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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칠석에는 부침개, 복날은 수제비와 콩국수… 여름 별미 밀가루음식 많은 까닭은
기사입력 2019.07.04 17: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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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더워지니 슬슬 여름 보양식 챙겨 먹을 때가 됐는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여름 별미로 무엇이 좋을까? 삼계탕과 초계탕, 장어, 민어, 낙지 등등 다양한 여름 별식이 있지만 이런 보양식에는 ‘오랜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다소 어색할 수도 있다. 일단 170년 쯤 전의 조선 후기 대표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그 후 퍼진 여름 보양식이거나 혹은 당시에 극소수만 즐겼던 별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국세시기> 기준으로 양반이건 평민이건 대중이 즐겼던 여름 별식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음식들이다. 음력 6월 15일인 유두절에는 부침개와 증편을, 삼복에는 수제비와 들깨국수, 콩국수를 먹었고, 음력 7월 7일 칠석이면 밀전병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그게 무슨 별식이냐, 시시하다 싶을 수 있겠지만 옛날 여름 별식에는 주목할 만한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밀가루 분식이고 음양의 관점에서 더위를 식히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이상하다. 콩국수는 그렇다고 쳐도 부침개, 수제비로 어떻게 더위를 식혀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다는 것일까?



▶칠석에 부쳐 먹는 부침개

한여름인 칠석은 지금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만 전설로 전해지지만 예전에는 한·중·일 공통의 명절이면서 부침개를 부쳐 먹는 날이었다. 고려 시인 이규보는 칠석이면 부녀자들이 뜰에다 오이와 참외를 차려놓고 오색실 바늘에 꿰어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우리 풍속이라고 했는데, 이날 할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햇과일과 함께 부침개를 부쳐 가족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칠석 치성을 드렸다. 사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칠석날이면 집집마다 부침개를 부치는 것이 일반적 풍속이었다. 1930년대 신문에도 밀가루에 애호박을 채쳐 넣고 밀전병을 부치는데, 소금 대신 고추장을 풀어서 부쳐도 빛이 붉고 맛이 괜찮다고 했으니 애호박이나 고추장 부침개를 부쳐 먹는 것은 우리의 전통 여름철 풍속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름철 부침개 풍속은 역사가 꽤 깊다. 12세기 이규보뿐만 아니라 고려 말 목은 이색 역시 유두절에 부침개를 먹으며 이열치열의 피서를 즐겼다.

“상당군 댁의 부침개 맛이 일품이라네 / 눈처럼 하얀 것이 달고도 매운 맛이 섞여있네 / 동그란 떡이 치아에 붙을까 염려되지만 / 꼭꼭 싶으니 달고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네.”

여기서 이상한 구절 하나. 우리 정서에 뜨거운 국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외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뜨거운 부침개를 놓고 “시원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고 한 표현은 낯설기 그지없다. 고려를 대표하는 대학자가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무더위를 씻어주는 별미로 콩국수만한 음식도 드물다. 시원한 콩 국물에 채친 오이 올려놓고 얼음 동동 띄우면 흐르던 땀도 쏙 들어간다. 콩국수는 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여름철 대표음식이지만 옛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한말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처음 나온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1911년 발행본이니 20세기 요리책이다. 여기에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했다. 지금의 콩국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는 부분이다. 양반의 여름 별미인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이니 콩국수 만드는 법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붙인 설명일 것이다. 깻국은 <동국세시기>에도 그 모습이 보인다. 여름철 계절음식으로 밀가루 국수를 만든 다음 거기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백마자탕에 말아 먹는다고 했는데, 백마자탕이 바로 들깨를 갈아 만든 깻국이다. 여름에 깻국을 먹은 이유로 <본초강목>에는 들깨가 열을 제거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했다. 그러니 여름에 들깨를 먹으면 더위도 막고 식욕이 살아나 소화도 도울 수 있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왜 옛 문헌에 깻국은 보여도 콩국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콩국이 철저하게 서민들의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콩국수의 주요 재료인 콩 국물은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자주 마시던 음료였다. 다만 지금의 두유처럼 건강 음료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콩을 갈아 국물을 만들어 놓고 배고플 때 부족한 양식 대신 수시로 콩국을 마시며 영양을 보충했다.

