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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산책] 새신랑 비웃음 받으며 밤나무 심었는데…
기사입력 2018.12.04 1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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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자문은 글자 중복 없이 한 구에 네 글자씩 250구로 지은, 1000글자의 사언고시이다. 네 글자의 두 구가 나란히 합쳐지면 또 한 편의 시가 된다. 앞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래서왕 추수동장(寒來暑往 秋收冬藏)’. 추위가 오면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한다.

곡식만 갈무리하는 게 아니다. 과일도 대부분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저장한다. 자두며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은 금방 물러 장기간 저장이 어렵지만, 감 같은 가을 과일은 물러서 연시가 되어도 제법 오래 둘 수 있고, 무르기 전 곶감을 만들어 다음해 가을에 나올 때까지도 저장이 가능하다.

시골집 부엌 바깥에 늙고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밑동은 오랜 세월 속에 썩어 들어가고, 껍질도 갈라진 바위의 표면만큼이나 험하고 두껍다. 그 위에 이끼가 끼고, 운지 같은 버섯들이 부채처럼 매달려 자라고 있다. 나무줄기도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중동이 부러졌다. 우리 형제들은 이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열네 살 때 결혼하여 살림을 난 다음 산에 밤을 다섯 말이나 심었다고 한다. 무척 가난하여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는데, 겨울에 끼니도 못 챙겨먹으면서도 밤을 보관해 봄이 되자 산에 심었다고 한다.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어린 새신랑을 비웃었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날 때까지도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밤을 심은 지 10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20년이 되고 30년이 되었을 땐 동네에서 가장 큰 부농의 한 해 농사보다 더 큰 수확을 올렸다고 했다.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밤나무 산으로 성묘를 가거나 일부러 산소를 둘러보러 갈 때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비하는 삶. 이보다 더 큰 공부도 없다. 돌아가신 지 오래여도 할아버지는 밤나무 산에서 나무들과 함께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사과를 깎으면 너무도 익숙한 솜씨에 조금은 놀라는 얼굴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려서 누구보다 많이 감 깎는 연습을 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자란 강릉은 예부터 감나무가 많았다. 지금도 어떤 길의 가로수는 감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길가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도 따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감이 흔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늦가을이면 우리는 모두 학교에서 돌아와 남녀 가릴 것 없이 감을 깎아야 했다. 밤새 껍질을 깎은 감을 싸리나무 가지에 꿰고 새끼줄 사이에 고정시켜 덕대에 걸었다. 쌀을 팔아 아이들 학비를 대어주는 것은 동네 부잣집에서나 하는 일이고, 대부분의 집들은 다른 것으로 아이들 학비를 마련했다. 가을이 되면 부지런히 밤을 주우러 다니고, 이 밭둑 저 밭둑에 심어진 감나무에서 감을 따 곶감을 만들었다. 식구들 모두 밤늦게까지 감을 깎다 보니 사과도 잘 깎게 된 것이다.

늦가을마다 감을 깎던 추억이 지금도 남아 시장에 감이 나오면 고향에 전화를 해서 감 몇 접을 청한다. 감이야 집 앞 슈퍼에만 나가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꼭 고향에 감을 청해 매년 연례행사처럼 내 손으로 곶감을 만든다. 그렇게 감을 만지다 보면 떠오르는 옛일이 있다. 감은 한 손으로 느슨하게 주먹을 쥔 모양처럼 넓적한 것도 있고, 양손을 모아 볼록하게 감싼 것처럼 뾰족한 것도 있다. 요즘 대봉처럼 뾰족하게 생긴 감은 그냥 먹기엔 떫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침을 들여 단감을 만들었다.

감이 흔한 동네인데도 내 친구 집엔 감나무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학비를 위해 돈을 만들어야 하니 친구 어머니는 동네 다른 집에서 이 뾰족감을 사서 침을 들여 시내에 내다 팔았다.

감에 침을 들이려면 커다란 단지 밑바닥에 볏짚을 깔고 감을 넣은 다음 소금을 푼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이불을 씌워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 이때 물의 온도 조절을 잘못하면 없는 살림에 사온 감들이 모두 뜨거운 물에 무르거나 곰보가 되어 시장에 내다 팔 수 없게 된다. 당시 일요일이었던 그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본, 침감 단지를 붙잡고 긴 한숨 끝에 눈물을 닦던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 그건 그 시절 친구 어머니만의 모습이 아니라, 시골에서 없는 살림에 자식만은 가르쳐보겠다고 온갖 고생을 다하시던 우리 부모님 모두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밤과 감이 아니더라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는 온통 과일 세상이다. 가을 과일들은 하나같이 잘생기고 알차다. 밤과 대추는 다른 과일에 비해 알이 잘아도 몇 개 손에 들고만 있어도 속이 든든한 느낌이 든다. 빨갛게 익은 사과와 보름달만한 배는 맛과 가격에서도 단연 과일 중에서 으뜸이다. 보관도 오래 할 수 있다.

동네 과일 가게에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가 놓여 있다. 모과는 등겨가마니 속에 넣어두면 봄이 될 때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 누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 모과차를 끓여 먹였다. 옛말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꼴뚜기는 오징어에 비해 작고 모양도 좋지 않으며, 그렇다고 배를 따서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과 역시 빛깔과 향은 그럴 듯한데, 다른 과일처럼 그 자리에서 한 입 덥석 깨물어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딱딱하기가 돌 같은 데다 모양도 다른 과일에 비해 못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과일이 들고나는 것은 몰라도 모과는 과일전의 온갖 설움 속에서도 한번 몸을 깔고 앉은 멍석에 제 향을 오래 남긴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자기가 있던 자리에 오래 향을 남기는 모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추억도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한다.


소설가 이순원 1957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허균문학상, 남촌문학상, 녹색문학상,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말을 찾아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은비령> <삿포로의 여인> 등을 썼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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