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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고대에 요리사 출신 재상이 많아… 생선 요리하듯 조심조심 나라 다스려야
기사입력 2019.09.06 10: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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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Cook)방 시대인 만큼 요즘 셰프의 인기가 뜨겁다. 굳이 전문 셰프가 아니어도 요리 잘하는 사람이 차려주는 음식만 먹으며 구시렁대는 사람보다 매력적이겠는데, 먼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고대에는 재상 중에 요리사 출신이 많았다. 위정자들은 왜 요리사 출신을 재상으로 발탁했을까?

노자가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 <시경>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누가 능히 생선을 삶을 수 있을까. 내 그를 위해 가마솥을 씻겠네.” 회나라의 ‘비풍(匪風)’이라는 노래로 기울어 가는 나라를 보며 안타까움을 읊은 시라는데 나라를 잘 다스릴 인물을 요리사에 비유했다. 후세 사람들이 주석을 달기를, 생선을 요리할 때 자주 뒤집으면 살이 부서지고 나라를 다스릴 때 번거롭게 굴면 백성이 흩어지니 생선 요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풀이했다.



옛 중국에서는 이렇게 나라 다스리는 일을 생선 요리에 비유하곤 했다. 그 때문인지 고대 중국 재상 중에는 요리사 출신이 많았다. 요리를 잘해야 나라 다스리는 벼슬인 재상이 될 수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재상(宰相)이라는 한자의 어원 자체가 요리사, 주방장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요리 천국이고 다리 넷 달린 것 중 식탁 빼고는 모두 음식으로 만든다는 중국이지만 재상이 바로 요리사였다는 말,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배경이 있다.

재상이 요리사였다는 사실은 한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분명해진다. 재(宰)는 집 면(宀)자 아래에 매울 신(辛)자로 이뤄진 글자다. 신은 주로 맵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허물, 죄라는 뜻도 있다.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에서는 죄인이 고통스러워 울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했다.

‘재’는 그러니까 집안에서 일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고대 귀족 가문에서 집안일을 총괄하는 사람 혹은 주방 일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글자다. 상(相) 또한 서로라는 뜻 이외에 보좌한다는 의미, 시중 든다는 의미가 있다.

글자 하나하나의 뜻은 이렇지만 재상이라는 단어 자체는 천관총재(天官冢宰)라는 벼슬에서 비롯됐다. 천관총재는 기원전 11세기 무렵에 세워진 주나라 때 국정을 총괄하고 궁중 사무를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벼슬이었다. 재상의 역할이지만 최초의 업무는 지금의 국정운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천관(天官)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 총재(冢宰)는 제사 지낼 때 쓰는 음식을 장만하는 역할이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참석자들에게 음복할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도 총재의 업무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나라를 통치하는 재상의 원래 역할이 그런 일이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씨족사회나 부족사회와 같은 고대 국가를 상상하면 재상이 요리사였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씨족사회에서는 족장의 집이 곧 나라였고 집안일이 바로 나랏일이었다. 군주가 집안을 다스리는 가장, 가문을 이끄는 씨족장이고 마을을 이끄는 부족장이었다. 씨족사회의 나랏일 중에서 가장 큰 행사는 조상님께 지내는 제사다. 음식을 장만해 원로를 모셔놓고 대접하는 것이 내분을 없애는 내치였고, 연회를 열어 다른 씨족과 협상하고 타협하는 것이 외교였다. 이때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먹을 것이 하늘(以食爲天)이었던 시대에 신분과 역할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지 못하면 내분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발전했다. 이렇듯 집안일을 도맡아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관장하며 제사가 끝난 후에는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요리사 역할을 맡겼던 것이 천관총재라는 벼슬이었다. 그러다 씨족사회, 부족사회를 벗어나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면서 재상으로 발전하게 됐다. 고대 중국에서 요리사가 재상이 됐던 배경이고 국정을 요리한다고 표현했던 까닭이다.

