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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오랜 추억 속의 어린이날
기사입력 2019.05.08 17: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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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린이날은 일요일이다. 예전 같으면 공휴일 하나 줄어드는 폭이었지만 지금은 공휴일이 일요일에 들면 그 다음날인 월요일을 대체공휴일로 쉰다. 이제는 집안에 어린아이가 없지만, 달력에서 5월 5일의 붉은 숫자를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의 그 날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어린이날이 있었지만, 공휴일은 아니었다. 쉬는 건 오직 초등학교를 다니는 우리들뿐이었다. 그것도 그냥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와서 어린이날 기념식을 하고 공부 대신 다른 놀이를 하거나 체육행사를 하며 놀았다.

대관령 아래의 깊은 산골마을이라 어린이날을 아는 어른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날이 어린이날이든 무엇이든 그냥 보통 때처럼 평범하고 덤덤하게 우리를 대해주었다. 그날이 어린이날인 것을 말해주고, 우리를 특별하게 대접해주었던 사람은 학교 선생님들뿐이었다. “내일은 책가방을 가져오지 말고 다들 그냥 학교로 오너라.” 전날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빈손으로 학교를 가는 날은 소풍날과 운동회와 어린이날뿐이었다.


돌아보니 50년쯤 시간이 흘렀다. 그 시절, 시골 읍·면 초등학교엔 미국에서 급식용으로 보내주던 밀가루와 옥수수가루가 나왔다. 어른들은 그것을 ‘사팔공 밀가루’, ‘사팔공 옥수수가루’라고 불렀다. 왜 그런 희한한 이름이 붙었을까. 미국 어느 법의 480조가 잉여농산물의 처리에 대해 규정한 조항인데, 그 법 조항을 근거로 하여 ‘미국 시민이 우방국 국민에게 무상으로 원조하는 양곡’이기 때문에 ‘사팔공 밀가루’고 ‘사팔공 옥수수가루’라는 것이었다. 첫눈에 미국 원조품임을 알아볼 수 있게 밀가루 포대와 옥수수가루 포대 한중간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그려진 팔뚝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무상으로 원조되는 양곡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씌어 있었다.

그러나 아주 무상으로만 나누어주지 않았다. 시골초등학교의 점심 급식으로 쪄주는 밀빵과 옥수수빵은 무상이었지만, 동네어른들이 나가서 제방공사를 할 때에도, 또 산에 나무를 심을 때에도 품삯 대신 이 밀가루를 주었다. 그래서 이 밀가루를 품삯으로 쌓은 제방을 ‘사팔공 제방’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가루를 낸 밀가루는 밀 껍질까지 함께 갈아서 조금은 거무튀튀한 빛이 났다. 국수를 뽑아도 찰기가 덜하고 메밀면과 비슷한 색이었다. 거기에 비해 이 ‘사팔공 밀가루’는 설탕처럼 희고 눈처럼 희었다. 당연히 국산 밀가루보다 인기가 좋았다. 그걸 품삯으로 계산해 주니 받는 사람도 크게 불만이 없고 나중에 그걸 팔아 돈으로 바꾸기도 쉬웠다. 내 기억으로 그 밀가루와 옥수수가루가 제일 마지막까지 보급되었던 곳이 시골 초등학교였지 싶다. 1970년대 초까지도 그걸로 점심시간마다 학교 관사에서 옥수수죽을 끓이거나 옥수수빵을 쪄서 점심을 못 싸오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걸로 죽을 끓이거나 빵으로 찔 나무는 아침 등교 때마다 급양 대상 아동들이 도시락 대신 장작을 하나씩 들고 학교로 갔다. 더러 그걸 놀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부끄럽기도 해 자칫 상처를 받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절, 대관령 아래 산골 소년이 어린이날에 난생 처음 강릉 시내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갔다. 전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라 학교에서 4, 5, 6학년만 시내 극장으로 영화구경을 가기로 했다. 집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께 잘 말씀을 드려서 영화구경을 가고 싶은 사람은 내일 학교에 올 때 5원씩 가지고 오너라.” 지금까지 그런 게 있다고 말로만 듣던 아이들 모두 마음으로는 영화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5원도 시골 살림엔 적은 돈이 아니어서 몇몇 아이들은 가져오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그것 때문에 집에서부터 울면서 학교로 오기도 했다. 교실 친구들 모두 들뜬 마음으로 가는 영화구경을 나 혼자 가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 마음이 아니더라도 속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또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 교실마다 몇 명은 빈손으로 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리 그걸 알고 전날 선생님들끼리 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은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또 학년마다 담임선생님이 어린이날 선물처럼 돈을 대신 내주었다. 그래서 또 교실에서 한바탕 울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돈을 가져오지 못해 속상하다고 울고, 선생님이 대신 돈을 내주어 고맙다고 울고, 이렇게 어린이날에도 울고불고 했다. 시골학교에서 시내 극장까지 오가는 걸음이 30리라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먹을 점심은 학교 관사에서 미리 단체로 옥수수빵을 쪄 준비했다.

그 옥수수빵이 바로 ‘미국 시민이 우방국 국민에게 무상으로 원조하는 사팔공 옥수수가루’로 찐 빵이었다. 달리 점심을 준비할 방법이 없었다. 시골 아이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다음 단체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때로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그러니 선생님들도 옥수수빵으로 점심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영화구경을 떠나기 전, 우리는 시멘트 종이로 싼 옥수수빵을 하나씩 받아들고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서 어린이날 행사도 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하는 어린이날 노래도 부르고,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이며 이 나라의 기둥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도 들었다.

그 다음 순서가 교무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읽는 ‘어린이헌장’이었다. 그 헌장엔 이런 조항도 있었다.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야 한다.” 정말 그때 그랬을까 하고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 어린 시절 어린이헌장엔 실제로 그런 구절들이 있었다.
그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고쳐진 게 1980년대의 일이라고 했다.

그때로부터 참 멀리도 왔다. 어린이날이라고 특별히 더 할인하여 ‘단체 5원’하던 영화 값이 지금은 보통 1만원 쯤으로 오른 물가상승도 놀랍지만, 그때와 지금의 식생활과 주거생활 등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또 그만큼의 세월이 지난 다음 어떤 놀라움을 우리처럼 겪게 될까.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의 마음만은 똑같은 것이 아닐까.

[소설가 이순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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