다산 정약용 역시 봄철 춘궁기가 되면 곡식 뒤주가 자주 비어 콩국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낸다고 했으니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청빈한 선비의 음식이었고 서민과 농민의 양식이었다. 지금은 콩값이 쌀값의 약 2배가 됐을 정도로 비싸졌기에 콩으로 만든 음식이 싸구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였을 정도로 콩이 흔했다.

콩국수는 이런 콩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이니 상식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곡식 대신에 끼니를 때우려고 마셨던 콩 국물에 귀한 밀가루 국수를 말아 콩국수로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시의전서>에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깻국이 됐건 콩국이 됐건 여름별미로 완성되려면 국수가 들어가야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별미, 수제비

뜨거운 수제비 역시 여름철 별미로 빼놓을 수 없다. 수제비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음식이다. 세대에 따라 느낌도 다른데 현대를 사는 젊은 도시인들에게 수제비는 입맛 없을 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별미지만 중장년층에게 수제비는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에 대한 기억이 담긴 추억의 음식이고 노년층에게는 형편이 어려울 때 끼니를 때우려고 먹었던 음식이다. 수제비는 이렇게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 겪었던 애증이 섞인 음식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잔칫상에도 올랐던 별미였고 고급요리였다. 근대 초기만 해도 양반집에서는 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밀가루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밀가루 대신에 쌀가루로 쌀 수제비를 끓여 잔칫상에 올렸다. 근대 요리책인 <조선요리학>의 저자인 홍선표가 1938년 신문에 발표한 글에도 수제비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한여름의 복날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별식으로 그려져 있다.

“여름 중에도 삼복에 먹는 음식으로 증편과 밀전병, 수제비라는 떡국이 있는데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는 데 필요한 음식”이라면서 “수제비는 닭국이나 곰국에다 만들어 먹을 때도 있지만 미역국에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했고 “여름철 삼복의 복 놀이 잔치에 수제비가 없으면 복 놀이 음식이 아니 되는 줄로 알고 누구나 다 수제비를 먹는다”고 적었다. 사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곳곳에서 수제비에 대한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영롱발어, 또는 산약발어라는 전통음식으로 일종의 수제비다. 다소 어려운 이름이지만 발어(撥魚)란 물고기가 뒤섞이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다. 숟가락으로 떼어 넣은 밀가루 반죽이 끓는 물에 둥둥 떠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어우러져 헤엄치는 것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산림경제>에 영롱발어라는 음식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메밀가루를 풀같이 쑨 후에 잘게 썬 쇠고기나 양고기와 함께 수저로 팔팔 끓는 물에 펴 넣으면 메밀수제비는 뜨고 고기는 가라앉는데, 그 모습이 영롱하다고 했다. 여기에다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넣고 소금, 장, 후추, 식초로 간을 맞추어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고급 메밀수제비다. 산약발어는 메밀가루에 콩가루와 마를 섞어서 수저로 떼어 넣은 후 익기를 기다렸다 먹는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을 마 수제비였으니 역사 속에 보이는 수제비는 양반과 부잣집에서 별미로 먹던 음식이었다. 그렇다면 풍속서에 나오는 우리 전통 여름별미는 왜 대부분이 밀가루 분식이었을까? 목은 이색은 왜 뜨거운 부침개를 먹으며 시원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고 했던 것일까? 해답은 복합적이겠는데, 일단 초여름은 햇밀의 추수철인 데다 170년 전에는 밀가루가 귀했으니 별식으로 삼을 만했다. 게다가 음양의 관점에서 밀의 성질을 보면 여름 특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본초강목>에 밀은 달고 찬 성질로 몸을 가볍게 하며 열을 없애준다는 것이고 <동의보감>에도 밀이 성질이 차고 달며 열과 갈증을 없애는 데다 소변까지 시원하게 나오게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달고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음양론으로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들이니 우리 여름 별식 하나하나를 보면 이렇듯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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