재상이라는 단어와 직업의 출처는 그렇고, 국정을 생선 요리에 비유한 것 역시 그만큼 정성을 다해 조심해서 나라를 다스리라는 뜻이겠는데, 그 때문인지 고대 중국의 유명 재상 중에는 실제로 요리사 출신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기원전 17세기 무렵인 상나라의 재상 이윤(伊尹)이다. 탕왕의 신하로 폭정을 펼친 하나라 걸왕을 몰아내고 상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이었으며 건국 후에는 관리를 통솔하고 민심을 살피며 경제를 발전시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하나라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이윤이 탕왕에게 하나라에 보내던 조공을 중지할 것을 건의했다. 걸왕의 움직임을 보고 실력을 가늠하려는 의도였다. 분노한 걸왕이 군사를 일으켜 탕왕을 정벌하려 하자 이윤이 아직 걸왕이 병력을 움직일 능력이 있으니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다시 조공을 시작했다.

때를 지켜보던 이윤이 얼마 후 다시 조공 중단을 건의했다. 그 동안의 폭정 때문에 이번에는 걸왕이 군사를 동원할 수 없었다. 그러자 탕왕이 이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군사를 일으키니 하 왕조가 무너졌고 제후들이 탕왕을 천자로 세웠다.

생선을 요리하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여 정세를 살펴가며 전략을 펼쳤던 것인데 탕왕을 도와 천하를 바로 잡아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이윤이 훌륭한 정치가이고 행정가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원래의 주특기는 따로 있었다. 역사서에 따라서는 이윤이 원래 요리사였다는 말부터 탕왕을 만나기 위해 요리사를 가장했다는 설까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요리를 잘했던 것은 틀림없다.

이윤은 어느 귀족 집의 하인으로 그 집에서 요리를 했는데, 귀족 딸이 탕왕에게 시집갈 때 가마솥과 도마를 메고 따라갔다. 그리고 식사 시중을 들면서 맛있는 음식을 예로 들어가며 탕왕에게 왕도를 설명했고 그 재능을 인정받아 상나라 국정에 참여해 중책을 맡았다. <사기>의 <은본기>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요리사 출신 재상이라고 모두 음식 솜씨만큼 국정을 잘 요리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7세기 춘추시대 제 환공은 관중과 포숙을 중용해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중원에서 첫 번째로 패자(霸者)가 됐다. 하지만 말년이 비참했는데 관중이 죽고 난 후 요리사 출신 역아(易牙)를 재상으로 등용하면서 내란에 시달렸고 결국 내란 중에 굶어죽었다.

관중이 병이 나자 환공이 여러 신하들 가운데 누가 재상이 될 만한지를 물었다. 관중이 임금보다 신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며 대답을 사양하자 그러면 역아는 어떤지를 물었는데 “자식을 죽여 임금의 뜻에 맞추려 했으니 인정에 어긋나는 인물이라며 불가하다”고 대답했다. 역아는 제나라 사람으로 맹자가 천하가 모두 역아의 맛을 따른다고 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요리 솜씨를 지녔던 인물이다. 뛰어난 음식 솜씨로 환공의 총애를 받았는데 환공이 천하의 진미를 다 보았지만 사람만은 맛보지 못했다고 하자 역아가 제 아들을 죽여 요리해 진상했다.

관중이 환공에게 역아를 멀리하라고 했던 이유인데 관중이 죽고 난 후 환공은 역아를 중용해 재상으로 삼았다. 이후 후계자 자리를 놓고 왕자끼리 내분이 일어난 가운데 역아가 권력을 휘두르면서 환공은 내란 중에 굶어죽었다.

재상과 요리사의 관계는 고대 중국을 넘어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까지로 이어진다. <한서> 열전인 <진평전>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진평(陳平)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개국공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진평을 지켜본 고향사람들이 그를 추천해 제사를 주관하도록 했다. 진평이 제사가 끝난 후에는 남은 고기를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는데 참석한 사람들 모두 불만이 없었다. 고기를 가르면서 진평은 “내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맡게 된다면 고기를 다루는 것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고기를 가르고 요리하는 일에 비유했으니 여기서도 옛날 재상들은 음식을 나누고 분배하는 주방장이었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진평은 훗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후 좌승상이라는 재상이 되어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불만이 없도록 먹을 것을 골고루 나누어 주어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요리사의 역할이며 재상의 임무이니 고대 중국의 ‘재상=요리사’라는 등식은 현대 정치학의 해석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굳이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이나 개인의 일상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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