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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강릉 시동역의 추억
기사입력 2019.07.01 16: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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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고속철도 시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강릉에서 서울까지도 두 시간이다. 예전 고등학교 때 강릉에서 서울까지 여덟 시간 버스를 타고 온 적이 있다. 이듬해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다음 네 시간 만에 서울에 왔을 때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고속버스의 속도에 놀랐다.

그러나 이제 지상에서 달리는 것 중에 가장 빠른 것이 기차가 되었다. 탈 때마다 신기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또 광주까지 네 시간 훨씬 넘게 가던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예전대로 그 시간이 한 나절 거리처럼 가깝게 느껴졌는데 고속철도로 그 거리가 더욱 짧게 느껴진다.



추억이 추억을 부르듯 나는 부산과 광주로 가는 KTX를 탈 때에도,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KTX를 탈 때에도 내 나이 열대여섯 살 무렵 기차와 관련한 일들이 떠오른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침마다 기차를 타고 보다 남쪽에서 강릉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멀리서는 삼척과 동해(묵호)에서 오고, 가깝게는 옥계와 정동진에서 왔다. 그 중에 정동진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동시에 한때는 또 은성하던 탄광지대이기도 해서 다른 곳보다 통학생의 수가 많았다. 지금은 그곳의 초등학교 전체 학생수가 100명 남짓하지만 탄전지대로 이름을 떨칠 때는 1000명도 넘는 학생이 그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들 모두 강릉으로 중학교를 다녔던 셈인데, 학교마다 통학반장이 있었고 선후배 사이에 기차 안에서의 규율도 셌다.

그때 강릉과 정동진 사이에 ‘시동역’이라는 작은 역이 있었다. 지금은 시골의 작은 역을 통틀어 간이역이라고 부르지만, 시동역이야말로 이런 곳에도 기차역이 있나 싶을 만큼 작은 간이역이었다. 역이 작아서만 간이역이 아니라 오고가는 기차가 서로 비켜지나갈 교행선도 없고 역 건물도 없이 외길 기찻길 옆에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릴 기차 두 칸 길이 정도의 임시 플랫폼을 만들고 표를 끊어주는 역무원 한 사람만 근무하던 간이역이었다. 교행선도 없는 외길 기찻길 위에 그야말로 간이로 만든 역이다 보니 이쪽으로 가는 기차든 저쪽으로 가는 기차든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가 시동역을 지날 때면 다른 기차는 앞쪽 역에서 그 기차가 이쪽 역 교행선으로 들어올 때까지 멈추어 서서 기다려야 했다.

내가 그런 간이역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시동마을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서였다. 나는 대관령 아랫마을에서 시오리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 촌놈이라 기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무척 신기하고, 또 그들이 학교를 오가는 것 역시 우리보다 무척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 친구를 따라 시동역에서 내렸는데, 외길 기찻길에 이쪽저쪽에서 마주 오는 기차가 서로 비켜지나가는 교행선도 없는 그런 간이역이 무척이나 이상하고도 인상적으로 보였다.

시동역은 강릉에서 출발해 채 4㎞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첫 역이었다. 거리로 보나 뭐로 보나 따로 기차역이 있을 곳이 아닌데 기차역이 있었던 이유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마을마다 아직 버스가 들어가지 않을 때 시내버스 대용으로 하루 몇 차례 그곳에 기차가 서는 간이역을 만든 것이었다. 그 기차를 이용해 시동 아이들이 강릉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마을 사람들이 강릉시내로 일을 보러 다녔다.

그런 시동역이 없어진 것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이었다. 강릉 인근의 시골마을마다 버스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시동역이 폐쇄되었다. 그 일을 두고 시동 사람들이 ‘버스가 기차를 잡아먹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 그곳에 시동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마을의 나이든 사람들만 기억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없어진 역 중에 ‘경포대역’이 있다. 1970년대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휴가를 가자면, 송창식의 노래처럼 삼등삼등 기차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가듯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강릉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종착역이 강릉 다음 경포대역이었다. 그러다 고속도로가 늘어나고 고속버스와 자가용 승용차가 늘어나며 정동진역만큼이나 바다가 가까운 경포대역 역시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경포대역은 기차역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강릉역에서 경포대로 가는 기찻길 역시 선로를 뜯어내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이제는 군데군데 예전에 기차가 지났던 철둑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강릉에 가면 이따금 시동마을에 가본다. 시동마을은 내가 지난 몇 년간 강릉 고향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낸 트레킹 코스 바우길이 지나는 마을이기도 해 배낭을 메고 그곳에 갈 때마다 예전의 시동역 자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차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기차역이 있던 자리마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시동역이 사라진 게 아쉬워 나는 오래 전 <시동에서>라는 소설 한 편을 썼다. 역마다 서던 비둘기호 열차조차 기적 한 번 울리는 법 없이 이곳 시동을 지나가고 역의 흔적이 사라지고 만 것이 못내 아쉬워 쓴 작품이다.

그 소설을 쓰고 나서 인터넷에서 기차 동호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차 동호회 사람들이 그런 간이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시동역처럼 없어진 간이역 자리를 다시 찾아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 동호회에서 내 소설 <시동에서>가 발표된 다음 소설을 읽고 실제 소설 속의 시동역을 찾아 여러 차례 여행을 한 일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시동역 플랫폼 자리를 그림으로 정확하게 올린 것도 보았다.

어디 경포대역과 시동역뿐이겠는가. 아마 전국에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진 기차역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바우길을 걷는 중 어쩌다 시동마을에서 기차라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진한 간이역 향수에 빠져든다. 기차가 꼬리를 감춘 다음에도 오래오래 그곳을 바라본다.


그래. 아주 오래 전 효율과 실질을 앞세워 수인선의 협궤열차도 없어지고, 또 하루 전체 승객이 100명도 되지 않던 시동역 같은 간이역들도 없어지고 이제 그 위를 달리는 것은 오직 KTX와 새마을호 같은 빠른 기차뿐인 세상이 되었다.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역마다 서던 비둘기호가 없어지고 통일호가 없어지고, 이제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어느 간이역, 어느 대합실에 가면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문득 예전에 내가 친구 집에 놀러가서 보았던 외길 위의 간이역이 그립다. 왠지 그곳에 가면 지난날 간이역에 놓아두고 잃어버렸던 내 추억들이 먼저 나를 반길 것 같다.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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