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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의 茶이야기 ①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는가
기사입력 2019.02.01 13: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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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LUXMEN에서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차이야기를 연재한다. 김대기 전 실장은 예산·기획 전문가로 전형적인 엘리트 경제관료였다. 원칙을 중시하고 꼼꼼함과 치밀함을 갖췄으면서도 소탈하고 친화력이 좋아 동료들의 신뢰가 두텁기로 유명했다. 2005년 기획처 직원 여론조사에서 ‘함께 근무하고 싶은 상사’로 뽑히기도 했다. 2011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고, 지금은 재야에서 차에 뿍 빠져 살고 있다. 김대기의 차이야기 첫 회는 ‘왜 차를 마시는가’이다. <편집자>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단국대 겸임교수



내가 차를 처음 대한 것은 10여 년 전 선배로부터 보이차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이다. 그런데 처음 마셨을 때는 솔직히 왜 마셔야 하는지 와 닿지 않았다. 맛도 별로였고, 선배가 말한 것처럼 몸에 좋은 신호도 없었다. 더구나 보이차는 마시기도 불편했다. 둥그런 모습으로 눌려있는 차 덩어리를 송곳으로 빠개서 우려 마셔야 하니 귀찮기도 했다. 당연히 차 마시는 일도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봉황단총’이라는 중국 우롱차를 마시게 되면서 그 청량감으로 인해 차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후 녹차, 백차, 보이차 등 다양한 차를 마시면서 차 문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공직을 마감하고는 중국 운남성으로 가서 차나무와 생산과정을 보고 왔다.

그곳에서 ‘쾌활’이라는 브랜드로 보이차를 만드는 한국 젊은 사장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이후 주변에 계시는 차의 고수들과 교류하면서 이해를 넓혀 나갔고 지금은 차 없이는 못 살 만큼 차 애호가가 되었다.



차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 차의 기원은 중국이다. 이미 춘추시대에 찻잎을 음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BC141년 한나라 6대 황제의 무덤에서는 실제 차가 나왔다. 당시 차는 사후에까지 가져갈 정도로 인기품목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인류가 본격적으로 차를 마신 역사는 이천 년은 훌쩍 뛰어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라 말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그때 중국에서 차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역시 천 년 이상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장구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왜 차를 마셨을까? 가장 열렬히 마신 사람들은 티베트인이다. 당나라 공주가 시집오면서 혼수품으로 가져온 차에 매료된 이후 차는 생필품이 되었다. 티베트는 고원지대라서 곡물이나 야채가 거의 자라지 못한다. 사람들이 야크 고기와 치즈 같은 것만 먹으니 속이 늘 더부룩하고 변비도 심했는데 차를 마신 다음부터 상쾌해졌다고 한다. 이후 운남성에서 만든 차를 수입하고 구매대금으로 말을 주었다 해서 그 운송길이 차마고도가 되었다.

유럽인들의 차 사랑도 못 말렸다. 19세기 동인도회사를 통해 네덜란드에 들어온 중국 홍차가 영국에서 대히트를 쳤다. 처음 왕실에서 즐기다가 귀족, 그리고 중산층까지 급속히 퍼졌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와 같은 음료 문화가 없던 영국 사람들에게 중국 홍차는 새로운 돌파구였다. 이후 차 수입이 늘어나면서 수입대금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중국에 아편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아편전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이후 영국은 자기 식민지인 인도와 스리랑카에 대단위 차밭을 운영하면서 차를 공급받기에 이르렀다.

티베트나 영국의 공통점은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육류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식생활로 몸에 기름기가 많았는데 이것이 차를 선호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일본사람들의 차 사랑도 유명하다. 다만, 일본은 기름기를 빼기 위해서가 아니고 정신적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2평 남짓 좁은 다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세상사 모든 번잡함과 욕망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느끼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16세기 차는 무사들에게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고, 특히 조선의 차 사발에 마시는 것이 최고의 풍미였다고 한다.



“차를 마시면 정말 건강이 좋아지나?” 내가 차를 마신다고 하면 주변사람들의 첫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차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찻잎에 있는 카테킨이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항산화 작용을 하고,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세균을 죽이고, 비타민은 레몬보다 많고, 눈에도 좋고, 당뇨에도 좋고, 변비에도 좋고 등등. 거의 만병통치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믿고 마시다가는 실망하기 딱 좋다. 차는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지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몸의 기름기를 뺀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운남성에 가면 각 가정마다 돼지를 키운다. 요리하는 데 돼지기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료로는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들을 이용하는데 찻잎은 절대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찻잎을 먹은 돼지는 기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내 경험으로 봐도 차에 젖은 생활을 하면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거의 매일 저녁약속이 있는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문헌을 보면 차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장수한 경향이 있다. 차 문화를 집대성한 당나라의 다성(茶聖) 육우는 72세까지 살았다. 우리나라 남자 기대수명이 71세에 도달한 것이 1998년임에 비추어볼 때 1200년 전 사람으로서는 엄청 장수한 것이다. 우리도 다성으로 추대되는 초의선사는 조선 말기에 81세까지 살았다. 초의선사의 대를 이었던 대흥사의 응송 스님은 98세까지 살았다. 정약용은 호를 다산이라 지을 만큼 차 애호가였다. 유배지에서 풍이 들어 다리에 마비증세가 오고 위장이 안 좋아 50세부터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75세까지 살았다.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 71세, 자하 신위 77세, 표암 강세황 79세 등 다인들 중에 장수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차는 어디까지나 차다. 보약으로 마시려면 홍삼이 더 낫다. 차는 풍미하는 것이다. 차를 마시다보면 와인의 세계와 비슷함을 느낀다. 좋은 와인은 원료인 포도가 좋아야 하고 제조기술도 중요하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품종으로 재배했는지, 빈티지가 어떤지에 따라 값도 다르다. 차도 똑같다. 어느 지역, 어떤 나무, 누가, 언제 생산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마실 때는 차가 더 까다롭다. 와인은 뚜껑 열고 적절히 디켄팅하고 마시면 되지만, 차의 경우 어떤 물을 어떤 온도에서 얼마동안 우리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시는 그릇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내가 접하는 사업가나 공무원, 언론인, 교수들 중에는 와인 전문가들이 참 많다. 나도 와인을 좀 공부해 봤지만 내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차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 내가 한마디 하면 그것이 곧 진리이다. 이렇게 가성비가 높을 수 없다. 그만큼 차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수필에서 차 마시는 것을 ‘자연을 마신다’고 빗대 표현한 것을 봤다. ‘자연을 마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번 차 세계에 들어오셔서 ‘자연을 마시기’를 권하고 싶다.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단국대 겸임교수]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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