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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칼럼] 역사를 바꾼 오일패권
기사입력 2018.12.27 17: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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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석유(Oil)로 시작해서 석유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공했다. 히틀러는 자서전에서 “우크라이나(당시 소련영토) 평원의 식량과 코카서스 지방의 유전에 유난히 탐이 났다”고 실토했다. 탱크와 장갑차에는 석유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45년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두발반격에 결국 두손을 들었다. 무모한 ‘가미카제’식 자해전(自害戰)까지 감행한 배경에는 일본이 식민지 인도네시아산 석유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미국이 차단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막강했던 옛 소련제국이 붕괴된 배경에도 오일 패권이 있었다. 2차 오일쇼크 당시 배럴당 38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가 1980년대 초반 12달러까지 추락했다. 노르웨이 등이 북해유전을 개발하고, 미국도 대륙붕 유전을 속속 발굴하면서 소련과 중동의 오일 과점체제가 무너진 탓이 컸다.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오일패권 전쟁을 쥐락펴락하는 원톱은 단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무기는 날이 갈수록 채선성이 높아지는 셰일오일이다. 암반틈에 섞여있는 셰일오일은 수년 전만 해도 배럴당 70달러는 돼야 파먹을 값어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채굴·정제기술 발달로 지금은 30~40달러만 돼도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미국 월가가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기준금리 결정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이 다소 엉뚱한 데서 폭탄이 터졌다. 제롬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발표를 하기 바로 전날인 12월 18일(현지시간) 서부 텍사스산(WTI) 원유 값이 7.3%나 폭락했다. 배럴당 46달러로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10월 초 76달러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곧 100달러를 찍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불과 두 달 보름 새 상전벽해가 됐다. 이 기간 유가 하락률은 40%로 주가 하락률(다우존스 기준) 10.5% 대비 4배에 달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번 유가하락은 트럼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새해 1월부터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주요국별로 생산량을 2~2.5%를 감축함으로써 어떻게든 유가급락을 막아보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하는 등 감산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미국에너지정보청은 새해 미국 원유생산량이 하루 1206만 배럴로 2018년(11월 기준)보다 오히려 3%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생산량이 단연 세계 1위로 올라선다.

‘석유재벌’을 비호할것 같은 트럼프가 이처럼 저유가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핵심 지지층인 백인 중산층 근로자 등이 자동차용 휘발유 등 기름값에 유난히 민감해서다. 유류세 인상으로 지지율이 폭삭 주저앉은 마크롱 프랑스대통령에 더욱 자극을 받아서인지 휘발유값이 갤런당 3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막는 데 목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둘째는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를 어떻게든 늦춰보려는 속내도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를 내리면 연준이 기준금리인상의 핵심잣대로 삼는 근원물가 상승률을 연 2% 이내로 틀어막을수 있다. 트럼프는 파월 의장을 향해 “금리를 올려 미국 경제와 증시가 추락하면 연준의 책임”이라며 틈만나면 공격한다. 하지만 파월은 눈도 꿈쩍않고 제 갈길을 가겠다는 태세여서 트럼프의 유가 우회전술이 먹힐지는 앞으로도 미지수다.

세 번째는 정치논리다. 뮬러특검과 민주당은 트럼프의 힘이 떨어지면 대선 당시 러시아와의 유착스캔들을 공론화해 언제 ‘탄핵카드’를 꺼내들지 모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유가를 잡으면 국내 탄핵론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국제유가가 균형수준(WTI기준 60달러선)을 회복하는 데는 6개월 이상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기관이 많다.

천수답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오일 패권전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제유가가 150달러에 달할 때 자원외교를 한답시고 해외유전을 비싼 값에 수조원어치 사들인 전 정권이나, 다음날부터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타이밍에 유류세 인하를 단행한 현 정권이나 도긴개긴이다. 이렇게 유가가 쌀 때 태양광 등 고비용 친환경 발전을 ‘넘버1 에너지정책’으로 계속 밀어부치는 것도 과연 옳은 방향일까.

[설진훈 LUXMEN 편집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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