원의 유통 방식을 따라, 보르도 네고시앙 시스템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오퍼스 원은 보르도의 다른 고급 와인들처럼 중후하고 잘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이다. 뿐만 아니라 오퍼스 원은 어리게 마셔도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른 나파 밸리 와인과 달리 빈티지에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으나 지난 2013년부터 매년 역사적인 와인을 만들어 왔다.

[이민우 와인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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